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후각로 찾는 토요일 오후
어느 회색빛 오후,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산책을 포기하고 지하철로 집에 돌아왔다.
시장에는 벌써 황금빛의 트리 전구 불빛이 켜져 있었다. 차가운 공기 사이로 전구가 깜빡였고, 젖은 골목에서는 분식집의 오래된 기름 냄새가 희미한 열기와 함께 피어올랐다.
새로 생긴 반찬가게 가판대 위에는 김밥이 놓여 있었다. 은박지 위로 고소하고 짭조름한 참기름 냄새가 번지고, 달걀지단과 단무지의 노란빛이 유리문 너머로 번쩍였다.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평소 먹지도 않는 김밥 한 줄을 주문했다. 재료는 보지도 않은 채.
언제나 소풍 날이면 나는 김밥 대신 젓가락만 들고 버스에 탔다.
나무젓가락 한 벌, 그리고 플라스틱 곽에 담긴 만두 몇 개. 친구들이 김밥을 펼칠 때면, 나는 몇 명의 친구들과 젓가락을 들고 기웃거렸다.
"한입만. 한입만."
그렇게 얻어먹은 김밥의 맛은 다양했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이상하게도 그 버스 안의 냄새가 떠올랐다. 차가운 겨울 공기 속에서, 희미하게 번지던 미역국의 짭조름하고 끈끈한 향, 그리고 분식집 기름 냄새, 젖은 비닐 천막의 미지근한 온기가 천천히 섞여 퍼지고 있었다.
그것은 김밥의 맛이 아니라, 그 냄새에 묻어 있던 소속감의 냄새였다.
집으로 돌아와 김밥을 풀어놓고, 나는 잠시 서서 바닥에 펼쳐둔 젖은 우산을 바라보았다. 불 꺼진 부엌의 나무 도마 앞에 멍하게 서 있는 동안, 은박지에 싸인 참치김밥은 이미 식어 있었다.
차가워진 김밥의 밥알에서 느껴지는 무심한 전분의 냄새는, 상실된 시간의 온기를 다시는 되찾을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다가왔다.
창 밖에는 다시 비가 개어 있었다.
나는 무색무취의 빨래를 삶으며, 무심코 참치캔을 꺼내 미역국을 끓일지 망설였다. 어쩌면 그 순간의 허기는 배고픔이 아니라,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감싸 안고 싶은 후각적 충동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