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용시험에서 살아남기
1차 시험은 11월 초, 장소는 안산 중앙중학교였다. 낯선 교문을 지나며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이 시험 한 방이면 내 미래가 바뀐다. 웃으며 나갈지, 고개 푹 숙이고 나갈지, 그건 지금부터 4시간 안에 결정된다.
가장 먼저 마주한 건 교직 논술. 20점짜리다. ‘학교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 ‘교육과정 개발 시 고려해야 할 요소’, ‘학습 부진의 원인과 대응 방안’ 등이 문제로 나왔다. 사실 논술 문제는 대개 지문 속에 정답이 있다. 키워드를 잘 잡아 구조 있게 써 내려가는 게 핵심이다. 시간은 60분. 정말 순식간에 흘러간다. 논술 시험에서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글씨체가 알아보기 좋아야 한다는 것이다. 글씨는 큼직하게, 명확하고 성실하게 써내려갔다. 하지만 교직 논술은 늘 복불복이다. 해마다 채점 기준이 뒤죽박죽이다. 어떤 해엔 대부분 19~20점을 줘서 '물채점' 소리를 듣고, 어떤 해엔 줄줄이 8~10점대의 점수가 나와 '칼채점'이라는 말이 돈다. 나는 올해가 물채점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진짜 전쟁은 그 다음부터다. 80점이나 배정된 교육과정 A, B. 시간은 각각 70분이 배정된다. 교육과정 A는 국어, 영어, 사회, 음악, 도덕, 실과, 바른생활의 7과목이 출제 범위다. 생각보다 잘 풀렸다. 특히 도덕처럼 암기량이 많고 지엽적인 파트가 의외로 평이하게 나와 안도했다. 그런데 음악 파트에서 진짜 킬러가 등장했다. 문제는 이랬다.
'슈베르트의 피아노 5중주 제4악장 '송어'의 악기 편성을 모두 쓰시오.'
나는 ‘송어’라는 곡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악기 편성을 모두 쓰라니. 그동안 음악 이론은 웬만큼 외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저 문장이 눈앞에 나오니 머리가 하얘졌다. 결국, 내가 아는 모든 관악기와 현악기를 탈탈 써냈다.
교육과정 B는 수학, 과학, 미술, 체육, 슬기로운 생활, 창의적 체험활동, 총론이 출제된다. B도 크게 어렵지 않았지만, 체육에서 축구형 게임의 ‘디딤발 위치’ 같은 디테일한 문제가 하나 나왔다. 의외성이 있는 문제들이 있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시험이 끝났을 때, 정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느낌이었다. 마치 수능이 끝난 날처럼 허탈하고 멍했다. 초등 임용의 특징 중 하나는, 시험이 끝나도 정답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험생들은 각자 기억에 의존해 답안지에 써서 낸 답을 재구성하고, 초등 임용 커뮤니티에서 채점을 해본다.
문제는 채점 기준이다. 서답형이기 때문에 문장 하나, 단어 하나를 잘못 쓰면 틀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래서 수험생들은 두가지 채점 방식을 모두 해 본다. ‘칼채’와 ‘물채’가 그것이다. 내 답안이 채점관의 각 잡힌 눈으로 깐깐하게 채점당한다면 칼채점, 너그럽게 폭넓은 채점 기준으로 봐주면 물채점이라는 뜻이다. 나도 시험이 끝난 후 칼채와 물채 둘 다 해봤다. 칼채점 기준으로는 80점 만점에 53점, 물채점 기준으론 63점이 나왔다. 논술을 만점이라 가정했을 때 총점을 대략 73~83점 사이로 예상했다.
그리고 한 달 후, 결과가 발표됐다. 논술 19점에, 교육과정 58점이었다. 교육과정 점수가 정확히 칼채와 물채의 중간 점수인 것이 신기했다. 총합 77점. 합격의 기쁨과 동시에, 묘한 뿌듯함이 밀려왔다. 이 점수면 일반 전형으로 2차를 죽쑤더라도 최종 합격권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장애인 전형으로 빠진 덕분에, 일반 전형의 한 자리를 누군가에게 넘겨준 셈이기도 하다.
‘내가 장애 전형으로 빠진 걸 다행으로 생각해라.’
이걸 선행이라 부르기엔 조금 애매하다. 1차 합격을 확인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2차 시험 준비에 돌입했다. 2차는 사흘간 진행된다. 첫째 날은 교직 면접, 둘째 날은 수업 실연, 셋째 날은 영어 수업 실연과 영어 면접. 배점은 각각 40점, 50점, 10점이다. 이 삼일의 결과가 나를 교사로 만들 것인지, 다시 수험생으로 되돌릴 것인지를 결정한다.
2차는 앉아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다. 말하고, 보여주고,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스터디를 꾸린다. 나도 에타를 통해 구한 스터디 팀에서 본격적인 훈련에 돌입했다. 각자가 서로의 면접관이 되어 구상해 온 기출문제 시연을 평가해 보는 식이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반복할수록 점점 감이 잡혀갔다. 어이없는 발문이나 엉뚱한 시연을 해 스터디원을 웃기는 것도 은근 재미있었다.
면접에선 단순히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니라, '교사로서의 관점'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학교와 가정, 사회의 관계'를 묻는 질문이 나오면, '연계교육' '온마을교육공동체'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같은 키워드는 반드시 챙겨야 한다. 또,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코로나 관련 예상 문항들도 준비했다.
드디어 2차 시험 첫날, 교직 면접. 시험장에 들어서니 긴장감이 공기를 눌렀다. 응시자 30여 명이 제비뽑기처럼 순번을 정했고, 임산부 수험생을 1번으로 양보하는 훈훈한 장면도 있었다. 내 차례가 다가왔다. 10분 안에 구상형 3문제, 즉답형 2문제를 모두 소화해야 한다.
‘미래교실’, ‘기후위기’, ‘코로나19와 등교 인원 문제’, ‘공동체성 회복’, ‘1학년 입학 초기 적응 지도’ 등의 주제가 출제되었다. 익숙한 테마지만 막상 문제를 받으니 긴장이 되었다. 머릿속엔 ‘회복적 생활교육’, ‘온마을교육’, ‘학교탐방 활동’, ‘핫시팅 기법’ 같은 키워드가 빙글빙글 돈다. 면접관들은 모두 교장, 교감 출신의 교육계 베테랑들. 나는 모범답안을 흉내 내듯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무난하게 끝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왠지 찜찜했다. 아직 이틀이 더 남았으니, 마음이 편할 리가 없었다.
둘째 날, 수업 실연. 주제는 기후위기 예방 프로젝트 수업이었다. 주어진 조건에 따라 교사의 발문을 구성하고, 면접관들 앞에서 실연을 해야 했다. 밝고 화사한 톤으로 수업을 이끌어가는 유튜브 속 예비교사들의 영상이 떠올랐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그건 말처럼 쉽지 않았다. 준비한 대사가 중간에 끊기고, 발문도 끊어지며 뚝딱댔다. 젠장, 이건 감점이겠다. 어찌저찌 수업을 끝내고 나오니 식은 땀이 등 뒤로 줄줄 흐르고 있었다. 면접장 속의 압박감은 장난 아니다. 말을 절어대는 바람에 망친 것 같았지만 제일 큰 산 하나를 넘었다.
마지막 셋째 날은 영어 수업 실연과 영어 면접. 어떤 주제가 나와도수업을 구성할 수 있는 만능틀이라는 것이 있다. 그걸 달달 외운 뒤, 그날 시험 주제에 맞게 발문만 바꾸면 된다. 이 날이 내 인생에서 영어 말하기가 가장 유창했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침착하게 영어 즉답 면접까지 마쳤다.
초등 임용 2차는 평균 점수가 매우 높다. 평균이 95점 전후로 형성되기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도 치명적일 수 있다. 게다가 고사장마다 점수 편차가 있다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장애인 전형. 과락만 피하면 합격이다. 조금은 여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발표날은 긴장되기 마련이다. 나보다 더 긴장한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조심스럽게 합격자 명단을 확인했다. “합격.”
2차 점수는 94.5점. 둘째날 수업 실연에서 5점 정도 감점되었고, 나머지 면접들에서는 소소한 소숫점 감점이 있었다. 장애인 전형 수석으로 합격했다. 이것도 딱히 자랑거리는 아니다. 일반 전형으로 계산해도 천 명의 최종 합격자 중 300등 내외는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말만큼은 자랑스럽게 할 수 있다.
“2021년 2월, 나는 경기도 지역 초등 임용시험 최종 합격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