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gaze of a Psychiatrist
Scene Triggered: Marriage Story (2019)
주방 테이블 앞의 침묵
아담 드라이버: “You’re always so fucking competitive. You always have to win.”
스칼렛 요한슨: “I don’t care if I win. I just want you to understand.”
나는 말싸움은 믿지 않는 사람이다.
후반부, 그들의 감정 폭발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명확해서,
오히려 대화가 사라진 장면이 더 오래 뇌리에 남았다.
주방 테이블의 컵은
그들에게 남은 마지막 함께 있음의 도구였고,
그 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더 이상 흘러가지 않는 감정의 잔류물이었다.
H는 그 장면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정확히는, 그 컷 하나에서 멈췄다.
스틸처럼 정지된 컵.
플라스틱 컵이었다.
종이도, 유리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담고 있지만,
일시적이고,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컨테이너였다.
그 컵 위에..
물방울 하나가 아주 천천히 떨어졌다.
너무 작고, 가볍게 흘러갔지만
H는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Conversation snapshot
Y: 컵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왜 그 컵에 그렇게 오래 멈췄어?
H: 그 컵은 말하지 않거든.
아니,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만들거든.
울리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고,
그냥, 삼킬 수 없는 조각이 목에 박히는 느낌.
무표정하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 컵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잠깐씩 스쳤다.
누군가는 물을 마셨고,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고,
누군가는 그 컵을 식탁 끝으로 밀어냈다.
Y: 주방 식탁은 너에게 어떤 곳이야?
H: 병원 수술실보다 더 위생적이지만,
침실보다 더 많은 유령이 떠돌지.
Y: 그 유령은 어떤 잔해를 뜻하는 거니?
H: 멈춰 있는,
흐르지 못한 말들이라고 하자.
하지만 H는
컵 위에 떨어진 물방울만을 기억한다.
그 컵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된 순간.
그 물방울이 컵에 닿자마자
작은 파장도 없이 사라졌던 그 느낌.
그 장면은 컵을 스쳐갔지만,
H는 컵의 파편을 통해
그 진동을 삼켰다.
※ 정신의학적 용어로 affective blunting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표현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플라스틱 컵은 그 무표정한 표면을 닮아 있다.
#정신의학적 주석: Affective blunting
H의 반응은 감정의 부재가 아니라, 감정 표현의 지속적 억제에서 비롯된 정서적 반응이다.
이는 정신의학적으로 affective blunting이라 불리는 상태에 해당한다.
이 경우 내면에 충분한 정서를 경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정, 말투, 신체 언어 등 외현적 반응이 현저히 제한되거나, 일관되게 평평하게 유지된다.
그것은 종종 장기화된 외상, 정서적 생존 전략, 또는 자기 보호적 방어의 일부로 나타난다.
장면 속 ‘플라스틱 컵’은 이와 같은 둔마 상태의 시각적 메타포였다.
감정을 흡수하지만 표면의 반응은 거의 없다.
그 컵 하나에서 부서지지 않고도 상처 입는 방식,
그 말 한 줄로 삼켜지는 분노의 성질처럼,
컵 위에 떨어진 물방울은 파장을 만들지 못한 채 사라지고,
그 장면을 본 H는 “삼킬 수 없는 조각이 목에 박혔다”고 표현한다.
이는 정서 둔마의 이면에 자리한 감지되지 못한 고통이 언어화 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