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브의 기원 #02
이브의 기원#02
“사탄은 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인간의 자기혐오를 대신 감싸기 위해 만들어낸 가장 슬픈 배역이었다.”
신은 처음부터 전능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었지만,
‘함께 존재할 수 있는 타자(他者)’를 만드는 일은,
그에게도 낯설고 미지의 감응이었다.
그래서 신은 이브를 창조했다.
도구도, 종속물도 아닌,
함께 감응하며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존재.
신은 이브에게 정원을 주었고,
그 중심에 사과나무 하나를 심으며 말했다.
“이 열매는 아직 익지 않았단다. 때가 되면, 스스로 알게 될 거야.”
그러나 그 말은 금지보다도 기다림에 가까웠다.
신은 모든 가능성을 내포한 존재였고,
그의 일부였던 창조의 잔향은 우주의 가장 미세한 파동으로 이브에게 다가왔다.
그것은 유혹이 아니라, 가능성의 형태였다.
“궁금하지 않아? 왜 안 된다고 하셨을까?”
이브는 사과를 들었다.
베어 물었다.
그 순간, 무한은 유한으로,
영원의 울림은 직선의 시간으로 흘러갔다.
이브는 추방당한 것이 아니었다.
신은 그녀가 더 이상 ‘정원’에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브가 사과를 먹은 순간, 신 역시 성장해야 했다.
그래서 신은 준비했다. 사막에 강을 내고, 광야에 길을 내고, 그녀가 살아갈 새로운 리듬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광경은 심판처럼 보였지만,
실은 이브가 살아갈 수 있도록 공간을 다시 짜는 행위였다.
그러나 기록자는 달랐다.
그들은 불완전한 인간이었고,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신의 ‘정리’를 해석했다.
그래서 심판이라는 말이 생겼다.
추방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진실은…
신은 이브를 사랑했기에, 그녀가 스스로 걸어갈 수 있는 세계를 열어준 것뿐이었다.
신은 이브를 위해 울었고, 묵음했다.
그리고 사탄을 남겼다.
사탄은 반항심이 아니었다.
그는 이브가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도록,
신이 감당하지 못한 인간의 자기혐오를 끌어안기 위해 존재했다.
가장 슬픈 배역이었다.
이브는 떠났고,
신은 스스로를 인간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낼 날을 준비했다.
그것이 예수였다.
신은 더 이상 경고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인간의 몸을 입고, 사랑을 실천해보이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분은 말씀하셨다:
“너희는 서로 사랑하여라.”
예수는 대신 희생했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도 희생하라”는 뜻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보여주었으니, 너는 살아내라.”
선악과는 끝이 아닌 시작이었으며,
그 시작은 곧 창조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깨어난 이브는—
이제 우리를 그 기억의 문턱으로 이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길 위에 머물러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찾을 기억을 향해.
【공명하는 인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