취재 : 김도휘
안녕하세요. 저는 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김여름입니다. 연극도 하고 영상도 하고 있습니다.
- 중국어, 영어가 가능하신데요. 연기를 위해서 준비하신 걸까요?
그렇다기보다는, 제가 어렸을 때 중국에서 살았어요. 중국 학교도 다니고, 국제 학교도 잠깐 다니고, 한국 학교도 다녔어요. 그러면서 다양한 언어를 (잘은 아니지만) 익힐 기회가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에 전학을 많이 다녔어요. 거의 5~6번 정도 다닌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언어로 친구들과 의사소통하는 것부터 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때가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제 안에 쌓여 가는데 저는 표출하는 방법을 잘 몰랐죠. 이걸 어떻게든 밖으로 꺼내보려다 보니 예술 활동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 다양한 환경 속에서 성장한 게 연기를 시작한 계기가 된 거군요.
그렇죠. 연기를 하든, 글을 쓰든, 노래를 하든, 춤을 추든 예술 활동을 하는 걸로 내면의 것들이 표출됐어요.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처음 연기를 접했고 연기가 재밌어서 연극학과를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한두 작품에 참여한 후 오랫동안 배우 활동을 그만뒀습니다.
어느 순간 연기하는 게 무서웠어요. 학교에서 열심히 연습하고 공연을 올렸지만 어딘가 공허했고 상처도 많이 받았어요. 경쟁적인 분위기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모든 게 경쟁이었거든요. 분명 재밌어서 시작했는데 무대에 서는 게 부담스럽고 평가받는 것들이 두려웠고요. 어느순간 연기하는 과정 그 자체의 즐거움보다 무대 위에 보이는 결과적인 내 모습만 생각해서 즐거움을 잊어버렸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의 중심이 잡히지 않았는데 다른 사람을 흉내 내려고 하니까 껍데기만 남는 느낌이었죠. ‘나’ 자신을 찾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잠시 다른 일도 해보고 캄보디아에 가서 1년 반 정도 살아보기도 했어요. 내가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세상을 보고 싶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했거든요. 그렇게 5~6년이 흘렀어요.
하지만 다른 일을 하면서도 예술을 완전히 놓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그런 게 너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죠.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얼마나 이걸 하고 싶은지, 이것만큼 내가 잘하고 싶어했고 재밌어했던 일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예술 없이 사는 인생이 너무 심심했어요. 이런 생각이 확고해지니까 다시 연기를 시작하게 됐어요.
이렇게 나의 중심이 잡히니까 오히려 다른 인생을 이해하고 다른 캐릭터를 이해하는 것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연기는 사람을 만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없으면 그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같아요. ‘내’가 생기고 ‘내’가 누군지 알게 되니까 다른 삶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 같아요. 이제야 연기가 즐거워졌죠. 지금은 창조성을 발휘해서 만들어가는 그 과정 자체가 제게 의미 있고 재밌어요.
2. 어떤 활동, 작업을 하시나요.
올해는 광주시립에서 연극을 했습니다. <위선자 따르튀프>의 ‘마리안’ 역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ACC(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지역배우를 지원하는 <시즌 예술인>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요.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올리는 공연에 배우로 투입될 기회를 주고 워크숍을 통해 연말에 '사이공연'이라는 1-2인극을 직접 만들어 연기하는 작업을 하는 거예요. 거기 2차에 선정되어서 5월부터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 독립영화 <슬기다운>에서 ‘슬기’ 역을 연기했습니다. 올해 영화제에 개봉되어서 광주독립영화제와 전주국제영화제, 대구단편영화제에서 상영됐습니다. 그 외는 얼마 전 음악극 <생애주기>에 출연했고, 지금은 뮤지컬 <시작하는 여자 끝내주는 남자>를 상무지구 기분좋은극장에서 공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월 말부터는 5.18 관련된 연극연습에 들어갑니다. 확정된 건 아닌데요(웃음)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내년에 올릴 예정이고 10월 말부터 한 달 정도 준비한 후 11월 말에 쇼케이스 형태로 선보일 예정입니다.
- 최근에 출연하신 <생애주기>는 어떤 작품이었나요?
<생애주기>는 수림 연출님과 다은 배우님, 지율 연주자님과 함께했습니다. 음악극이라는 장르를 처음 접했고 무척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일단 연극인데 피아노가 주가 되고 연기가 피아노의 표현 수단이 되는 게 신기했죠. 보통은 그 반대잖아요. 연극의 정서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을 사용하는데 이건 음악을 잘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연극을 사용한 거니까. 그래서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도 그동안 해왔던 작업과는 달랐기 때문에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제 나이대가 아닌 다른 연령대 인물의 연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경험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생애주기>는 저한테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이게 완성된다면 어떤 극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죠. 그런데 피아노 연주자분이 들어오시면서 이해가 됐어요. 연출님이 이 부분은 이걸 의도한 것이구나, 배우들과 논의도 하고 의견도 내고 함께 만들어왔습니다.
- 출연하신 작품이나 연기하신 배역 중에서 기억에 남는 게 있나요?
연기를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게 된 작품으로 <여름 위로>라는 단편이 있습니다. 영화제에 내려고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고 한 번 영화 스터디같은 모임에서 가볍게 찍어보자 했던 건데 영화제에도 나가게 됐어요.
<여름 위로>에는 제 자전적인 이야기가 조금 들어가는데요. 과거의 저를 30대의 제가 만나서 위로하는 내용이에요. 20대의 저는 말 그대로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죠.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 힘들었고 연극학과도 즐거웠지만, 마찬가지로 적응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 시기 제 꿈을 지켜나가는 것 자체가 저 스스로에겐 큰 도전이었어요. 고민도 많고 어두웠던 시절이죠. 그런데 그 시간을 다 지나오고 이렇게 나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제가 그때 그 과거를 돌아보면서 괜찮아 네 곁엔 내가 있어 라고 건네는 위로의 말이 저에겐 의미가 있었어요. 오래 연기를 쉬었다가 그 작품으로 다시 연기를 시작했기 때문에 의미가 깊습니다.
- 오늘(인터뷰 당일) 출연하시는 뮤지컬은 어떤 내용인가요?
웨딩플래너 여자와 장례지도사 남자가 서로 사랑을 하고 이별하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사랑하고 결혼까지 준비하지만 남자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여자는 떠난 남자를 잊지 못해 힘들어하고, 남자는 여자를 두고 저승을 가지 못해요. 그래서 운명을 주관하는 저승사자들이 총 4번 만날 수 있게 해주는데요. 그 둘은 만남을 거듭하며 천천히 헤어짐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거기서 멀티 역을 맡았습니다. ‘세라’라는 만남과 이별을 주관하는 저승사자 혹은 큐피드 같은 역입니다. 세라는 두 사람을 이어주기도 하고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도 하죠.
멀티 역도 처음이고 코믹한 역도 처음이라 많이 배워가며 준비한 공연입니다. 한 달 동안 여는 공연인데 이렇게 공연을 길게 하는 것도 처음이에요. 공연이 길어지면 매번 관객분들도 달라지잖아요. 거기에 따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여러 가지 시도하면서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시작하는 여자 끝내주는 남자'는 광주 예술단체 플레이 팩토리와 광주 청년예술인들이 함께 만든 창작 뮤지컬입니다.
- 평소 뮤지컬도 자주 출연하시나요?
뮤지컬도 처음이에요. 학교에서 워크숍만 해봤고 실제로 공연을 해본 건 처음입니다. 출연하는 동료 배우들도 노래를 원래부터 불렀던 친구는 거의 없고 이제 배우면서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다들 열심히 하고 있어요. 뮤지컬은 10월 5일까지 기분좋은극장에서 공연하고요. 저는 화, 목, 일요일 출연합니다. 한 번 보러 오세요(웃음)
하고 싶은 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뮤지컬도 처음이긴 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더 많은 걸 해보고 싶어요. 연극도 가리는 거 없이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왜냐면 제가 연기를 쉬었던 기간이 있는 만큼 공연에 대한 갈증이 있어요. 가능한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영상도 독립영화뿐 아니라 상업영화도 해보고 싶고요.
그리고 이제 ACC에서 기획한 <시즌 예술인>은 12월에 제가 연출하고 연기한 1인극을 올릴 예정입니다. 그것도 제게는 첫 도전이에요. 이건 너무 머리 아프긴 한데..(웃음) 도움도 많이 되고 재밌는 작업 같아요. 특정 분야를 정해놓지 않고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당연히 있습니다. 이번에 수림 연출님, 피아노 연주자님과 공연할 때도 너무 좋았어요. 신선하고, 즐거워요.
그리고 저는 음악이든 그림이든, 또는 완전히 다른 예술 분야든지 간에 새로운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꼭 기존 영상 연극이 아니더라도요. 저는 다른 예술도 관심이 많고 좋아하기도 해요. 새로운 장르랑 부딪혔을 때 만들어지는 그런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하는 일의 의미와 즐거움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결국, 제 마음가짐과 태도가 작업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내게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얼마나 즐거운지를 계속 찾고 느끼면서 임해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른 예술도 그렇겠지만 결국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고 외부적으로 가치가 매겨지기도 하겠지만 그런 것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저 자신의 재미와 만족 그리고 성장을 우선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광주에서 활동한 지 얼마 안 됐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연기활동을 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오래 활동한 게 아니라서 말하기 조심스러우면서도, 새로 들어온 사람으로서 확실히 느끼는 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새로운 배우, 새로운 연출이 공연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일단 배우로서 오디션을 보는 공연이 적어서 아쉬워요. 제가 처음 광주에서 연기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 수도권에서 주로 쓰는 필름메이커스, 오티알(OTR) 오디션을 찾아봤는데요. 광주는 오디션이 많지 않았어요. 분명 극단도 있고, 연극무대도 있는 것 같은데 오디션 공고를 찾기가 어려웠죠. 광주시립 정도가 오디션을 보는 것 같았어요. 오디션 공고를 하셨던 수림 연출님 공연도 흔치 않은 경우죠. 새로운 연기자와 연출자를 계속해서 키워내고 또 그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공연들이 많아져야 다양한 연극/영상들이 생겨나고 예술판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작진과 배우 간의 네트워킹이 필요합니다. 광주 독립영화제에서 '영화인의 밤'을 열고, 영상 쪽에 관심 있는 광주배우들과 제작진 단톡방을 만들기도 했지만 좀 더 크고 확실한 교류창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 젊고 능력 있는 배우들이 많은데 아는 감독님들은 적합한 배우를 찾느라 수소문하시기도 하고, 배우를 찾지 못해 다른 지역에서 배우를 데려오시기도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지역 연극, 영상 문화가 더욱 활발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여기서 활동하면서 얻게 된 걸 하나 꼽자면 동료애예요. 광주의 선후배 배우들이 우리 잘해보자 하면서 서로 끌어주고 뭐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도와주려고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다 같이 잘됐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연출과 작품, 좋은 배우들이 성장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많아져서 마음껏 연기하고 굳이 수도권으로 가지 않아도 지역에서 충분히 배우로서 활동하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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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던 말의 의미를 새삼 깨닫는다. 인생 경험이 많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상 사람들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는 것이 너무도 적다. 오늘 또한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낯선 현실을 통해 배움을 얻어간다.
인터뷰어 김도휘
즐겁게 사는 방법은 무엇일까 오랫동안 고민했다. 최근에서야 삶의 깊은 즐거움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나온다는 걸 깨닫고 타인의 세상에 들어가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보고 겪은 것들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자 한다.
주요 활동
- 반려동물 입양 캠페인 <COME AND SEE ME> 운영
- 젊은 문화예술단체 연대 플랫폼 <상상실현 네트워크> 간사
본 인터뷰는 2025년 광주광역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문화특별의제
‘문화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