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관 출신 변호사의 대형로펌 적응기 - 23
지난 주말, BTS가 광화문에서 공연을 했다. 경찰, 소방, 일반 공무원까지 수천 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사기업 행사에 공무원을 과도하게 동원한 것 아니냐고 비판한다. 주말 유동인구가 많은 광화문을 그렇게까지 통제할 필요가 있었냐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공무원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 글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는 이미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담당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문화가 정착되어 있다. 이런 문화에서는 그 공무원에게 실제로 잘못이 있는지, 그 잘못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사소한 수준이었는지, 나아가 그 실수와 안전사고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공무원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고서 '면피'를 하려고 한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이란, 문제에 효과적인 대응이라기보다는 소위 보여주기식 대응을 말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쇼’에 가까운 대응도 그 연장선에 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나는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무원, 나아가 공무원 조직은 자신의 책임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사고하고 움직인다. 성과에 대한 보상은 미미한 반면 작은 실수에도 큰 책임을 지는 구조이므로 자연스럽다면 자연스러운 결과다.
사실 공무원의 이러한 판단과 행동은 이번 일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나도 공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봐왔다. 아니, 나 역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면 최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을 해왔다.
문제는 민간에서만 일한 사람들은 이 구조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민간에서는 성과가 보상으로 이어지고, 잘못을 범하면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돌아온다(물론 현실은 유토피아가 아니니 항상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어디까지나 공무원 조직과 비교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아주 단순한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얼마 전 내 로펌 입사 동기가, 행정기관의 담당 공무원이 자신이 쓴 의견서를 받아보고 고객에게 제재처분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동기는 그 의견서에 대해 '말이 안 되는 내용을 억지로 쓴 것’이라며, 담당 공무원이 자신의 의견서를 읽고 설득된 것이 신기할 정도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의견서의 설득력은 애초에 중요한 게 아니었을 것이다. 담당 공무원이 법무법인 명의의 의견서를 요구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처분을 하지 않겠다’는 방향을 정해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담당 공무원이 독자적인 판단에 의해 제재처분을 하지 않는다면, 추후 감사가 있을 경우 감사에 대응하기가 어려우므로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할 근거가 필요했을 뿐이다. 결국 담당 공무원은 면피용으로 활용할 '법무법인 명의'의 의견서가 필요했던 것일 뿐이고, 처음부터 그 의견서의 내용이나 설득력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과연 제대로 읽어봤을지도 의문이다).
내 동기가 사회경험이 부족해 이런 오해를 하는 게 아니다. 변호사로 몇 년을 일한 사람들 역시 공무원의 의사결정 방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수조 원 규모의 공공-민간 협업 사업을 자문하던 변호사가 나에게 담당 공무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며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담당 공무원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그 사업이 성공하면 담당 공무원의 성과가 될 텐데, 왜 그렇게 움직이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반대로, 처분 사유가 명확하지 않은데도 특정 기업에게 반복적으로 제재처분을 하는 공무원을 비판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공무원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두 상황 모두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가 문제가 생기는 것보다, 움직이지 않거나 형식적인 절차를 거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편이 훨씬 안전하기 때문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공-민간 협업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더라도, 나에게는 어떠한 보상도 오지 않는다. 오히려 일이 많아지고 자주 감사를 받게 되어 피곤해질 뿐이다. 제재처분도 마찬가지다. 내가 제재처분을 함으로써 민간기업의 경영이 어려워지더라도 나에게는 어떠한 페널티도 없다. 반면 제재처분을 하지 않으면, '왜 해당 기업의 편의를 봐주느냐, 특혜를 주는 것이냐'라고 하면서 온갖 감사에 시달릴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담당 공무원의 선택은 사실상 정해져 있다.
이러한 오해를 하는 건 변호사뿐이 아니다. 심지어는 고객들도 비슷한 오해를 한다. 행정사건으로 찾아오는 기업들을 보면, 공무원 조직의 운영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커진 경우가 적지 않다. 이들은 행정기관에 ‘윈-윈’ 방안을 제시했는데도 행정기관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윈-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불평을 하고는 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방식이다. 기업이 직접 대안을 제시하는 것보다, 위원회나 외부 자문을 통해 제3자의 의견인 것처럼 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정치인이나 언론을 통해 공식적인 논의가 시작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그렇게 해야 담당 공무원이 외부의 객관적인 의견에 따라 의사결정을 한 것처럼 보이고,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변호사로서 행정기관을 상대할 때, 법리나 사실관계만큼이나 ‘형식’과 ‘절차’를 중요하게 본다. 공무원을 설득하는 일은 그 사람을 이해시키거나 내가 하는 말이 옳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안한 대로 공무원이 결정을 해도 문제가 없는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 지점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공무원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반대로 실질적으로 행정기관에게 딱히 득이 되지 않는 방안이라도, 형식과 절차를 갖추면 훨씬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겉으로 보면 비효율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이지만, 그 구조 안에서는 오히려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상식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공무원의 판단과 행동을 보면, 무작정 비판하기보다는 ‘어떤 구조가 공무원으로 하여금 저런 선택을 하게 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광화문 공연에 수천 명의 공무원이 동원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인력을 동원할 실질적인 필요가 있었느냐는 합리적(?) 사고방식으로 접근하면 공무원의 의사결정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보다는, 공무원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경우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보는 편이 더 정확한 접근이 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개인의 사고방식과 판단이 아니라, 그렇게 판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구조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