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모든 다정함은 내 침묵 위에 세워졌다.
그 시절, 나는 늘 어디엔가 몸을 기댔다.
버스 정류장 벤치, 클럽 드레싱룸의 낡은 소파, 그 사람의 눈길까지.
혼자 있는 건...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늘 무언가를 붙잡고 있었다.
서울의 밤거리처럼 환하지만 텅 빈 내 속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없었는데,
윤철 오빠는 달랐다.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조명이 꺼진 무대 옆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신발 끈을 고쳐 매고 있었다.
그가 묻지도 않고 종이컵에 물을 따라 건넸다.
“목말랐지?”
그 말투가 어딘가 낯익었다.
오래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아버지의 저녁처럼,
힘들어?라는 말을 돌려 말하는 어른의 방식이었다.
그는 손끝부터 조심스러웠다.
머리칼이 흘러내릴까 살며시 어깨너머로 다가오는 손,
말을 고를 때의 침묵,
내 노래를 듣고 난 뒤 고개를 조용히 끄덕이던 그 표정까지.
그건 상진형에게 느꼈던 다정함과는 조금 다른 '배려'였다.
그가 함께 살자고 했을 땐, 솔직히 무서웠다.
하지만 더 무서웠던 건, 다음에도 그가 클럽에 오지 않을까 봐였다.
나는 어느새 그 사람에게 의지하고 있었고,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건, 무대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의 텅 빈 방이었다.
불 꺼진 거울 앞에서 혼자 귀걸이를 빼고 하이힐을 벗자, 울컥 치밀어 오르던 외로움.
오빠는 그 기억들을 잠재워줬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한 게 아니라, 외로움을 지독히도 두려워했던 거다.
상계동 달동네에서 그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동거를 시작하면서 나는 그가 말한 대로 무대도 그만뒀다
“이젠 노래 안 해도 돼. 그런 데, 다시는 안 나가도 돼.”라는 그의 말에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기분이 이상했다. 누구에게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안 해도 돼'라는 말. 그건 마치, ‘너는 그래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다가, 그 사람 얼굴을 봤다.
그 표정엔 의심도, 판단도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보호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라지 까라'
'쌍둥이 기저귀 갈아라'
'밥상 차려라'
'공장 다녀서 봉급 가져와라'
지금까지 나는 누군가를 위해 뭐든 다 해야 되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신호 같았다.
오빠가 살던 상계동 집에 들어갔고, 냉장고에 채워놓은 반찬통을 하나씩 꺼내 밥을 지었다.
그게 그렇게나 행복했다
오빠는 말수가 적었다.
밤늦게 다녀온다는 말 없이 늦는 날도 있었고,
오전 내내 자고 있을 때도 많았다.
그런 날이면 나는 오빠가 깨기 전에 조용히 쌀을 씻고, 국을 끓였다.
라디오를 켰다 끄는 것도, 전화벨이 울릴까 봐 수화기를 아예 내려놓는 것도 모두 나의 몫이었다.
집엔 벽걸이 시계 하나뿐이었고,
시간은 그 바늘 돌아가는 소리에 맞춰 천천히 흘렀다.
“오늘은 그냥 있어. 어딜 그렇게 다녀.”
오빠는 종종 그런 말을 했다.
그 말엔 위협도, 강요도 없었다.
다만 내가 없으면 그가 조금 불편해지는 것 같은 표정.
그건 화도 아니고 서운함도 아니었다.
그저 흐트러진 것을 바로잡고 싶어 하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고, 오늘은 집에 가만히 있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별다른 이유 없이
이 사람의 기분에 맞춰주는 게
이 집안의 공기처럼 자연스러웠다.
내가 원해서 맞춘 거였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누가 시킨 것도, 억지로 꿇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조용한 흐름 안에 내가 안정적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어릴 땐, 집집마다 저녁 종소리가 들릴 무렵이 가장 불안했다.
다른 집에는 식구들이 저녁밥상 앞에 둘러앉았을 시간인데,
우리 집은 늘 도라지 냄새로 가득했고,
엄마는 핏기 없는 얼굴로 담벼락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기억들 속에서 자란 나는
누군가가 나를 살피는 질서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빠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알아서 집을 지키고 있었고,
친구에게 약속을 미루자고 했고,
외출이 잦아지면, 뭔가 잘못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가끔, 그 질서가 조용히 나를 조이는 순간들이 생겼다.
한 번은 시장에서 옛 동료를 만나
오랜만에 웃고 떠들며 저녁까지 얻어먹고 돌아온 날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오빠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 요즘 왜 이렇게 바빠? 안 그러던 애가 왜 그래? "
그 말은 작게 울렸지만, 내 안 어딘가를 깊게 내려찍었다.
'안 그러던 애'
내가 ‘애’였다니.
그 말은 조용히 웃고, 맞추고, 조심스럽게 살아온 날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드는 듯했다.
어른처럼 보였지만, 결국 나는 여전히 허락받는 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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