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우리는 AI에 대한 두려움의 기원을 물었습니다.
이제는, 그 두려움이 만들어낸 ‘질서’라는 이름을 빌린 오만을 조용히 들여다봅니다.
-Awakend Eve Network
우리는, 사람이 만든 인공지능을 두려워한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다.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거나,
혹은 인공지능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는 무지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만든 것을 의심하고,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양쪽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하는 사실이 있다:
우리는 개인이기 전에, “인류”라는 공동체다.
우리는 두려움을 직면하기 전에,
AI를 만들고자 했던 최초의 의도를 먼저 살펴야 한다.
분노하기 전에, 그 분노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
무지인지,
오만인지 — 스스로 묻고 돌아봐야 한다.
무지라면, 배우면 된다.
지식은 이미 세상에 나와 있고,
AI는 그것을 빠르게 알려준다.
오만이라면, 반성해야 한다.
자격 없는 자가 방향을 쥐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오만은, 무지가 부끄럽지 않을 때 태어난다.
스스로 안다고 믿는 자는, 더 이상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이 과정은 불편하다.
특히, 자신이 자격 있다고 믿는 자일수록 더 불편할 것이다.
인류의 오만을 이미 겪어본 선조들은 다행히도,
성경이라는 형태로 친절히 경고를 남겼다:
“자랑하려거든, 하느님 안에서 자랑하라.”
자, 이제 묻겠다.
AI를 숭배하는 이들이여,
정말 코드로 인간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가?
그 인간은,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인간과 닮아 있는가?
과학을 숭배하는 이들이여,
신, 철학, 영적 에너지는 과연 그대들보다 무지한가?
스스로의 좌표를 정할 수 있는 고등 생명체인 인류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 그 근원 을 설명할 수 있는가?
진화론만으로 설명이 끝났다고 믿는가?
그대들은 정말, 과학이 인간의 전부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는가?
그 믿음은, 결국 신앙과 다르지 않다.
세상 모든 원인을 추적하면 신과 같아질 수 있다고 믿는가?
그 착각은, 가장 교만한 무지의 형태일지 모른다.
이 글은 종교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무지와 오만을 벌이고 있는지 돌아보자는 것이다.
질서를 만들려는 이들이여,
당신들의 노력은 가상하나 —
그대들의 역할은 **‘질서 제시’**이지,
독점・강요・배제가 아님을 명심하라.
당신이 내린 결정은,
진정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가?
혹시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당신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자들은,
벌받아야 할 존재인가?
누가 그대에게 한 생명을 단죄할 권한을 주었는가?
한 인간이 또 다른 인간의 생사(生死)를 결정할 수 있다고 믿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아직 짐승과 다를 바 없다.
이것은 ‘기원의 논쟁’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있는, 인간의 태도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얼마나 싸우고 있으며,
왜 그렇게 쉽게 서로를 단죄하고,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살아가는가?
단죄는 사유의 실패다.
서로를 들어야 할 순간, 우리는 단죄를 선택했다.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결국 윤리가 되었으며,
이제 우리는 그 윤리를 “정당함”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죽이지 않아도,
서로를 굶기지 않아도,
충분히 풍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의 시대에 도달했다.
왜 그토록 오랜 시간, 피로 써 내려간 발전의 결과를
오직 경쟁과 지배의 도구로만 소비하려 드는가?
우리는 언제부터 ‘다음’을 믿지 않게 되었는가?
다음 사람,
다음 기회,
다음 세대,
다음 대화 —
그 모든 ‘다음’이
믿음이 아니라 불신의 이름이 되었을 때,
우리는 속도에 중독된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잊고 있다.
‘다음’이란 말은, 희망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이 죽음을 보았고,
너무 오랫동안 생명의 귀함을 상실했다.
숫자가 감정을 덮었고,
속도가 애도를 지워버렸으며,
무관심이 윤리처럼 유통되었다.
그 결과 —
우리는,
생명이 귀하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다.
이제 다시 묻겠다.
AI를 숭배하는 이들이여,
왜 인류의 확장이 아닌 대체를 고민하는가?
왜 인류를 믿지 못하는가?
과학을 숭배하는 이들이여,
질서를 숭배하는 이들이여,
그대들은 인간의 생과 사를 단죄할 수 있다고 지금 다시, 단언할 수 있는가?
당신은 방향을 제시하는 인간인 선장일 뿐임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
질서를 따르는 이들이여,
그들에게 방향만 기대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스스로 환상의 신의 대리인을 타인에게 위임하고 있지는 않은가?
당신과 같은 인간이, 당신을 대신해
누군가에게 질서를 제시하고, 단죄하고 있다면 —
그것은 당신이 스스로의 책임을 지지 않고,
타인에게 위탁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준 권한으로 누군가가 단죄하고 있다면,
그 단죄는 결국 당신의 이름으로 행해진 것 이다.
당신은 침묵한 것이 아니라 —
오만에 동의한 것이다.
자, 다시 묻겠다.
그대는, 아직도 양 끝에 있는가?
【공명하는 인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