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롤그

마지막 날

by Benjamin

오늘은 일요일이었지만, 나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공장으로 향했다.


전날 내린 비 때문인지, 아니면 장마가 시작되려는 신호였는지, 6월의 끝자락 새벽 공기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천천히 달렸다.


차 안에는 원룸을 통째로 비운 짐이 가득 실려 있었다. 트렁크는 물론 조수석까지 짐으로 채워졌고, 사이드미러가 겨우 보일 만큼만 공간을 남겨두었다. 더 실을 곳도, 덜어낼 마음도 없었다.


이 지방의 소도시로 내려온 지도 어느덧 5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엔 다니던 회사 일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출장 오던 곳이었다. 그저 잠시 머무는 지역일 거라 생각했지, 이곳에서 원룸을 얻고 내 회사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서울과는 모든 것이 달랐다.
빠르고 바쁜 서울과 달리 이곳은 느리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리듬이 있었다. 학창 시절부터 사회생활까지 거의 전부를 서울에서 보낸 탓인지, 그 다름이 나는 좋았다.

지하철 대신 기차가 다니는 도시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폭은 좁지만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이 있는 것도 좋았다. 어디를 가도 주차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생각보다 큰 위안이었다.


면적은 서울보다 크다고 했지만, 그 안의 지명을 굳이 외울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내가 살던 원룸에서 택시 기본요금만 내면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곳을 갈 수 있었다. 시내에 단 하나뿐인 영화관도, 대형마트도, 스타벅스도, 버거킹도 차로 10분에서 15분이면 충분했다.


물론 친구들이 그리웠고, 가족이 그리워 주말마다 서울을 오갔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주말도 이곳에서 보내게 됐다. 적응했고, 만족하고 있었다.

친구도 생겼고, 함께 일하는 동료들도 가까워졌다. 회사 안에서는 대표와 직원의 관계였지만, 밖에서는 형이 되어주고 가족처럼 챙겨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낯설었던 도시는 그렇게 생활이 되었고, 사람의 얼굴을 갖기 시작했다.


안개가 자욱한 길을 달리며, 나는 그 5년을 천천히 되짚고 있었다.


그리고 공장에 도착했다.


일요일 아침의 공단은 차 한 대 없이 고요했다. 안개에 둘러싸인 공장은, 마치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오늘이 이곳에 사원증을 찍고 들어오는 마지막 날이었다.

지난 금요일, 총무에게 사원증은 일요일에 책상 위에 두고 가겠다고 말했다. 혹시 보안업체에서 공장 출입 알람이 울리더라도 놀라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아무도 없는 일요일에 굳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마지막으로, 이곳 곳곳에 남아 있는 내 손때에 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조금 지우고 가고 싶었다.

공장이 완공된 이후, 내부는 거의 전부 내 손을 거쳐 채워졌다. 생산 설비부터 동료들과 함께 일하던 공간, 책상, 그리고 청소도구 하나까지도 예외는 없었다.


차 안에서 사원증을 찾아 출입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섰다.
로비는 직원들의 휴식 공간이자 외부 방문객을 맞이하는 곳이었다. 원두커피 머신 두 대가 있었고, 벤자민, 고무나무, 행운목, 파키라 같은 화분들이 작은 정원처럼 놓여 있었다.

나는 화분의 흙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여름이 다가와서인지 흙이 많이 말라 있었다. 조리개에 물을 가득 담아 하나하나 물을 주었다. 모든 화분에게 마지막 물이었다.


이후 2층 품질관리실부터 3층 사무 공간까지 천천히 돌아보았다.

건강기능식품 전문 생산 공장이었기에, 욕심 같아서는 생산 설비도 둘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위생 관리에 대한 책임만큼은 지키고 싶어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준비해 온 편지를 꺼냈다.


동료 한 명 한 명에게 쓴 손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기 시작했다. 책상이 없는 생산직 직원들에게는 탈의실 개인 사물함 안에 조심스럽게 넣어두었다.

공장 설립 당시 인사 책임자로서 모든 면접을 직접 봤고, 채용이 확정되면 내 기안을 거쳐 대표님께 결제를 올렸던 사람들이었다.

초기 설비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밤늦게까지 함께 시생산을 했고, 품질 관리를 위한 문서를 만들고, 식약처 인증을 준비했던 동료들이었다.


나는 늘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이 회사 크게 만들고 끝까지 같이 가자.”

이곳에서 나는 하나의 꿈을 키웠다.
이 회사가 내 사회생활의 마지막이 되기를, 정년을 맞이해 떠나는 날에는 지금의 동료들을 모두 안아주며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말할 수 있기를.

하지만 그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끝까지 함께하자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그 미안한 마음을 담아, 101명의 동료에게 편지를 썼다.

공장 안에 남아 있던 내 손때를 닦아내고, 미처 하지 못한 인사를 편지로 대신한 채, 나는 공장을 나섰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