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변화의 시작

by Benjamin

나는 어느 순간, 돌아갈 수 없는 자리에 서 있었다.


2019년 연말부터 대표님과 함께하는 출장이 부쩍 잦아졌다. 늘 가던 곳, 늘 하던 일정이었다. 그래서 그날도 특별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낮에는 대리점 업무를 보고, 밤이 되었다.


보통이라면 서울로 올라갔을 시간이었지만, 그날은 그대로 Y시에 머물렀다. 대표님의 저녁 약속이 하나 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Y시에서 사업을 하시는 K 대표님과의 자리였다.


대표님들 사이의 대화에 내가 직접 끼어들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날 식사 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만으로도, 앞으로 회사의 방향이 크게 바뀌게 되리라는 건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K 대표님은 글로벌 유통업체 Z사와의 업무 협약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Z사는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글로벌 네트워크 마케팅 기업이었다.


그날 이후, Y시로의 출장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아마 두 대표님은 이미 두 갈래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K 대표님과 Z사와의 협약이 성사될 경우. 다른 하나는, 그 협약이 성사되지 않더라도 두 회사가 함께할 수 있는 또 다른 사업. 가장 이상적인 건 두 계획이 모두 성공하는 것이었고, 둘 중 하나만 성공해도 충분히 해볼 만한 그림이었다.우리는 그중 두 번째 계획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시작한 것은 내가 다니던 회사가 중심이 되어 Y시에 국내 네트워크 마케팅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회사 구성원 대부분이 이미 해당 업계 경험이 있었기에, 관련 인허가만 받으면 나머지는 비교적 수월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020년 초, 코로나19가 터졌다. 세상은 멈췄고, 계획은 느려졌다. 예전 같았으면 6개월이면 끝났을 일이, 1년이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설립 이후 판매할 제품을 기획했고, 생산을 준비했고, 판매 구조에 맞는 인력도 모집했다. 그 결과, 나는 점점 더 자주 Y시에 머물게 되었고, 체류 기간도 점점 길어졌다.


그 사이 K 대표님은 Z사와의 협약을 계속 밀어붙였고, 마침내 2021년 1월, 양사는 공식적으로 MOU를 체결했다. 이 업무 협약을 기점으로 K 대표님의 사업 방향은 완전히 바뀌었다.


Z사의 건강기능식품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제조업체로의 전환. 그리고 Y시에 새로운 제조 공장을 짓는 계획이 본격화되었다.


모두 순조로워 보였으나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우리는 새로 설립한 회사의 운영을 맡으면서도, 동시에 K 대표님의 신규 사업 준비에도 투입되어야 했다.


Z사와의 협약 조건 중 하나는 Z사 제품 개발을 지원할 연구센터의 운영이었다. 마침 Y시에는 지자체가 지어놓고 운영하지 못하던 연구센터가 있었고, 그 위수탁 사업자 선정을 위한 입찰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입찰에 뛰어들었다.


2021년 3월, 나는 Y시에 원룸 하나와 비어 있는 사무실을 임대했다. 직원들과 함께 K 대표님 회사의 입찰 준비를 시작했고, 5월, 우리는 최종 위수탁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곳이 잠시 머물르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2022년 6월 1일부터 연구센터 운영을 위해 K 대표님 회사 인력이 투입되어야 했고, 인력이 없던 K 대표님과 운영비가 바닥나 있던 O 대표님은 직원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트레이드하는 것을 선택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뜻하지 않는 이직을 하게 되었다. 나를 포함한 O대표님의 직원은 하루아침에 K 대표님의 회사로 이직했고, 난 위탁운영을 하게 된 연구센터의 경영지원 부서장이 되었다.

첫 출근한 연구센터에는 기존 Y시 계약직 직원 세 명이 있었다. 계약 조건에는 그들 모두를 인계받는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그렇게 총 12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새로운 회사가 되어있었다.

센터의 설립 목적은 분명했다. 지역 특용작물을 활용한 식품 소재 개발. 그리고 지역민 창업 지원. 즉 공공의 목적으로 센터 운영이 첫 번째 목적이었다.

나는 빠르게 센터 안정화를 목표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업자 등록부터 다시 해야 했고, 직원들의 고용 관계도 새로 정리해야 했으며,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는 연구센터의 식약처 인증 획득이었다. 인증을 획득해야 센터의 운영 목적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다행히 새로 채용한 팀장이 식약처 인증을 주도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 센터를 활용한 신규 사업 계획에 집중했다.
지역 농가와의 협업.
창업 보육 프로그램 수립.
센터 운영을 위한 Y시 행정 업무 이관.

모든 것이 순서대로 굴러가는 듯 보였다.

하지만 행정 업무 이관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 센터의 사업 계획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설립 목적과는 다른 방향으로 위탁 운영 방식이 변해가고 있었다. 공공의 공간이 아닌, 점점 사적인 공간으로 변해갔다. 그때가 2021년 9월쯤이었다.


나는 무엇인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하지만 이미 꽤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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