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작
회사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O대표가 부사장으로 들어오면서 다시금 조직이 없는 회사가 되었다. D대표는 O부사장과 함께 새로운 공장장을 영입해 왔다. 그러면서 그동안 K회장에게 밀려났던 것에 대한 반발이라도 하듯 G상무 역시 견디지 못하게 했다.
전문 경영인이 운영을 할 때 G상무는 그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D대표에게는 비용 지출에 대한 부분만 보고를 하고 회사에 운영비가 없다며 불만만 제기했었다.
전문 경영인이 떠나고 D대표와 O부사장 눈에 가시거리였던 G상무 역시 스스로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또 서울에서 K회장 측근에서 근무를 하던 영업 상무도 영업 부장도 모두 그 시점에 떠나버렸다.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완력 싸움을 하고 있는 듯했다. 관리 직원들은 어느 정도 회사의 분위기에서 그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K회장은 바로 반격에 나섰다. 새로운 영업 상무와 새로운 재무 이사를 영입해서 공장으로 파견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공장에 오래 머무르게 되면 O부사장의 완력에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필요할 때만 공장에 오는 식이었다.
공장에서는 O부사장이 오고나서부터 소소하게 부서 인사이동을 실시하였다. 고객사의 글로벌 감사(Audit)에서 지적이 많이 나왔던 품질관리 부서를 보강하기 시작하였고, 신제품 개발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개발 부서에 인력을 보강하기 시작했다. 생산 현장에 대해서는 새로운 공장장이 도맡아 변화를 주고 있었다.
그 사이 고객사에서는 품질관리 차장을 상주 형식으로 공장에 파견을 보냈다. 기간은 6개월, 그 기간 내에 모든 생산, 품질 활동을 완성시키라는 미션이 있었다고 했다. 6개월 뒤에 다시 한번 감사(Audit)를 실시하겠다는 통보도 함께 왔다.
O부사장이 공장으로 출근을 하고 공장장과 함께 공장의 인사이동을 실시했지만, 결과는 여전했다. 고객사와 우리 공장은 언제나 불협화음이었다. 불량률은 개선되지 않았고, 시제품 생산 때는 거의 80%에 가까운 실패를 지속하고 있었다. 품질관리 기준 역시 잡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제조업체에서 품질관리 기준은 까다롭지만, 식품회사의 품질관리 기준은 더욱 철저해야 한다. 작은 실수 하나가 고객에게 치명적인 불이익을 주기 때문이다.
고객사의 품질관리 차장은 거의 하루 종일 품질부서 직원들과 함께 기준 초안부터 다시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하루를 마감하고 일주일을 마감하는 회의에서 진행사항을 보고 받은 O부사장은 고객사 품질 차장과 논쟁을 하는 상황을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는 고객사의 품질기준이 잘못되었다는 논리를 펼쳤다. 오히려 그 품질 차장을 가르치려 들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O부사장과 공장장이 출장을 가게 되었고, 일주일의 마감 회의를 내가 주도하여 전 직원과 함께 금요일 업무를 마감할 때였다. 생산 부서장과 품질 부서장의 주간 마감 보고를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고객은 누구일까요?”
전 직원 거의 동시에 “A사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말에는 힘이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A사가 우리 회사의 고객사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약간 다릅니다. 우리 회사의 고객은 바로 그 A사의 고객입니다”
“최종적으로 제품을 섭취하고 사용하는 고객은 우리도, 그렇다고 A사도 아닌 바로 그 제품을 구매하여 섭취하고 사용하는 A사에 가입된 고객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그럼 A사의 품질기준은 어디에 맞춰 있을까요? 바로 그 고객들에게 기준이 맞춰 있을 겁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고객을 위해 우리가 고생해서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기준은 바로 A사와 같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방금 진행한 부서장들의 주간 보고서 내용에도 쓰여있듯이 모두 하나 같이 이야기합니다.”
“고객사인 A사의 품질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 라구요”
“과연 우리가 맞는 것일까요? 오늘 부사장님도 공장장님도 부재중이라서 부득이하게 제가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지만, 지위고하를 떠나서 주말 숙제를 하나 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제 이야기가 맞는지 , 틀렸는지. 만약 맞는 것 같다면 과연 우리는 모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주말 동안 생각해 봐주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 제출할 필요도 없고, 제가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월요일이 되면 우리는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지난주와 같은 생활을 반복하겠지만 아마도 여러분의 생각에 변화가 있다면, 우리는 분명 다른 다음 주를 맞이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날의 주간보고 회의는 그렇게 끝마치게 되었고, 나 역시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 서울의 집으로 올라왔다.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출근했더니 바로 D대표와 O부사장의 호출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표이사실로 들어서니 방 안의 공기가 냉랭했다.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금요일 저녁 마감회의에서 나의 발언 때문이라는 것을.
D대표는 TF 구성 인사발표를 하라고 나에게 지시를 했다. 생산 부서장, 품질 부서장 그리고 각 부서의 팀장들로 구성된 TF팀이었다. 그리고 그 팀의 팀장은 나였다. 이게 무슨 일인지 쳐다보는 나에게 D대표는 냉랭하게 나가보라 말했다.
나의 자리로 돌아와 인사과 팀원에게 대표님의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전체 직원에게 메일을 보내고, 메일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생산 직원들도 함께 알 수 있도록 전사 게시판에 올리라고 했다.
잠시뒤, 대표이사실에서 나온 O부사장이 자신의 사무실로 나를 불렀다. 그리고 하는 이야기의 요점은 이랬다. 내가 금요일 주간 마감 회의시간에 했던 발언이 누구를 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고객사 품질 차장에게 들어갔고, 그걸 들었던 차장은 바로 고객 본사의 부사장에게 보고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일요일에 고객사 임원들의 미팅 요청으로 D대표와 K회장은 서울 고객 본사를 다녀와야 했고, 고객사의 요청으로 TF 구성이 시작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에게 이 말을 덧붙였다.
“M부장 제발 나대지 말아라”
난 절대 나댄 적이 없었다. 내가 했던 행동이 나댄 행동이라면 , 난 솔직히 그동안 그렇게 못했던 그 임원들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TF가 구성이 되고 바로 고객사 품질 차장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활동의 시작은 지난 글로벌 감사(Audit)에서 지적받은 내용을 시정조치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회사의 품질관리 기준은 점점 세밀하게 세워지기 시작했으며, 생산 직원들과 설비의 안정화도 어느 정도 성과가 나기 시작하면서 불량률은 줄어들게 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활동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TF가 구성되고 3개월이 지나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오기 시작할 때 즈음해서 다시 한번 우리는 위기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