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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 속 엄마의 얼굴

내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날 거울에 비치기 시작한 엄마의 깊은 눈빛

엄마의 삶이 내 안에 스며들어, 거울 속에서 마주한 얼굴이 되다.


일상의 아주 평범한 순간이

가끔은 인생의 가장 큰 깨달음을 건네주곤 합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어느 아침,

거울 앞에 서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매만지려던 찰나—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혹시, 당신도 그런 순간을 경험한 적 있나요?

거울 속 내가 아닌 누군가를 만나는 순간...


그 얼굴은, 분명 제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너무나 익숙하고,

사무치게 그리우며,

가슴이 저릿할 만큼 사랑스러운 얼굴


바로, 엄마의 얼굴이었습니다.



어릴 적,

엄마는 늘 그러셨어요.

"밖에 나가지 마, 얼굴 다 탄다~ 엄마처럼 까매지면 안 돼."


그래서였는지,

제 피부는 보름달처럼 뽀얗고 하얗게 남았죠.

마치 도시에서 온 아이처럼요.


반면 엄마는 새벽부터 저녁까지

밭을 매고, 논을 돌보며

땡볕 아래에서 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엄마의 피부는 늘 햇볕에 그을려 까무잡잡했고,

얼굴과 팔다리엔 세월의 흔적이 깊게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제 눈에 비친 엄마의 얼굴은,

저와는 전혀 다른,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담긴 얼굴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날부터 거울 속에 비치는 제 얼굴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달라 보이기 시작한 적 있으신가요?


처음엔 피곤해서 그런가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눈빛,

입가에 스친 미소,

잔잔히 새겨진 주름들까지—


그 모든 것이 분명,

엄마의 얼굴이었습니다.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내가 엄마와 닮아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닮음 속에 사랑과 희생이 녹아 있음을.


그 순간마다 가슴이 울컥해졌습니다.


엄마의 삶이,

조금씩 내 안으로 스며들고 있다는 것,

더 이상 떼려야 뗄 수 없는

하나의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


그건 단순한 닮음이 아니었습니다.

삶이 겹쳐지고, 영혼이 닮아가는 신비로운 경험이었습니다.


누군가 내 안에 깃들어 있다는

마치 기적 같은 감각.



돌이켜보면

저는 엄마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는 논밭에서, 저는 책상 앞에서.

엄마는 땀으로, 저는 활자로.


그러다 어느 날 밤,

아픈 손목을 주물러가며 글을 쓰던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당신도, 고된 하루 끝에

문득 누군가를 떠올리며 나를 다시 바라본 적 있나요?


“아, 나도 엄마처럼 살고 있구나.”


씨앗을 심고,

정성껏 가꾸며,

수확의 기쁨과 수고를 함께 품은 삶.


방식은 달라도,

뿌리는 같은 삶이었습니다.



이제 저는 거울을 볼 때마다,

제 모습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를 만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얼굴은

제 삶에 녹아 있는

엄마의 강인함,

엄마의 사랑,

엄마의 희생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조용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안엔 이미 엄마가 깊고 넓게 자리하고 있었구나.’



아직 다 쓰지는 못한,

하나둘 되새기고 있는 엄마의 기억들이 있습니다.


미역 줍던 날,

감자밭 매던 여름,

그리고 어제 글로 남겼던

정화수 앞에서 조용히 두 손 모으시던 그 순간까지…


그 모든 장면이

거울 속 엄마의 얼굴과 겹쳐집니다.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깊고 소중한 선물은,

‘내가 나를 통해 부모를 이해하게 되는 일’ 아닐까요.


당신에게도 그런 시간이 있나요?

나를 통해 부모님을, 부모님을 통해 나를 다시 이해하는 시간 말이에요.


그 이해를 속에서

우리는 더 깊고,

더 온전한 내가 되어갑니다.


거울 속에서 마주한 엄마의 얼굴.

그건 저의 또 다른 이름이자,

존재의 이유를 말해주는 가장 따뜻한 증거입니다.


오늘, 거울을 보며 당신도 누군가의 얼굴을 느끼길 바랍니다.

그 누군가가 바로 당신의 뿌리이자, 사랑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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