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청년 예술인X기획자 아카이빙 취재 : 유명진
선은 곧게 나아가고 굴곡지게 휘어지며, 개인의 감정을 묘사하고 우리의 공감을 형성하기에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가장 예술적인 매질입니다.
그렇게 섬세한 선의 움직임들을 따라가고 모아가다 보면,
때로는 가시와도 같은 아픔, 햇살과도 같은 기쁨이 되기도 합니다.
매일 맞이하는 시간의 흐름과 그 순간의 감정을 드로잉을 통해 탐구하며, 이렇게 깨달은 저의 삶의 여정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 윤부열이라고 합니다.
제 작품에서는 가족을 포함한 인간관계를 키워드로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현실에서도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보려고 노력해요. 그러면서 내 감정과 그 사람의 감정들을 더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탐구해 보고자 하고, 누구에게나 공통될 수 있는 키워드를 가져가려고 합니다. 꼭 나의 삶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겪어봤을 만한 그런 소재를.
지금은 형상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 첫 형상 시리즈 작품으로는 한창 방황하고 잠을 못 잤을 시기에 그린 불면증 작업이 있고, 다른 주제로는 꿈을 표현해낸 요정 시리즈, 죽음을 향으로 시각화한 작업도 했습니다. 그때 그 좋은 기억들이든 나쁜 기억들이든 내 생을 이루어가는 소재들을 탐구하는 게 재밌는 것 같아요.
- 작업의 방향성을 정하는 계기가 무엇이셨나요?
제가 작업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거든요. 그때 제 친구가 너만의 마인드맵을 만들어봐라 해가지고 한 2주동안 제 이름을 적어놓고 제 인생을 돌아보기 시작했었어요. 그 안에서 다양한 것들이 나왔고, 보이는-보이지 않는 소재들을 같이 합해서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그때 드로잉을 처음으로
시작했어요.
16년도부터 시작해서 2년동안은 드로잉만 했죠. 그리고 첫 캔버스 작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드로잉 덕분에 그때부터 선 작업을 시작을 한 거예요. 지금도 꾸준히 그리고 있어요. 지금 아마 천 점 됐을 거예요.(웃음)
드로잉이 있어서 정말 작품이 계속 만들어지는 것 같고, 그리면서 생각도 많이 하게 되는데. 이제 그 시간들이 어떻게 보면 다 기록되어 있는 거잖아요. 이런 것들이 결국에는 작품에도 영향을 정말 많이 끼치고,
또 합쳐져서 작품이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드로잉이 손에 익다 보니 전에는 정적이었던 선의 느낌이 지금은 더 부드럽고 유연해지기도 했고요.
- 작업하시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있다면?
요즘 보고, 듣고, 배우고 받아들이는 태도의 방향성이 중요하단 걸 느끼고 있어요. 다른 세상을 경험해야 발전할 수 있다는 걸 체감했거든요. 그래서 항상 겸손하려고 하고 어떤 사람을 만나도 많이 들으려고 해요. 또 그 관계 안에서 찢기든 상처를 많이 받든지 간에, 많은 경험을 해봐야지 어떻게든 일어서는 방법도 알고 자기 것이 생기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은 다양하게 만나지만, 대신 그 안에서 내 삶은, 내 작업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죠.
예전에는 누구한테 작업을 꼭 보여줘야 하나 싶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이제 내 삶은 내가 만들어 가지만 다양한 사람들이랑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져서요. 그 사람한테 위로를 줄 수 있는, 공감하고 또 회상할 수 있는 작품들. 그러면서 내 삶을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을 진심으로 만들고 싶긴 해요.
제 전시장 와서 어르신이 울고 가신 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죽음에 관해서, 무덤 컨셉으로 설치를 했었는데 어르신이 자기 부모님이 생각나서 막 울면서 다가오시는 거예요. 그때 가슴이 제일 찡했던 것 같아요. 내 작품으로 이런… 전달을 해 줄 수 있구나. 이 일을 계기로 좀 크게 다시 마음을 다잡은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작업을 준비해야겠다.
5년 전부터 김민철 국악인과 협업 작업에 대해 이야기를 했었어요. 둘이서 작업도 해봤었는데 약간 보여지는 성과가 없었거든요? 근데 좀 아귀가 맞게 김민철 국악인이랑 김주상 피아니스트 그 두 분이서 곡을 만들어
보더니 다음에는 3명이서 다원예술을 만들어보자는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년부터 사업계획서를 써서 제대로 해보려고 합니다.
전시를 시작으로 하고 마지막에 공연으로 이어지는 것, 제 작업 주제로 곡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고 반대로 곡들의 주제로 제가 그림을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예술인들과 다방면으로 조인을 해서 다양하게 광주에 예술적인 걸 알려보자 라는 취지입니다. 저도 처음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좋은 시도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해보려고 합니다.(웃음)
결국에 제 작업 주제도 삶이니까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끌어와서 같이 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거든요.
예술 쪽도 그림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 촉각 등 다양한 것을 같이 이용해서 작업해 보고 싶은 게 크죠.
5. 본인이 전문예술인으로 남기 위해서 필요한 게 무엇인 것 같나요?
일단 바탕에는 대중의 관심이 있어야 돼요. 그러려면 홍보도 마케팅도 중요하고, 입에서 입으로 연결되는 게 필요하죠. 근데 확실히 광주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열심히 준비한 끝에 전시를 연 건데 사람이 적게 오면 이게 너무 슬퍼요.
그럴 때마다 예술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차이가 크다는 걸 느꼈어요. 그런데 우리같이 아직 어린 애들은 힘이 없어서 뭘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없고, 소수로 한 명 한 명으로는 절대 그냥 미동도 없어요. 광주 예술계를 움직이려면 최소 30에서 40명으로 된 단체로 뭔가를 크게 벌려야지 가망이 있다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제가 계속 사업체를 만들 계획을 하는 거고요. 다양한 작가들도 있고 공연 쪽 사람들도 합심해 무언가 만들어야지 그래도 한 5%라도 미동이 좀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 작업을 보면서 관람객들이 공감하고 위로받았으면 하지만, 저에게 있어 제 작업은 저 자신의 책을 한 권 만든다는 느낌으로 그냥 ‘아 이런 경험도 했었구나.’ 기록의 작업에 가까운 것 같아요.
윤부열이라는 작가가 이렇게 살고 이런 감정과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살다가 죽었구나하고 딱 작품만 봐도 알 수 있게끔요. 그렇게 저만의 또렷한 색깔이 기록으로 남아, 먼 훗날 지나서도 신선하게 기억되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인터뷰를 마치며
윤부열 작가님께서 적극적으로 다가와 주신 덕에 알게 된 밝은색의 배경에 섬세한 검은 선이 왠지 서글펐던 작가님의 작품. 얇은 선들이 이어져 하나의 흐름을 만들 듯이 오늘의 인터뷰도 생각의 실들이 엮어져 완성되었다. 인터뷰에 자신이 없으시다 말씀하셨지만 잠깐씩 생각에 잠기다가도 금세 말을 이어가는 모습은 평소 작업 방식과 진중한 태도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들었다. 짧은 시간 속에서 주변과 타인들을 고려하는 그리고 인터뷰어를 배려하는 자연스러움은 필연적으로 작가님의 작품이 관람객에게 다가가는 위로와도 닮아있었다.
인터뷰어 : 유명진
사회의 이슈를 외면하기에는 조금 예민하고 주변에 편재한 문제를 느끼기엔 조금 둔감한 어중간한
사람으로서 붕 뜬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으로 연결되는 감각을 좋아하여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쪽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애매한 감각으로 기준선에서 삐죽 튀어나온 부분을 그러모아 전시 기획을 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통 속의 추구미 너머》(2024), 《단면의 총합》(2023), 《보물찾기: 빼앗긴 호기심을 찾아서》(2023) 등이 있다.
본 인터뷰는 2025년 광주광역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문화특별의제
‘문화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