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를 잃어버린 줄도 몰랐다

익숙한 삶 속, 내가 사라지는 순간들

by 이지아

살림은 단순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밥을 짓고, 세탁기를 돌리고,

반찬을 채워 넣고, 창문을 닫고.
익숙한 반복이 이어졌고, 큰 다툼도 없었다.


지루하다기보다는,

매일이 같은 시간표를 따르는 것에 이상한 안도감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국을 데우다 말고 한순간 멈췄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노래가 이상하게 익숙했다.
불 꺼진 클럽 무대, 조명이 내 얼굴을 비추던 순간이
불쑥. 눈앞에 떠올랐다.


목구멍이 타들어 갔다.
무대를 내려오면 그 조명이 날 잊어버리던 것도,
사람들이 내 이름은 몰라도 박수는 아낌없이 주던 것도,
그 모든 것이 지나간 삶이 아니라 지금도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아주 작은 소리로 다가왔다.
하지만 하루하루 쌓이자,

속삭임이 아니라 북소리처럼 가슴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허공을 바라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창가에 서서 거리를 바라보며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나는 점점 작은 말다툼에도 짜증이 늘었다.
오빠가 말없이 늦게 들어오는 날엔 괜히 밥을 치웠다 다시 덮었다.


“늦으면 전화 한 통도 못해요?"


목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졌고, 나도 그걸 알았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요즘 왜 이렇게 늦어요. 집에 있는 사람 생각은 안 해요?"


저녁밥상 앞에 앉아 나는 이내 쏘아붙였다.


남편은 그런 내 말을 듣더니 수저를 툭 내려놓더니,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놀란 듯, 혹은 낯설다는 듯.
그 눈빛은 처음 보는 듯했다.


'말 잘 듣던 명순이가, 왜 이러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건 당황도, 분노도 아니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마주했을 때 사람 얼굴에 걸리는 표정.
나는 그 눈빛이 무섭지는 않았지만,
그 순간부터, 오빠와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겼다는 걸 느꼈다.


외로움이 가라앉고 나면, 나는 다시 나를 찾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원하던 것을 자꾸 말하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그 말들은 '바람'이 아니라 '요구'가 되었고,

돌아오는 건 대답이 아닌, 조용한 벽이었다.


나는 그를 잃는 게 무서운 줄 알았다.

하지만 정작 더 두려운 건, 나를 잃어가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그 사람 안에서 잠시 숨을 쉬었지만, 그곳은 나를 위한 집이 아니었다.



#외로움 #여자의 인생 #사랑과자기상실 #도라지꽃 #시즌2




『도라지꽃』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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