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한 그릇
�어릴 적, 우리 집엔 콩나물 시루가 있었다.
시루엔 옹기로 된 널찍한 물받이와, 갈라진 나뭇가지를 잘라 만든 튼튼한 시옷자 모양의 받침대가 올려졌다. 그 위에는 콩나물 시루가 큼직하고도 투박하게 놓여 있었다. 콩나물 시루는 여름에는 시원한 마루에서, 겨울이면 가장 따뜻한 안방 아랫목에 놓여서, 어머니와 형제들에게서 애지중지 관리를 받았다. 흙 묻은 지저분한 손으로는 콩나물 시루에 물을 줘서도 안 되고, 그런 손으로는 시루를 들춰 보는 것조차 철저히 금기시되었다.
어머니는 집을 비우실 때는 늘, “콩나물 시루에 물 단디 잘 줘야 된다.” 하시며 다짐을 받기 일쑤였다.
그리고선 시루에 물 주기를 깜박한 날은, 호된 야단과 잔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기르던 토끼에게 풀을 주는 걸 빠뜨린 날, 말 못하는 짐승을 굶겼다는 것처럼 혼이 났다.
다행스러운 건, 콩나물 시루에 물 주는 걸 빠뜨릴 일은 그닥 없었다. 덮어놓은 까만 보자기를 들춰 보면, 물만 줬을 뿐인데, 왜 그리 쑥쑥 잘 자라던지… 그걸 보는 재미에 틈만 나면 들여다보고, 형제들 간에 경쟁하듯 번갈아 가며 물을 주고 또 주고 한 적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콩나물은 어머니의 정성과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도 않아, 시루를 덮은 까만 천은 통통하고도 길쭉한 콩나물에 의해 불룩하게 밀어 올려졌다. 요즘 마트에서 파는 것과는 달리, 발이 수북히 달린 채 어른 손바닥 길이보다 더 자란 콩나물은 다듬기가 다소 불편하긴 했다. 하지만 온갖 반찬과, 심지어 콩나물밥에까지 활약을 멈추지 않아서, 우리 집은 콩나물만으로도 잔치나 열린 듯 먹거리가 푸짐해지곤 했다.
빨갛게 먹음직스러운 콩나물무침, 파가 송송 들어간 콩나물 향이 진동하는 콩나물국, 심지어 밥이 더 푸짐하고 많아지게 만들던 콩나물밥… 쪽파를 쫑쫑 썰어 넣고, 고춧가루와 참기름이 맛을 더한 간장 양념을 곁들인 콩나물비빔밥. 그중 내게는 제일 잊을 수 없는 콩나물 요리는, 추운 겨울날 몸을 떨며 들어간 집에서 푸짐하게 나를 반기던 김칫국밥이다. 그 통통하게 잘 자란 콩나물은, 굵은 멸치와 묵은 김치를 만나면 깊고 진한 국물 맛이 일품인 김칫국밥을 완성해냈다. 칼칼하고 멸칫국물의 감칠맛이 터질 듯한 김칫국밥은, 뜨끈뜨끈한 국물만으로도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를 떨쳐 버리기에 충분했다.
잘 익은 김장김치를 쑹덩쑹덩 썰어 넣고, 굵은 왕멸치도 한 웅큼 푸짐하게 들어간 김칫국밥. 여기엔 무엇보다도 주역의 역할을 단단히 해낸 건, 역시 아랫목에서 잘 키워 향내가 진동하던 어머니표 콩나물이다. 이런 김칫국밥은 겨울철에나 맛볼 수 있었고, 그 뜨뜻한 국물은 얼큰했고, 감칠맛은 잊을 수가 없다.
그 김칫국밥을 먹을 때면, 난 으레 입천장이 데곤 했다. 허기진 참에 진한 냄새에 못 이겨 허겁지겁 한 숟갈 떠넣다간 ‘아차’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입천장이 까져서 며칠을 고생해도, 김칫국밥이라면 언제든 좋았다.
하지만 입맛이 다른 통에, 모두가 다 좋아했던 건 아닌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둘째 형은 유독 그 맛난 콩나물국밥을 이상하리만치 싫어했다.
“이건 꿀꿀이죽도 아니고, 이걸 사람이 우째 묵는단 말이고…!”
그렇게 투정을 하며 형은 먹는 듯 마는 듯 숟가락을 게작거렸다. 그나마 왕멸치도 일일이 건져냈다. 그거 발라 먹는 맛이 또 일품인데… 그럴 때면 ‘이게 얼마나 맛있는 건데, 무슨 소리야…?’ 하며, 나는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그리곤 살짝 들리게,
“한 그릇 더 주이소...”
했던 기억에 지금도 웃음이 난다. 형이 투정을 부릴수록, 나는 괜히 먹을 게 많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그랬지만, 결국 두세 그릇은 늘 거뜬히 비우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김칫국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바깥 김장독에서 추위에 벌벌 떨던 빨간 묵은 김치, 온 푸른 바닷속을 활개치던 대왕멸치, 그리고 따뜻한 아랫목에서 양반처럼 빳빳하게 자라난 뽀얗고 노란 콩나물. 서로 다른 세 가지 삶이 한 가마솥 안에서 어렵사리 만난 것이다. 거기다 아궁이에다 불을 한참 활활 때면, 무쇠솥 안에서 어우러지고 또 진하게 우러나, 칼칼하고 감칠맛 넘치는 맛난 김칫국밥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건 그 시절 우리 집이 가진 겨울의 든든한 지원군이었고, 한 그릇 안에서 완성된 최고의 ‘추위 박멸 레시피’였다.
그 시절,
방 한 켠 콩나물 시루에서 은근히 퍼지던 향기와,
시루 보자기를 틈틈이 들추며
형제들끼리 앞다투어 물을 주던 손길들,
“저녁 먹자. 콩나물 좀 다듬어라.”
시던 어머니 목소리.
귀찮지만 기대감에 둘러앉아 꼼지락거리며 콩나물 껍질과 발을 떼어 손질하던 시간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콩나물 시루 하나가 고이 놓여 있던 시골집이 떠오른다.
그리곤 잘 익은 김장김치 냄새를 따라,
부엌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그리운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