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CRAFT Prose Prize에 대하여

왜 나는 문장을 조각하는가

CRAFT 2025 Flash Prose Prize에 출품하여 심사중인 글.


CRAFT는 언제나 문장의 ‘정밀도’를 본다.

문장 그 자체, 언어의 결을 들여다보는 문예지다.


그중에서도 Flash Prose Prize는 단 1,000단어 안에서 하나의 세계를 세워야 하는 실험이다.


1,000단어는 짧지만 짧지 않다. 그 안에서는 단 하나의 문장만 어긋나도 전체의 지도가 바뀐다.

그래서 이 상(Prize)은, 문장을 쓴다는 것이 아니라 조각한다는 걸 아는 사람들을 위한 출품이다. 현재 내가 출품한 글은 심사 단계를 통과했다.




향수 1: 화강암 빛과 결정의 메아리 (Granite Light and the Crystalline Echo)


〈Granite Light and the Crystalline Echo〉를 쓰면서 내가 그려낸 글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그것은 몸이 도시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공기의 밀도와 빛의 방향이 어떻게 정신의 구조를 바꾸는지를 기록한 감각적 실험이다.

헬싱키의 화강암은 차갑게 결을 세웠다. 마치 북반구의 건축가가 설계한 향수처럼, 그 도시는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담고 있다. 이 향은 탑 노트부터 베이스 노트까지 차가운 콘크리트, 서늘한 바닷바람, 그리고 건조한 미네랄로 이루어져 있다. 불필요한 장식이나 따뜻한 잔향을 허락하지 않는다. 모든 감정을 응축시켜 단단한 구조로 버티게 하는 법, 철저한 자기 완결성을 가르치는 향이다.


그 향이 퍼지는 순간,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매끈해진다.


단단한 구조물로 버티는 법,


고독을 방패로 삼아 생존하는 법을 익히는 정밀한 조각처럼.


향수 2: 서울의 경계, 증발의 숨결 (Seoul’s Boundary, The Breath of Evaporation)



반면, 서울의 공기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있다. 끈끈하고 촘촘한 습도는 모든 경계를 서서히 지워낸다. 서울이 하나의 향수라면, 그것은 수묵화처럼 번지는 유동성일 것이다. 탑 노트의 선명함은 오래가지 못하고, 모든 향이 중첩되고 섞인다. 사람들의 숨결, 간장 냄새, 흙과 물이 뒤섞인 아스팔트의 열기가 안개처럼 뭉쳐 있다.



이는 단단한 구조 대신 증발과 순환으로 살아남는 법을 가르치는 향이다.


경계는 모호하고, '나'와 '너'의 구분이 끊임없이 허물어진다.

정체성은 공기 속에서 끊임없이 형태를 바꾼다.



조각과 순환 사이에서 발견한 정밀함


나는 이 두 도시, 두 향기 사이를 걸으며 ‘정밀함’이라는 단어를 다시 생각했다. 헬싱키가 조각의 정밀함(깎아내어 본질만 남기는)을 요구했다면, 서울은 순환의 정밀함(어긋남 없이 흐르고 되돌아오는)을 요구했다.


형용사를 덜고, 감정을 닦고, 문장을 압축했다. 그러자 언어는 점점 물질이 되었다.

빛처럼, 냄새처럼, 닿을 수 있는 무게로.


그 글에서의 메아리는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그것은 몸의 신호다. 한 번 내뱉은 숨이 대기를 돌아 다시 되돌아올 때, 그 잔향의 선명한 감각—바로 그게 내가 쓰는 이유이다. 헬싱키의 차가운 화강암을 껴안고도 서울의 습기 찬 공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이유, 이 모든 생존의 언어를 하나의 문장 안에 담아내는 정밀한 쾌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Tallin, day Th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