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살 없는 감옥
나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돌아왔다고 달라진 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또 하나의 감옥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윤철 오빠가 다시 찾아왔다.
말은 짧았지만, 그 안에 나를 붙잡는 무언가가 있었다.
“애 잘 크고 있어. 이제 집에 가자.”
그 사람도 힘들었고, 아이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나를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다시 그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라도 들어와도 된다는 듯 대문도 없는 시골집.
그 집 마당 앞에 들어섰을 때, 발끝이 떨렸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익숙한 집 냄새에 가슴이 찌릿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방에 앉아 있었다.
작은 아이는 그의 품 안에서 잠들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아이를 품에 안았다.
작고, 연했고, 뜨거웠다.
그 후로도, 내 사랑은 완전하지 않았다.
아이를 다시 품에 안았고, 그 집으로 돌아왔지만
돌아왔다는 이유만으로 용서받거나 회복된 건 없었다.
시어머니의 눈빛은 이전보다 더 차가웠고,
말없이 내 걸음걸이, 손끝, 표정까지 훑어보는 날들이 많아졌다.
잠시만 외출이라도 하면,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니?” 하고 물었고,
그 말에는 질문이 아니라 판단이 섞여 있었다.
무슨 말을 해도,
“그런 식으로 또 나가버릴 기가?” 라며 핀잔을 들었다.
나는 그 웃음을 들을 때마다 목덜미가 땅기는 것 같았고,
어떤 날은 숨이 턱 막혔다.
시아버지는 술을 더 자주 마셨다.
막걸리 뚜껑을 따는 소리만 들어도 마음이 조여들었고,
술이 깨기도 전에 식탁을 걷어차는 날도 있었다.
깨진 그릇 소리가 부엌 타일을 긁으며 멈출 때까지,
나는 아기에게 소리 들리지 않게 등을 감쌌다.
남편은 점점 말이 없어졌다.
집안의 공기가 불안정한 날이면,
그는 조용히 시계를 보며 밖으로 나갔다가
밤늦게서야 돌아왔다.
결국,
더는 그 집에 살 수 없었다.
남편은 어느 날 말없이 리어카 하나를 끌어왔다.
빨랫대, 솥뚜껑, 아기 이불까지 단출하게 실은 뒤,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가자, 이제. 우리 그냥, 나오자.”
나는 그때, 그 사람을 믿는 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시댁에서 멀지 않은,
한 길가에 붙은 작은 주택의 셋방을 얻었다.
새 집도 아니었고,
앞마당도 없었고,
시댁에서 멀어진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날 처음으로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로소,
내가 ‘내 자리’에 앉은 것 같은.
남편과 단둘이 산다는 건
생각보다 고요했고, 견딜 만했다.
사소한 다툼이 있어도,
그는 내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고,
밥맛이 없다고 하면 국을 데워주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것이 ‘괜찮은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셋방에서 두 해를 살았다.
웃음도 있었고, 작은 소망도 생겼지만
마음 한구석엔 늘 이 평온이 너무 조용해서 불안했다.
어쩌면 나는,
조용한 지옥이 더 오래갈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했는지도 모른다.
두 해가 지났고, 나는 아들을 낳았다.
그날 시어머니는 기막혀했다.
“누구 앤지, 어떻게 아냐?”
“이건 주영어미 너만 아는 거 아이가.”
나는 입을 다물었고,
남편은 무슨 말을 하는 거냐며, 문 앞의 세숫대야를 내던졌다.
흠칫 놀란 시어머니는
'네가 속고 있는 거다'라는 눈빛을 남기더니, 홀연히 나가버렸다.
며칠 뒤, 남편은
"내일, 이사 가자"
한마디를 했다.
또, 아무런 상의가 없었다.
그 사람은 항상 말없이 결정을 내렸다.
한 번도 나에게 ‘어떻게 할까?’ 물은 적이 없었다.
그 무언의 방식이 처음엔 의지가 되었지만,
점점 나를 지우는 일이란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서울에서 완주로 올 때도,
시댁에서 리어카로 짐을 실어 나올 때도,
그리고 지금도,
남편은 나에게 묻질 않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심장이 터질 듯 요동치고, 손발이 떨려온다.
'무섭다... '
남편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채지 못했으리라,
알았다면 그 사람은 그리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트럭을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그날, 나는 트럭을 타기 전 문턱에서 잠시 멈췄다.
그가 날 돌아봤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말하지 못했다.
트럭이 움직였다.
나는 남편 무릎 위에 주영이를 앉혔다.
둘째는 내 품 안에 있었다.
네 식구가 부산으로 향했다.
그 집과도,
그 마당과도,
그 골목과도.
이제는 영영 작별이었다.
부산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나는 창밖을 보며 속삭였다.
‘이제 괜찮을까?’
'칠성님... 방향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요. 근데, 이번엔 좀...
덜 무서운 쪽이면 좋겠어요. 애 데리고는, 다시 못 도망가니까요...'
그건 희망이 아니라,
막막함에 대한 기도에 가까웠다.
때마다 나는 삼신할머니를 찾고, 칠성신을 찾았다.
나는 여전히
모든 변화가 두려웠고,
새로 시작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살아보지 못한 삶을 견디는 법을 몰랐다.
그저 남편을 바라볼 뿐이었다.
신들은 대답이 없었지만,
그는 내 말을 다 들어주었고,
내가 원망하면 미안하다고 말해주었고,
내가 도망쳐도, 결국 따라와 주었다.
그런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하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그에게 점점 더 매달렸다.
그의 존재가 내가 가진 유일한 안전지대 같았고,
그를 붙잡고 있는 것만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그게
사랑인지,
집착인지,
그땐 알 수 없었다.
나는 그를 믿었다.
그 사람만큼은
나를 떠나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그 믿음이 곧 내 자유였지만,
그 자유라는 이름의 감옥 열쇠는 내가 쥔 적이 없었다.
몰랐다.
그 감옥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땐 정말 몰랐다.
#도라지꽃 #명순이 #감옥 #외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