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불행은 엄마에게서 시작됐다.

엄마에게 나는 원흉이었고, 엄마도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by 이지아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왔다.
하루 이틀이면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밤,
땀에 젖은 작업복을 입은 채,
나는 허름한 술집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돌아가지 못했다.


건설현장에서 하루를 시작했고,
손에 쥔 일당은 고작 만 원 몇 장이었다.


지친 몸으로 들어간 허름한 술집에서
속을 달래듯 소주를 마셨다.

그 한 잔이 다음 날로 이어졌다.


‘오늘은 정말 돈을 모아 돌아가야지’


다짐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다음 날도,

술이 없으면 손이 떨렸다.


밤마다 “내일은 간다”라고 말했지만
아침이면 두려움이 이불처럼 덮였다.


아이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얼마나 울었을까.'
'무서웠을까.'
'배는 안 고플까.'


하지만 생각이 멈추면
나는 또 술을 마셨다.


그렇게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날이 너무 더웠다.

슈퍼 앞 자판기에서 500원짜리 캔커피를 뽑았다.


커피는 미지근했고, 뚜껑은 눌리지 않았다.

한 모금 마시고, 쓰레기통을 찾지 못해 들고 다녔다.


일주일정도 지났을까?

돌아가기엔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점점 더 집으로 돌아가는 게 무서워졌다.

애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 얼마나 울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일감은 없고
지갑은 텅 비고

아무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이대로 사라질 수도 있겠다는 끔찍한 상상이 스쳤다.


더 이상 버틸 힘조차 없어진 순간,

그제야 나는 ‘돌아가야 한다’는 한 줄기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는데,

집이 텅 비어 있었다.


애들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 아직,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나? '라고 생각하고,

집안을 돌아보니 옷도, 신발도, 소리도 없었다.


나는 고요한 방 안에서 무너졌다.
정적이 칼처럼 찔러왔다.


나는, 돌아올 수 없는 곳에 있었다.


전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누르는 손이 떨렸다.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한 템포 쉬고, 겨우 한마디를 했다


" 여보세요 "


내 목소리를 듣자 수화기 너머 그가 말했다.


" 애들, 내가 데리고 갔어."


" 뭐라고? "


" 너 정말 제정신이냐? 어떻게 그런 산속에 애들만 놔두고..

애들이 오밤중에 공중전화로 전화했더라. 배고프고 무섭다고. 진짜 너란 년은..."


그 말에 입술을 꼭 깨물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쿵 뛰었다.

분노인지, 억울함인지, 아니면 무너지는 자존심 때문인지 숨이 막혔다.


" 누가, 누굴 미쳤다고 해. 새엄마한테 내 애들을 왜 데려가! "


목소리가 갈라졌다. 눈물이 아니라 분노였다.


" 내가 갈 거였어! 금방 갈 거였다고! 왜 다 네 맘대로야! "


그가 한숨을 쉬었다.


" 이젠 애들도 너 싫단다. 진짜 너 같은 년은 엄마 자격이 없어."


그 순간, 나는 수화기를 힘껏 벽에 내던졌다.
이건 도둑질이었다.
내가 낳은 아이들인데, 내가 미안해할 새도 없이, 그가 훔쳐갔다.


무능력한 그 인간이, 나를 대신할 보호자도 아닌 주제에.


전화기를 던진 후,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울렸다. '훔쳐갔다. 내 것을 훔쳐갔어.'

분노가 온몸을 집어삼키자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


엄마가 늘 그랬다.


"오빠가 저렇게 된 건 네 탓이야.
네가 괜히 울고불고하니까 오빠가 더 심해지잖아."


나한텐 늘 죄를 씌웠다.
오빠가 문을 부수고 날 때려도,
내가 먼저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고 했다.


그 여자는 평생 그랬다.
자기가 책임져야 할걸, 나한테 떠넘기고,
정작 본인은 불쌍한 얼굴로 남았다.


그러니까, 지금 이 사단도
내 탓이 아니라—

결국, 다 엄마 때문이다.


엄마가 날 그렇게 키우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나는 엄마한테 배운 대로 살아온 거다.


근데 모두 나한테만 뭐라 하는데?

진짜 미친 건,
나를 이렇게 만든 엄마 아니야?


...


어쩌면 나도 선택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힘조차 없었다.


그게 더 비참했다

사람이 무섭고, 선택은 두렵고, 책임은 더 무거운...


남편의 마지막 말이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애들도 이제 너 싫단다. 너는 진짜 엄마 자격이 없다.'

그 말이, 뼈아프게 박혔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은 낯설지 않았다.


텅 빈 집 안의 고요가, 그 말을 더욱 선명하게 증폭시켰다.


#가장 무서운 자각


나는 엄마로 태어나,
엄마로부터 도망쳤다.


엄마는 그날도 나를 부엌 구석에 앉혀두고,

오빠의 신경질을 받아주라며 참으라고 했다.

나는 울지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 참아. 다 네가 문제야. "


그러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곤 했다.

방 안에선 텔레비전 소리만 들렸다.

늘 항상 나만 울었다.


결국,
아이들마저 나에게서 도망쳤다.

남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너 같은 년은 엄마 자격 없어."


그 말이, 맞았다.


나는 항상 누군가 탓을 했다.

엄마, 남편, 세상.

그런데 결국, 아무도 내 인생을 살아주지 않았고,

이젠 나도 내가 무서웠다.

나는 이제야 알았다.

사랑도, 책임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나 역시 그것들을 품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그날 나는 술도, 눈물도 없이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도라지꽃』 시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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