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엄마랑 똑같았다.

삼신할머니,부탁 좀 할께요

by 이지아

'삼신할머니, 부탁 좀 할게요'


핏덩이를 품에 안았지만,

나는 엄마가 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울지도 못하고 도망쳤다.


그날 이후, 나는 다시는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 아기가 태어나면 삼칠일을 지내야 한단다.'


삼칠일 삼신상을 차려 올린 날,

나는 삼신할머니께 빌었다.


"이 아이를 잘 보살펴 주세요 "


그리고 결국,
나는 가방 하나만 들고, 아이를 남겨둔 채 그 집을 나왔다.
문을 나서기 전, 아이가 자는 방 앞에서 발이 멈췄다.

하지만 울 수 조차 없었다.
무너질 기운마저 바닥난 채,

엄마로서의 죄책감보다 내가 사라질 것만 같은 두려움이 더 컸다.
아이를 두고 나오는 일이, 나를 다 없애버리는 것보다 덜 끔찍하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그날따라 하늘이 낮았다.

종일 햇빛 한 번 안 들던 창문 아래,

나는 커튼을 걷지도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며칠 뒤, 윤철 오빠가 날 찾아왔다.


초췌한 얼굴의 그는 말없이 마당에 서 있었다.

먼지 낀 고무 슬리퍼, 덮인 모자, 퀭한 눈.

나는 그 모습이, 그저 미안했다.

그의 입술이 떨리는 걸 보며, 나도 따라 떨렸다.
겨우 내뱉은 말은 짧았다.


“왜 이래... 애는... 무슨 죄야.”


그 말이 나를 정통으로 찔렀다.맞는 말이었다.

나는 그아이에게 아무것도 해준게 없다는 사실이, 비수처럼 박혔다.

애는 죄가 없다.

처음부터 그런 엄마였던 건 아니다.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눈물이 나올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벅차오르고, 가슴이 뜨거워질 줄 알았다.

그저 무거웠다.
팔에 닿는 체온도, 내 안에 있던 시간들도.

아이의 울음은 자꾸 나를 깨웠고,
나는 자꾸 그것에 지쳐갔다.


모유를 물리는 시간은 벌처럼 쏘였다.
혼자 남겨질 때마다 '이건 내 인생이 아니야'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아이를 안고 있어도, 나는 외로웠다.


그게 가장 괴로웠다.
아이 앞에서조차 나는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아이가 자는 방 앞에서 발을 멈췄지만,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울음조차 허락되지 않는, 무너질 기운마저 없는 밤이었다.


울지 않았다.
무너질 기운조차 없었다.

엄마라는 이름은 내게 너무 무겁고,
사랑은 늘 멀기만 했다.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누군가의 품에 기대고,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걸 그때 나는 알지 못했다.

사랑과 함께, 책임이 저벅저벅 다가왔다.

그것은 마치 나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울타리 밖으로 나왔을 때,


창밖엔 바람도 없고,

종일 같은 구름만 떠 있었다.

그날, 세상도 나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사랑이 필요한 만큼,
나는 자유도 필요했다.
그게 모순인 줄은 알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밖에 몰랐다.


모성을 배워본 적은 없었다.

어릴 적, 아플 때조차 “왜 또 저러냐”며 짜증을 냈던 엄마 얼굴이 떠올랐다.
말을 걸어도 잘 듣지 않던 그 무심함.
그럼에도 나는 엄마의 손을 붙잡고 싶었고,
밤에는 이불속에서 엄마 냄새를 찾았다.


그때 배운 사랑은 나를 아프게 하는 사람에게 매달리는 것이었다.


나는 사랑을 원했지만,


사랑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사랑을 배웠고,
그래서 자꾸 다가가다가도 도망쳤다.
어디서든 숨이 막히면, 나는 그 자리를 먼저 떠났다.


문득 나는 거울을 보고 속으로 말했다. ‘너도 엄마랑 똑같아.'


윤철 오빠의 말이 오래도록 귀에 남았다.

‘애는 무슨 죄야.’
그 말이 며칠 동안 뇌를 울렸다.
그가 돌아간 후에도, 나는 문을 열지 않았고,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식은 방 안에서 아이가 웃던 모습만 떠올렸다.


하루, 이틀, 사흘.
나는 어디에도 닿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지인도 없는 반지하 여인숙,
작은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햇빛은 눈이 부시기보단 아팠다.


밤이면 이불속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다.
허공에 대고 “쉿, 괜찮아”라고 속삭인 적도 있었다.
정말 들린 것처럼 생생하게.
내 몸은 이미 그 아이의 울음에 반응하고 있었고,
그 사실이 더 두려웠다.

나는 도망쳤지만, 단 하루도 자유로웠던 적이 없었다.
몸은 가벼웠지만, 마음은 점점 가라앉았다.
한 달이 지날 무렵,

나는 텅 빈 천장을 보며 생각했다.


정말 끝난 걸까?


그 아이와 나 사이도,


윤철 오빠와 나 사이도.


‘이대로 괜찮을까?’
‘정말 끝난 걸까?’


그렇게 생각한 바로 다음 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바로 그 사람이었다.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도라지꽃 #외로움 #대물림 #명순이




『도라지꽃』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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