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열
생산 실패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처음에는 몇 번의 시행착오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설비였고, 처음 다루는 사람들이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넘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고객사의 불만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갔다.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문의가, 이제는 왜 이렇게까지 지연되는지 따지는 수준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 불만은 자연스럽게 생산팀에서 영업팀으로 향했고, 그리고 결국, 나에게까지 내려왔다.
경영지원부서장.
현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사람도 아니었고, 설비를 다루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초기 공장의 전체 업무를 세팅해야 하는 이 상황에서 나는 책임을 피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다음 주 출고라는 것에 있었다. 고객사는 국내 네트워크 마케팅 업체 중 상위업체였고, 업체 특성상 제품의 출고 예정일은 필히 지켜야 하는 업체였다.
하지만, 우리는 약속된 수량의 3분의 1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원료 문제를 의심했다. 혹시라도 원료에 문제가 있다면 고객사에 핑계라도 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원료는 멀쩡했다.
문제는 생산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포장’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생산된 제품 중 정상으로 분류되는 것은 30% 남짓, 나머지 70%는 전부 불량으로 빠졌다.
포장 불량.
내용물은 멀쩡했지만 외형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불량품은 계속 그렇게 버려졌다.
버리고, 다시 만들고, 또 버렸다.
같은 원료를 넣고, 같은 부자재를 사용하고, 같은 공정을 거치는데 결과는 매번 달랐다.
그 반복이 계속되면서 공장 안에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고객의 요청은 다음 주 목요일 출고는 무조건 맞춰달라는 것이었다.
고객사에서도 더 이상 납기일 연기는 안된다고 못을 박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날짜를 맞추려면 늦어도 일요일 저녁까지는 모든 생산을 끝내야 했다.
건강기능식품은 만들었다고 바로 나갈 수 있는 제품이 아니었다.
이물 검사, 미생물 검사. 특히 대장균 검사는 결과를 받기까지 최소 3일을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일요일이 마지노선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공장장은 말했다.
“주말에는 서울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 말을 듣고 순간 아무도 말을 하지 못했다.
핑계였는지, 정말 개인 사정이 있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 느낀 건 하나였다.
이건 남겨진 사람들의 문제라는 것.
금요일 저녁.
나는 생산팀장과 품질팀장, 그리고 몇 안 되는 직원들과 함께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형광등 아래, 누군가는 바닥을 보고 있었고 누군가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선택은 간단했다.
우리도 같이 쉬거나, 한번 도전해 보던가였다.
누군가 먼저 말했다.
“끝까지 해보죠.”
그 한마디로 방향이 정해졌다.
불량을 최대한 줄이고, 버려질 제품은 골라내어 가능한 한 살려서 재포장하고, 일요일까지 최대한 생산을 해본다.
납품 수량을 맞출 거란 욕심, 완벽한 품질은 포기했다.
대신 단 하나, 고객과의 납기 약속은 지키기로 했다.
고객이 원하는 수량에 최대한 맞춰서 납품하고 혹시 모자라게 된다면 다음 주에 부족한 부분을 생산해서 추가 납품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품질팀은 일요일 저녁에 출근해 완제품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고, 나머지 전체 인원은 토요일과 일요일,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가능한 시간 지원하기로 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작업 연장 수당과 주말 근무 수당은 은 제가 책임지고 보고하겠습니다.”
그 말이 필요했다.
누군가는 그들의 노력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으니까.
그날 밤, 대표를 찾아갔다.
상황을 설명했고, 주말 근무 계획과 생산 계획을 보고했다.
대표는 잠시 듣고 있다가 한마디를 물었다.
“이걸 왜 경영지원부장이 하고 있죠?”
나는 짧게 답했다.
“퇴근하고 나서 급하게 직원들과 상의했습니다. 모두들 고객과의 약속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표는 더 묻지 않았다.
토요일.
공장은 조용했다. 주말이라 그런 게 아니라, 말할 여유가 없어서였다.
모두 각자 맡은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반복했다.
일요일.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저녁이 가까워질수록 공장의 공기는 더 무거워졌다.
하지만, 마침내 우리는 해내고야 말았다.
납품 수량을 맞췄다.
품질 역식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출고 가능한 수준까지는 끌어올렸다.
그날 밤 품질팀이 검사를 시작했다.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 어떤 순간보다 길게 느껴졌다.
3일 후 검사결과도 이상이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날 우리는 못하던 생산을 하고, 작동 못하던 설비를 제대로 작동했던 것이 아니라, 고객과의 약속을 지켰던 것이다.
몇 주 뒤.
아침 출근과 동시에 대표이사실에서 호출이 왔다.
“생산팀에 무슨 문제 있습니까?”
정확하게 그 팀 안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경영지원부장으로서 지속적으로 체크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보고를 했다.
설비 안정화 문제, 지속되는 불량 문제. 그에 따른 원부자재의 손실, 폐기 비용 증가 등 결국 회사 안 살림에 대한 문제에 대한 보고였다.
대표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원룸 하나 알아봐요.”
그리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생산이사 하나 내려옵니다.”
인사는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늘 그랬다. 임원들은 늘 서울에 있는 K회장의 지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임원이 많다고, 혹은 능력이 뛰어나다고 돌아가는 조직이 아니다.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전 조직원이 움직여야 돌아가는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말했다.
“임원 문제가 아니라. 오퍼레이터 문제입니다.”
“설비를 다룰 사람이 없으면 누가 와도 결과는 같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때마다 임원을 새로 채용하실 계획이신가요?”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새로운 생산이사가 들어왔다.
문제는 공장장과 너무 비슷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경력도, 방식도, 자존심도.
둘은 금방 부딪히기 시작했다.
설비 운용 방식, 세팅 기준, 작업 방식 등
그들의 사소한 차이가 충돌이 되었다.
그 사이에서 무언가가 어느 누구의 노력으로 개선이 된다면 좋았겠지만, 그들의 충돌 속에서 무언가가 개선된다는 것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되려, 불량률은 더 올라갔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설비가 문제입니다.” “ 이 설비보다는 다른 회사의 설비가 훨씬 좋습니다.”
문제가 있다는 설비는 이제 도입한 지 3개월도 안 된 장비였다. 제대로 돌려보지도 못했던 설비였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설비 도입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름이 끝나갈 무렵, Z사와 함께 진행하는 공장 개업식이 다가오고 있었다. 전 세계 건강기능식품 시장 판매에서 늘 1위를 하는 업체와 함께 하는 공장 개업식은 엄청나게 큰 행사였다. 특히 Z사 전용 제조 업체로 세워진 공장이었기 때문에 Z사의 본사 임원들도 참가하는 큰 행사였다.
언제나 그렇듯 그런 대형행사에는 임원 회의가 빠지면 안 된다.
나는 비록 임원은 아니었지만, 임원 회의록을 작성하기 위해 그리고 공장 설립 이후에 처음 진행하는 공식 첫 임원회의였기 때문에 그동안의 회사 살림 현황을 보고하는 자리를 만들라는 대표님의 지시로 함께 해야 했다
그리고 난 조금 심각한 보고를 했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 인건비, 생산 실패로 인한 손실, 현재 자금 상황, 앞으로의 예상되는 현금 흐름 및 자금 확보 방안등에 대한 보고를 했다.
실제 속으로 예상들은 하고 있었겠지만, 실제 회사 살림살이를 숫자와 도표를 통해 보고를 받다 보면 실제 체감은 크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특히 이익이 나는 것보다 지금처럼 손실이 큰 보고를 받게 된다면 말이다.
내가 하는 보고서 항목 하나하나에 각 임원들은 자신들의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날 그렇게 그들에게 성적표를 적랄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앞으로 조금이라도 개선되길 원했었다. 아마도 D대표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 기대뿐이었다.
사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다시금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