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이라는 생물

교수님, 학점에 +는 붙여주세요

by 김건우

지금 돌이켜보면, 공주교대의 교수님들은 모두 개성이 뚜렷했다. 특히 영어교육과 교수님들은 하나같이 인품도 좋고, 강의력도 뛰어났다. 원어민 교수 리사는 영어 소설 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은 매주 지정된 분량을 읽고 와서 그 내용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는 형식이었고, 매시간 학생들의 발표를 통해 수업이 진행됐다. 리사는 늘 발표를 해야 평소 태도 점수를 줄 수 있다고 강조했지만, 나는 매번 조용히 앉아만 있었고, 언제 말을 꺼내야 할지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학기가 흘러갔고, 마지막 시험은 1:1 말하기 시험이었다. 이번엔 준비를 해간 덕분에 어느 정도 말이 나왔고, 리사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너 말도 할 줄 알았구나?” 내가 한 학기 내내 조용했다고 해서, 아예 말도 못할 거라 생각하셨나 보다.


함께 기억나는 또 다른 원어민 교수는 마크였다. 영미문화 수업을 맡았던 마크는 키와 체격이 장대한 백인이었다. 우리에게 미국 뮤직비디오를 자주 보여주곤 했다. 1학기 시험은 ‘영미문화 콘텐츠 소개’였는데, 나는 영화 <트레인스포팅>과 팝송의 황제 퀸,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를 주제로 조사해서 발표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발표와 말하기 능력을 느꼈다. 내가 준비한 자료가 흥미롭게 흘러갔고, 분위기도 매우 좋았다. 발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고, 결과는 A+. 하지만 2학기에는 수업을 몇 번 빼먹은 탓에 ‘괘씸죄’가 적용되었는지, 학점이 C+로 뚝 떨어졌다. 마크의 눈은 날카로웠고, 기준은 엄격했다. 그리고 영어교육론을 맡으셨던 한국인 교수님도 계셨다. 토종 한국인이셨지만 외모도 분위기도 영국 신사 느낌이었다. 동그란 안경에 지적인 이미지가 쉰들러 리스트에 회계사 역으로 출연한 벤 킹슬리와 닮았다. 발음도 정확하고 학생들에게도 정중하셔서, 강의를 듣고 있으면 마치 영국 대학에서 특강을 듣는 느낌이 들곤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교수님은 S 교수님이다. 수강생들 사이에서는 ‘엔젤 S’라는 별명도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대부분 교수들은 A학점을 수강생의 30% 이하로 제한하는데, 선영 교수님은 늘 그 30%를 ‘꽉꽉’ 채워서 주셨다. 심지어 A+로 말이다. 과제 피드백도 정성스럽고, 강의도 매번 열정적이어서 다들 그 수업을 좋아했다.


그리고 또 하나 기억에 남는 수업이 있었다. 국어 교육 수업인데, 주제는 ‘슬로 리딩’이었다. 슬로 리딩이란 말 그대로 천천히, 깊이 있게 책을 읽는 방식인데, 수업의 핵심은 직접 슬로 리딩에 대해 조사하고, 그것을 활용한 수업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조사를 하다 보니 정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일본에서 도쿄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명문 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이 학교는 국어 수업을 한 권의 소설책으로 1년 내내 운영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줄거리를 중심으로 읽고, 다음에는 문법적 요소를 짚어가며 다시 읽고, 이후에는 책 내용을 바탕으로 역할극도 해본다고 했다. 이처럼 다층적이고 반복적인 독서를 통해 학생들의 사고력과 이해력이 자연스럽게 증진된다는 것이었다. 특히 뇌를 좋게 만드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글을 읽고 쓰는 일’이라는 점이 깊이 와 닿았다. 많은 책을 읽는 것보다,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고 되새기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반면, 색다른(?) 교수님들도 있었다. 국사 수업을 맡으셨던 Y 교수님은 좀 특별했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었고 거동이 불편해 보이셨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풍을 한 번 앓으신 뒤라고 했다. 수업은 늘 한자 몇 자 쓰다가 마무리되곤 했고, 백제 문화재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지만 강의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교수님의 발음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매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10분이었다. 교수님이 직접 출연하신 다큐멘터리를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화면 속 젊은 교수님은 무척 정정하셨고, 유창하게 백제 유산을 해설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세월이 참 무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과에도 독특한 교수가 있었다. 서울대 음대를 나와 러시아의 유명 음악학교까지 유학한 정통 엘리트. 뭔가 지휘자 같은 외모에, 항상 번개처럼 곱슬거리는 머리를 하고 다니셨다. 수업은 클래식 음악 위주였는데, 시험 범위는 무려 ‘100곡’. 클래식 100곡을 외워야 했고, 시험은 단 몇 초간 음악을 들려주고 제목을 쓰는 식이었다. 당연히 대부분 학생은 0점을 맞았고, 그 교수님은 채점 후 결과를 공유하며 은근히 저격 발언도 곁들였다.


“베토벤 교향곡도 못 맞히면 교대생 자격이 있는 겁니까?” 지휘봉으로 한 대 맞을 것 같은 톤이었다.


반면, 다른 음악 교수님은 무척 따뜻한 분이었다. 한 번은 리코더 실기 시간에 내 왼손에 맞춰 ‘나만의 운지법’으로 부르고 있었다. 교수님이 내 운지법을 보곤 다가오셨다. 내 왼손이 교수님의 시야에 들어오자 잠깐 흠칫 놀라시더니 별말 없이 돌아가셨다. 그 표정을 본 나는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이후로는 나만의 운지법 그대로 연주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셨다. 그 진심이 느껴져 고마웠다.


가장 황당했던 기억은 미술 실기 시험이었다. 정물화를 그리는 시험이었는데, 준비된 피사체는 페트병 하나. 내가 미술에 약했기에, 어떻게든 흉내라도 내보려 어버버대고 있었는데, 미술 교수님이 다가오시더니 “이렇게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하시며 내 그림을 전부 지우고 직접 그리기 시작하셨다. 당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 이거 A 받는 거 아니야?’ 하지만 학점은 냉정하게 C0. 역시 교수님은 다 알고 계셨던 거다. 애초에 그 그림은 내 손에서 나온 게 아니란 걸.


무용 수업도 있었다. 다행히 쫄쫄이 타이즈까지는 입지 않았지만, 시험은 꽤 진지했다. ‘낙양동천 이화정’ 대사를 외치며 봉산탈춤을 포함한 전통 탈춤 동작을 익혀야 했고, 실기시험 때는 여러 동작들을 순서대로 시범 보여야 했다. 수업은 어딘가 민망하면서도, 묘하게 진심이 들어가야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체육 수업에선 수영, 앞구르기, 뒤구르기, 뜀틀 넘기 같은 기초 실기들도 했다. 처음엔 몸 쓰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하나씩 해내면서 의외의 자신감도 생겼다. 왼발과 오른발 사이에 5cm의 단차가 있었던 나는, 무용과 체육 등의 실기 수업이 조금은 버거웠다. 하지만 모두 해냈다. 남들보다 빠르진 않았지만, 그만큼 천천히, 꾸준히 나만의 속도로 넘어갔다.


이렇듯 교대 교수님들은 한 분 한 분이 인상 깊었다. 좋은 분도, 당황스러운 분도 있었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교직이라는 이름 아래 스쳐갔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지금도 내 마음 한켠에서, 묘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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