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원래 그런 여자야

소금과 꽹과리로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by 이지아

남편이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안방 서랍을 뒤엎고, 내 심장까지 헤집었다.


"그때 애를 지웠어야 해."


그 한마디가, 내 심장을 찢었다.


그렇게 말한 그 사람은,

그 애의 아버지였다.


그렇게 나는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봉투처럼 구겨져버렸다.


그에게 내쳐질수록 나는 매일 화투패를 손에 쥐었다.


이기면 잃은 걸 잊을 수 있었고,
지면 더 큰 걸 되찾아야 한다는 착각이 들었다.


점점 중독되고 있었다.


남편의 바람이 반복될수록 형편도 자꾸만 어려워졌갔다.


가스비가 밀리고,
할부값이 자꾸 연체됐다.
아이들 학원도 하나둘 끊었다.


어느 날은 빚쟁이가 집으로 찾아와 남편을 찾았다.

밀린 임금을 달라는 것이었다.


빚쟁이가 찾아와서일까?

내가 빚쟁이처럼 느껴져서일까?

남편은 그럴수록 더 밖으로 돌았고, 가정은 돌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연락이 안 되는 건 일상이 되었고,
두툼하게 현금을 넣어 닫히지 않던 지갑은, 어느새 말라붙어버렸다.


나는 매달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
갚지 못할 일수 채무까지 끌어 썼고,


매달, 매달,
서랍 속엔 독촉장이 쌓여갔다.


"언니, 다음 주까지는 꼭 줄게요. 이번 달 장사가 정말 안돼서 죽겠어."


벌써 오늘만해도 다섯 번째 듣는말이었다.


들을 때마다
내 심장도, 지갑도 동시에 쪼그라들었다.


" 그래, 약속 꼭 지켜."


나는 웃으며 말했지만,
돌아서면 눈물이 났다.


이미 곗돈 사고를 해결하느라 대출을 받아쓴 탓에

더 이상 은행 대출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대로라면 내 이름으로 된 가게는커녕

당장 다음 달 생활비도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다.


소식 없던 남편이,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구두도 벗지 않은 채 안방까지 들이닥친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짐승처럼 숨을 헐떡이며
문갑 서랍을 마구 뒤엎기 시작했다.


" 통장 어딨어?
지금까지 번 돈, 다 어디다 쳐박았어! "


목소리는 날카롭고, 눈빛은 이미 날 향하지도 않았다.

나는 벽에 붙은 그림자처럼,
그의 분노 앞에서 그냥 붙어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벌어온 돈 다 어데 갔노? 노름한다고 다 썼지?"


" 집구석 이 모양인데, 내가 들어오고 싶나...."


차라리 외면했으면 좋았을 남편의 말들은 가슴속에 쌓여만 갔고, 나는 끝내 못 들 은척 했다.


" 넌, 애 낳고 도망쳤을 때부터 틀려먹었어. 넌 그런 년이야."

그 말에, 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 너 술 처먹는 것도 내 다 안다. 달리 술집 출신이겠나? "

" 그때 애를 지웠어야해 "


그가 내게 한 말들은, 칼처럼 내 안에 박혔다.

순간, 나는 정말 그런 여자인 것 같았다.


사랑받고 싶어서였다고,

살아보려는 몸부림이었다고,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는 밤이었다.



남편이 집을 발칵 뒤집고 나간뒤,

나는 이미 바닥끝까지 떨어졌지만,

그를 놓아줄 수는 없었다.


나는 엄마에게 배운 대로, 신에게 매달렸다.


부산에서 용하다가는 무당집에 들러

200만 원짜리 굿을 예약했다.


며칠 뒤 형형색색의 한복을 차려입은 무당들이 집으로 몰려왔다.


이 집 대주의 바람기를 잠재워준다며,

온 집안에 소금과 팥을 뿌리고,

하루 온종일 북과 꽹과리를 쳐대고 춤을 췄다.


살풀이하는 무당 옆에서 나는 두손을 모으고

정말 정성으로 빌었다.


집 안 가득 퍼진 꽹과리 소리가

집안에 서린 온갖 귀신을 쫓아내줘서

남편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치성이 부족한 탓인지

신은 내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에게 고통만 주는 시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수십번읜 낮과 밤이 지나고, 어느새 계절이 바뀌고 있었다.


" 질린다. 진짜....! "


그 한마디는,

내 마지막 남은 기대마저

조용히, 그리고 완전히 부숴버렸다.


결국 그 말은 엄마가 나에게 쏟아냈던 말들보다

더 나를 미쳐버리게 만들었고,


남편은 끝끝내 나를 더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사랑받고 싶어서 시작한 결혼이
결국 나를 망가뜨리고 있었다.


# 마지막 잔은, 혼자였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잔을 찾지 않았다.
컵에 그대로 부었다.


아이들은 자고있고,
남편은 집을 나간 지 오래였다.
엄마와의 통화도 이젠 없었다.


그런데 왜,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시끄러웠을까.


텅 빈 거실,
김 식은 밥상.

그 위에,
나는 천천히 유리잔에 소주를 부었다.

한 잔, 또 한 잔.

아무도 보지 않는 밤이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며
또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그날 밤,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그날 내 마음엔, 아이들 걱정이 하나도 안들어왔다.


#도라지꽃 #명순이 #치성 #어리석은 #바람 #외도 #외로움



도라지꽃』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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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성이 부족한 탓인지

신은 내 기도에 응답해주지 않았다.


남편의 바람을 굿으로 잠재울수 있다고 생각한

명순의 어리석음은 그녀를 어디까지 끌고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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