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미리 생수병

얼음물 챙겨가야지

by 정종신

코로나 이전 어느 여름날 오후 수업.
그날 5교시는 체육이었고, 애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교실로 들어왔다.
나는 칠판 앞에 서 있었고, 교실은 헥헥거리는 숨소리로 가득했다.


2 분단 맨 앞줄 아이 하나가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 녀석이 물을 다 마신 뒤, 빈 병을 다른 아이에게 건넸다.
그 순간 이상했다.

‘어라? 자기 물이 아니었네?’


머릿속이 바삐 돌아갔다.
아침, 어떤 아이가 집에서 얼음물을 한 병 챙겨 왔다.
그 물, 그냥 생수가 아니었다.
전날 밤부터 냉동실에 넣어둔 얼음물.
누가 준비했을까?

본인보다는 아마도 엄마, 혹은 할머니.
아침 등교 준비하는 아이를 불러
“물 챙겨가야지” 하고 손에 꼭 쥐여주었겠지.


그 물은 금방 마실 수 있는 게 아니다.
물을 녹이려면 책상 모서리에 생수병을 계속 두들겨 패야 한다.
쫄쫄 쫄 몇 방울씩, 그러다 겨우 조금 마신다.
그렇게 아껴뒀던 물을 오후 체육시간 끝나고 꺼냈을 거다.
목이 너무 말라서, 이제야 제대로 마시려던 참이었을 것이다.


근데 그때 친구들이 몰려든다.
“야 나도, 나도, 나도.”
그중 한 명, 아니, 평소에 같이 다니는 애가 먼저 말했을지도 모른다.
"한 모금만 줘."


거절하기 어렵다.
그날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 한 모금 줬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아이는 이미 알고 있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결국 다 마셔버린다.
그리고 빈병이 돌아온다.


나는 그 장면을 눈앞에서 보고,
아이의 속을 따라가 본다.

아무 말 못 했을 거다.
딱히 뭐라 하기도 애매하다.
‘겨우 물 한 모금 가지고… 쪼잔하게 굴기는.’
그런 핀잔을 들을까 봐 입을 다물었을 것이다.


학교 마치고 집에 가면,
엄마가 물으신다.
“물은 잘 마셨어? 부족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그 질문에
‘애들이 다 마셨어요, 나 거의 못 마셨어요’
그런 말 못 한다.


그저,
“예, 잘 마셨어요. 부족하지 않았어요.”
그 말에 엄마는 또 웃으며
다음 날 얼음물을 준비하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그 물병은 아이의 손에 들려진다.


다시 체육 시간, 다시 ‘나도 나도’, 다시 한 모금.
그리고 다시 빈병.
그 물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비어 가고 있는 걸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 보니,
이제는 물을 아예 안 챙겨가고 싶어진다.
‘어차피 내가 마시는 건 한 모금도 안 되잖아…’
그래서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말한다.
“엄마, 이제 물 안 챙기셔도 돼요.”


엄마는 고개를 갸웃하신다.

“왜? 아직 더운데?”
하지만 진짜 이유는 말 못 한다.
‘어차피 가져가 봐야 나 거의 못 마셔요.’
그 말은 꾹 삼킨다.
“그냥요. 들고 다니기 귀찮아요. 정수기 물 마시면 돼요.”
괜히 핑계를 댄다.


그렇게 빈손으로 학교에 갔더니,
기다렸다는 듯 친구들이 묻는다.
“야, 오늘 물 안 가져왔어?”
묻는 건지 따지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따지는 것처럼 들린다.


‘아... 진짜 화난다. 미치겠다.’
말을 해봐야
“야, 친구끼리 물 한 모금도 못 주냐?”
“쪼잔하게 굴긴.”
그런 말이 돌아올 게 뻔하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못 한다.
그래서 더 화가 난다.


생각하면 할수록 속이 뒤집힌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내 물도 지켜내지 못하는 사람인가?’
그 말이 마음 깊은 곳에 스며든다.
자존감이란 게 조금씩 무너진다.
이건 그냥 물 한 병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는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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