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주영이가 태어났다.

천도복숭아를 삼키던 날

by 이지아

내가 아기를 낳던 그날,

이 세상 모든 고독이 내 몸을 휘감았다.

아무도 몰랐다.

이대로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는 걸.

아니, 알아도 상관없었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불러왔다.


"오빠, 애가 들어선 것 같아요."

그 말을 전했을 때, 오빠는 담배를 물고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 잘 됐다...."


그 말에 마음이 놓이긴커녕,
싸늘한 벽 앞에 선 기분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어떤 동요도 없었다.

반가움도, 당황스러움도.

그저 텅 빈 시선 앞에서 나는,

내가 큰 죄를 지은 것만 같았다.


오빠가 웃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아무 감정도 없는 얼굴을 마주하니,
나 혼자 앞서간 것처럼 느껴졌다.


그해 여름, 나는 입덧을 하느라 혼이 났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미음을 먹어도 게워내기를 수십 번 했다.


"새댁, 이거 한번 먹어봐. 애 가졌을 땐 잘 먹어야 되는데,,, 어쩌누..."


주인집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천도복숭아 한 조각을 겨우 삼켰을 때,

정말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빠는 웬일인지 집에 있는 날이 많아졌고,

급기야. 생활비를 못주는 날도 많았다.


그해 여름, 그 천도복숭아가 얼마나 먹고 싶었던지...


배는 점점 불러오고 산달이 다가오자 오빠는 고향에 내려가자고 했다.


오빠의 사업은 오래가지 못했다.


"집에 내려가자."

어떤 설명도 없었고,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래야 되는 거였다.



전라북도 완주. 오빠의 고향에 내려갔다.


그날 남산만 한 내 배를 본 시어머니의 시선은 얼음장 같았다.


"술집에서 노래했다 미?."
"결혼도 안 했는데 벌씨루 애가 생겨?"


말은 짧았지만, 그 말이 지나간 자리에 침묵이 길게 늘어졌다.


누군가는 국을 뜨던 손을 멈췄고,
누군가는 내 눈을 피하며 물 잔만 만지작거렸다.
어머니는 끝내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뱃속 어린아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려온 거겠지.”


작게 읊조리듯 들린 말에, 손끝이 떨렸다.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누구 하나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나는 마치 형틀 위에 앉아 심문받는 죄인 같았다.


그 순간 느낀 죄책감은 ‘내가 잘못했다’는 죄책감보다
오빠의 인생에 흠집을 낸 존재가 된 것 같은 불편한 책임감이 더 크게 밀려왔다.

시댁 식구들의 눈빛은 노골적으로 말했다.
“우리 아들이 이 지경이 된 건 너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댁에서 장남인 오빠는 서울에서 일한 돈을 시골집에 꼬박꼬박 보냈고,

어머니는 그 돈으로 줄줄이 딸려있는 7형제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던 거였다.


하지만, 결혼 후로 일이 없는 날이 많았고,

우리 집생활도 빠듯했으니,

시골에 돈을 보냈을리 만무했다.

그 원망이 함께 쏟아지는 것이리라.


처음으로 그가 불쌍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내 사정이 더 급했다.


시어머니는 내 손등에 묻은 김치 양념을 힐끗 보더니,

말없이 행주를 건넸다.


나는 얼음장 같은 시어머니의 눈빛을 애써 외면했다.

수군대는 친척들의 말들도 들리지 않는 척 귀를 닫았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 말이 없어졌다.


윤철 오빠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고,
어떤 상황에서도 웃는 표정을 흘리지 않으려 조심했다.


그렇게 하면 버려지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 믿음은 사랑이 아니라, 생존에 가까웠다.


어릴 적부터 나는 말이 많아지면 누군가 떠났고,
표정을 드러내면 등 돌림을 당했다.
그래서 나는 서둘러 웃었고,

물러섰고, 존재감을 지웠다.


그렇게 하면 혼자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내 안 어딘가에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속이 빈 유리잔처럼, 겉은 멀쩡했지만
안쪽에서 조용히 금이 퍼져가고 있었다.




서울생활을 접고, 그의 고향인

전라도 완주의 시골 마을로 내려왔을 때,
그곳엔 온통 들판뿐이었다.


서울의 아파트도, 버스도, 친구도 없었다.
논이 바람을 쓸고 지나가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고,
마당에서 툭툭 떨어지는 고추 꼭지를 줍다 보면,
나는 내가 이 집에

‘들어온’ 사람이라는 걸 더 자주 실감했다.


시골은 나를 반기지 않았다.


“아들이 저런 여자 때문에 망했지.”


“술집 댕기던 년이라 미? 어디 쓰겠어?"


직접 듣는 말보다 더 날카로운 건,
내가 방에 들어서면 멈추는 말소리와
할 말 없는 얼굴로 날 스쳐가는 시선들이었다.


나는 침묵했고, 머리를 더 낮게 숙였다.


그들이 나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앉은 윤철 오빠를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순간,
나는 내 존재를 줄이기 시작했다.


배는 점점 불러왔고, 내 몸은 점점 말라갔다.
밤마다 이불을 개고, 마당에서 솥뚜껑을 닦았다.
새벽이면 김 빠진 빨랫물을 들여다보며,

내 정신도 빠져버린 듯 멍하니 섰다.

점심엔 김장을 거들었지만, 손끝 감각은 점점 무뎌져갔다.


모두들 내게 ‘며느리’라는 이름을 주었지만,
그 속에 나는 없었다.


만삭이 되어 아기를 낳기 전날까지 농사일을 거들었다.

손끝에 흙이 들어가고, 손톱 밑이 까매질 때마다,
내 안의 어떤 감정은 묻히는 것 같았다.
말을 줄이고, 생각을 덜어내고,

시간을 빨리 보내려고 애썼다.


어느 날 거울을 보았을 때,
내 눈이 내가 아니었다.
웃고 있었지만, 아무 표정이 없었다.


그해 겨울 딸아이를 낳았다.

아침부터 몸을 틀었는데,

식구들이 저녁밥을 먹은 후에야 아기가 나왔다.


온몸의 창자가 꼬이고,

뼛조각 하나하나가 잘게 부서져

다시 맞춰지는 듯한 고통이 온몸을 휘감았다.


내 나이, 고작 23살이었다.


그때 나는 아기가 뭔지,

아기를 낳는다는 게 뭔지 아무것도 몰랐다.


아무것도 몰라 너무 무서웠고, 떨렸다.

일하러 나간 오빠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한쪽방에서 아기를 낳느라 몸을 트는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식구들은 농사일을 하고, 밥을 차려먹고 상을 치웠다.


이 죽음과도 같은 찢어질듯한 고통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것이었다.


그날, 내가 그 애를 낳던 날,


내가 기댈 곳은 이 세상천지 아무 데도 없었다.


온몸이 찢기는 듯한 느낌에

정신을 잃을 때쯤 아래에서 뭔가 쑥 하고 내려왔다.


"아들이다. 아들. "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더니 이내. 수건을 탁탁 터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여, 계집애여. 계집애... 에이 "


그날 시어머니의 실망과 함께, '주영이'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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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꽃』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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