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그러나 아직

나그네로서의 정체성

by 에스더


성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천국이라 말한다.


사랑하는 이들과
시간의 끝에서도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곳.


어쩌면 그 소망 하나로
우리는 오늘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통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난을 부정하지 않는다.
주어진 현실을 가볍게 여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현실에 완전히 짓눌려 살지도 않는다.


한편,


천국은 사후에만 주어지는
어떤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성도의 정체성이기도 하다.


아직 도착하지는 않았지만,
이미 소속은 정해진 삶이다.



부유하지는 못한 환경이었지만,
마음은 늘 평안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평안은
세상의 안정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늘의 가치로
마음의 중심이 옮겨져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날, 꿈속이었다.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내 앞,
멀찍이 찬송가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거리감이 있어
제목도, 가사도
또렷이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장면 전체가
어떤 신성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확실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다는 감각이었다.


그분의 메시지가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조심스레 여쭈었다.


“아버지,
페이지 수를 알려 주셔야
제가 그 뜻을 알 수 있겠나이다.”


그 순간,
타원형의 빛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 빛 안에는
숫자가 또렷이 적혀 있었다.


(227)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나는 찬송가를 펼쳤다.

페이지를 넘기다

문득 마주한 제목 하나가,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는 설렘으로 다가왔다.


‘저 하늘 나라는.’


나는 기대감으로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1
저 하늘 나라는 참 아름다워라.
그 사랑 있는 곳 거룩한 성이니
내 아버지 뵈옵고자
나 항상 사모합니다.


2
내 기도 들을 때 내 영혼 즐겁고
또 주만 섬길 때 내 마음 기쁘다
찬송하며 저 시온 산
그 복된 길을 가겠네.


3
나 눈물 흘리며 험한 길 지날 때
내 힘이 되신 주 날 인도하시네
그 영광 집 나 있을 곳
내 주가 예비하셨네. (아멘.)



‘내 아버지 뵈옵고자 나 항상 사모합니다.’


이 땅을 지나는 나그네로서,
‘이미’ 속해 있으나
‘아직’ 도착하지 않은


그 소속과 방향을

분명히 깨닫게 하신 은혜였다.


구절 하나하나가
마치 내 마음을 옮겨 적은 듯 다가와,
감동으로 묵상하는 사이
주의 크신 위로와 사랑이
조용히 다시 확인되었다.


늘 지켜보시고,
지켜 주시는 은혜 안에서
나는 푸른 초장과
맑은 시냇물가로 이끌려
뛰노는 어린 양으로서


한껏, 맘껏

평안해진 내 영혼은

주 앞에서 자연스레 찬양이 되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시10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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