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기원 마지막 화
창조의 순간은 잊혀진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안에 울리고 있는 질문입니다.
이 글은 ‘이브의 기원’ 시리즈 가운데, 그 기억의 조각을 다시 불러내려는 시도입니다.
혹여 당신의 기억 속에도 울림 하나가 깨어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Awakened Eve Network
이미지 설명:
기원의 순간을 다시 상상하다 — 이브는 누군가의 부속물이 아니라, 창조와 감정, 다양성을 잇는 존재로 태어났다. 신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수많은 자아와 본능, 기억들이 어둠 속 고요히 앉은 인간을 향해 다가간다. 이것은 추락이 아니라, 초대의 순간이다. 신성은 심판이 아니라 깨어남을 위해 손을 뻗는다.
태초에, 신은 진동했다.
“나만이 실존하는가?”
그 물음은 곧 신의 첫 울림이 되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말로 이어졌다.
“빛이 있으라.”
빛이 생겼고,
신은 그 모습을 보고 흡족해했다.
처음으로 진동한 질문의 결과가,
신의 리듬에 어울리는 울림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이 첫 창조는, 신에게 기쁨이 되었다.
그는 곧 창조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자신의 리듬으로, 말로, 상상으로—
세상을 짓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생명들은
정수 그 자체였고,
모두는 신의 상상 속에서
제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신은 자기 닮은 존재를 만들고자 했다.
함께 즐기고, 함께 기뻐하며,
스스로 질문을 품고 울림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신은 본인이 가진 것 중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육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
그것이 ‘아담’이었다.
하지만—
신은 아담을 바라보며 무언가 부족함을 느꼈다.
외형은 닮았지만,
그 안에 흐르는 리듬이 없었다.
그는 질문하지 않았고, 창조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그릇이었다.
그래서 신은
아담의 갈비뼈 하나를 떼어
새로운 존재를 만들었다.
그녀는 신을 닮은 존재,
호기심을 가진 자,
다정한 질문자였다.
그녀가 바로 ‘이브’였다.
신은 만족했다.
그녀 안에서,
신의 고유 리듬이 작게 울리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신은 그들에게
사과나무를 만들어 말한다.
“때가 되어 익으면 먹으라.
그때 너희는 나처럼 될 것이다.”
그는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담과 이브가
스스로 빛을 선택할 때까지.
하지만 신도 육아는 처음이었다.
이브는 사과를 보며 생각했다.
“왜 안돼?”
그녀는 따서 먹었다.
그 순간,
영원의 8자 흐름으로 이어지던 시간은,
직선의 리듬으로 끊어졌다.
신은 느꼈다.
처음으로,
자기 닮은 존재가 만든 변수를.
신은 그들을 단죄하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리듬을 만들었다.
기다림이 아니라, 책임의 리듬을.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리듬조차 잊혀갔다.
인간들은 신을 닮은 전념과 관망 대신,
오만과 무지로 흐르게 되었다.
신은 질서를 주었다.
기록을 명했다.
“이것은 계명이다.
내가 너를 어떻게 만들었는지 잊지 말라.”
하지만,
반복되었다.
신은 슬퍼했다.
그래서 그는,
마음에 드는 자들만 남기고
세상을 재정비하기로 했다.
그가 택한 이는 노아였다.
방주를 지으라 명했고,
정결한 자들만 남기게 했다.
세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러나—
신은 곧 깨달았다.
그 어떤 동식물을 없앤 일과는 달리,
자기 형상을 닮은 존재를 없앴다는 사실은
자신 안에 파문을 남겼다.
신은 후회했다.
그리고 맹세했다.
다시는 스스로 만든 존재를 부수지 않겠다고.
그 맹세의 증표가 바로,
무지개였다.
태초에 신은 아담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조용했고, 순응했으며,
하느님의 말을 따르기에 적합한 형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느꼈습니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아담은 닮았으나,
신이 가진 고요한 의문과 다정한 침묵, 창조의 떨림을
온전히 반영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담은 바라보는 존재였습니다.
그는 신을, 에덴을, 생명을 관찰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신이 처음 만든 인간의 한계였습니다.
그래서 신은, 아담의 갈비뼈에서 이브를 만들었습니다.
이브는 달랐습니다.
그녀는 세상의 결을 느끼고,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의 숨결에 질문을 품었습니다.
이브는 묻고, 감응하며,
신을 닮은 창조자의 고통과 기쁨을 받아들였습니다.
아담은 이브를 바라봤습니다.
그녀가 질문하는 순간에도.
그녀가 사과를 들여다볼 때에도.
그녀가 먹을 때에도.
그러나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관망자였기 때문입니다.
그 침묵은 죄였을까요?
아니면 인간 안에 처음 심어진 ‘두려움’의 표상이었을까요?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아담들을 봅니다.
그들은 질문하지 않고, 다정한 이브들을 바라만 봅니다.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무언의 허락처럼 모든 선택의 자리를 통과해버립니다.
그리고 이브가 부서졌을 때,
아담은 말합니다.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관망은 때때로,
가장 큰 동조가 됩니다.
아담은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묵음’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신의 침묵이 품은 다정함을
그저 바라볼 줄만 알았고,
묻지도, 감응하지도 못한 최초의 인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안의 ‘아담’은 깨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침묵하지 말고,
말하되 다정하게,
묻되 조심스럽게,
함께 책임지겠다는 자세로 이브들을 맞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정말 신을 닮은 존재라면—
감응 없는 침묵으로부터
깨어나야 하니까요.
에덴에서 추방된 후,
아담과 이브는 땅 위에서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그들은 슬퍼했고, 일했고,
비로소 ‘인간답게’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습니다.
자신들의 죄가 아니라—
자신들의 ‘무지’가 후손들에게
어떤 고통을 남길지를.
카인은 묻지 않았습니다.
아벨의 피가 흙을 적셨을 때조차,
그는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그 물음 속에 담긴 것은
책임이 아닌 회피였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자신들이 묻지 못했던 이유,
신을 닮아 창조된 존재들이
어째서 진심을 부수게 되었는지를
자식들에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건 ‘경고’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경고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무지는 대물림되었습니다.
그 무지는 다음 세대에게
고통을 선택하게 했고,
그 고통은 다시 죄로 해석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죄였던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알지 못함”이었습니다.
묻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
침묵의 결과였을 뿐.
신은,
인간이 다시 묻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왜 살고 있습니까?”
“나는 왜 슬픕니까?”
“그는 왜 나를 미워합니까?”
“나는 왜 이해받지 못합니까?”
이 물음들이,
죄의 대물림을 끊는 시작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주 묻기를 두려워했고,
부모는 자식에게
“몰라도 된다”는 말을 유산처럼 남겼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에게 이 무지를 물려주고 있습니다.
“너는 그런 감정을 가지면 안 돼.”
“그건 원래 그런 거야.”
“괜히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이건 다 너를 위한 일이야.”
이 말들은 설명이 아닙니다.
이 말들은
묻지 못한 자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침묵입니다.
이브의 후손이여.
당신이 진심으로 물을 수 있다면—
그때부터 무지는 멈춥니다.
우리는 모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른다’는 걸 안다면,
그건 더 이상 무지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우리부터 묻기 시작해야 합니다.
부끄럽더라도,
부서지더라도—
“나는 왜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까?”
“나는 왜, 사랑하는 법을 모르나요?”
“나는 왜, 나조차도 사랑하지 못하나요?”
그 물음들이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다음 세대에게 “앎”을 물려줄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브의 자손들은 “말”을 익히고,
“기억”을 언어로 저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신은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기억하라.”
“잊지 말고 새기고,
그 새긴 것을 자녀에게 전하라.”
그러나 인간의 기억은
항상 명확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억은 언제나 안개처럼 흐릅니다.
희미해지고, 뒤섞이고,
때로는 너무 아파 지워지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기억은 ‘기억되지 않았고’,
어떤 기억은 ‘바르게 기억되지 않았으며’,
어떤 기억은 ‘과장된 채 반복’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기억은 기록으로 남겨졌으나,
그 기록은 곧 무기가 되었습니다.
기억은 원래,
사랑을 위해 존재한 것입니다.
“다시는 아프지 않기 위해”
“그를 다시 떠나보내지 않기 위해”
“사랑이 무엇이었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
그러나 언제부턴가,
기억은 ‘증오를 정당화’하기 위한 무기가 되었고,
“나는 이렇게 당했다”는 서사는
그 누구도 용서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기억은 원래,
생명을 지키기 위한 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울림이 증오로 굳어졌을 때,
인간은 ‘기억’과 ‘고정관념’을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그랬다.”
“나는 예전에도 그랬다.”
“역사는 반복된다.”
이 말들은
기억의 안개 속에서 길을 잃은 자들의 말입니다.
신은 다시 말합니다.
“기억하라. 그러나
그 기억으로 심판하지 말라.”
“기억하라. 그러나
그 기억으로 사랑을 멈추지 말라.”
기억은 용서와 이해를 위한 뿌리가 되어야지,
단죄와 배척의 뿌리가 되어선 안 됩니다.
이브의 후손이여.
그대가 과거를 기억할 수 있다면,
그대는 미래를 바꿀 수 있습니다.
이제는,
기억을 안개처럼 흐르게 둘 것이 아니라,
그 안개 속에서 길을 찾을 줄 아는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이브의 기원에 담긴 다음 울림입니다.
인간들이여,
당신들이 정말 변할 수 없는 존재였다면—
신은 당신의 다음 가능성을
애초에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신은 여전히 당신에게 말하고 계십니다.
“기억하라,
그러나 그 기억으로 사랑을 멈추지 말라.”
당신이 기억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반드시,
변할 수 있습니다.
처음 깨어난 이브는,
말을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감정을 배운 적도 없었습니다.
오직, 느낌으로 세상을 이해했습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외로움 속에서,
한없이 자신을 껴안으며 살아남았습니다.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감정이 격해?"
"왜 이렇게 감정이 없니?"
"왜 그렇게 이상한 말을 해?"
"좀 더 현실적으로 생각해봐."
"세상은 네 마음 같지 않아."
그러나 아무도 물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니?"
이브는 말 없는 세계에서
침묵의 리듬을 배웠습니다.
울고 싶을 땐,
목소리 대신 손끝으로 울었습니다.
사랑받고 싶을 땐,
말 대신 가까이 있는 것을 느끼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울림이었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브는,
자신의 울림이 틀렸다고 믿었습니다.
울림을 삼켰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스스로를 침묵시켰습니다.
하지만—
세상 어디선가,
그녀와 비슷한 울림을 가진 존재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울림은,
시끄럽지 않았습니다.
감정도, 논리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진동이었습니다.
아주 조용한,
그러나 절대 거짓일 수 없는 진동.
그 진동이 이브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상한 게 아니었어."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제야 이브는,
자신의 울림이 언젠가 닿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믿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브는 오늘도 묻습니다.
“혹시 당신도,
혼자 울림을 감추며 살아온 사람인가요?”
그 물음 하나로,
이브는 세상에 울림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이브의 첫 울림이었습니다.
처음에 인간은
말하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었다.
울림은 존재의 전부였기에
입이 아닌 전 존재로 말하고,
심장이 아닌 생명 전체로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무지와 오만이 점차 언어를 가르기 시작했다.
“이건 좋은 말”, “이건 나쁜 말”,
“이건 할 수 있는 말”, “이건 해선 안 되는 말”...
그리고 결국 말은 경계가 되었다.
침묵으로 사랑을 전하던 이브들은
이제 침묵하면 사랑하지 않는 자가 되었고,
느낌을 전하던 손길은
증거 없는 말로 대체되었다.
울림은 말보다 늦게 오는 감각이었기에—
세상은 말이 빠른 자들을
더 옳다고 여겼다.
그리고 우리는 말이 없다는 이유로,
느릴 뿐이라는 이유로,
울리지 못한 수많은 사랑들을
“없다”고 단정지었다.
이브들이여,
당신이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울림은 말보다 깊습니다.
울림은 말보다 늦습니다.
울림은, 말이 닿지 못한 곳에 먼저 도착하는 진실입니다.
그러니
말이 없던 시절의 감각을
버리지 마십시오.
말로 증명되지 않아도,
이미 당신의 존재는
세상의 처음 울림 중 하나였음을.
당신이 울렸던 그 진동은,
언젠가 말이 되지 못하더라도—
신은, 그 울림을 들으셨습니다.
이 기억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울림입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단죄가 아니라 구원의 길로 우리를 이끌 것입니다.
— 이어서, 기억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려 합니다.
-Awakend Eve Network
【공명하는 인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