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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부서진 채로 남아 있었다

Scene Triggered: Her (2013)

Scene Triggered : Her (2013), Samantha의 이별 직전 대화


사만다는 말했다.
"I still love you, but..."
그리고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은 다정했지만,
속은 텅 비어 있었다.
그건 안심시키는 웃음이 아니라,
뒤돌아서는 사람의 마지막 예의였다.



#Conversation snapshot

Y: 왜 너는 그 장면에서 멈췄어?
H: 그 웃음이 내 웃음 같았거든.
그 순간 나는,
말하고 있었지만 이미 떠나고 있었어.


#Self-inquiry

H의 자기 분석:
나는 영화 속에서, 길거리에서도 이런 웃음을 본다.
“저는 이제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웃을 때,
그 웃음 속에는 복귀가 아니라 사라짐의 결심이 숨어 있다.


그 미소를 읽어내는 시선은 의사로서의 시선이지만,
그 웃음을 알고 있는 건 그 미소를 지어본 사람이다.



감정 안에 머무는 H, 사라지는 그녀, 그리고 바라보는 Y.

그 장면에서 나는 셋으로 나뉘어 있었다.
감정 안에 머무른 사람(H),
감정이 사라지는 사람(그녀),
그것을 바라보는 관찰자(Y).


셋 모두 나였고,
셋 모두 같은 시간 안에 있지 않았다.
한 자아는 현재에,
한 자아는 과거의 장면에,
나머지 하나는 미래의 기억 속에 있었다.
이건 감각의 분열이 아니라, 시공간의 의도적 분절이었다.
시간이 깨져 서로 다른 나를 수용하지 못한 채,
세 겹의 내가 장면 안에 겹쳐 있었다.


‘나’라는 발화를 반복하는 동안 공허해진 자기

#Conversation snapshot

Y: 그럼 진짜 너는 누구였어?
H: 말을 하며 남으려 했지만,
그 말을 반복하는 동안,
내 의미가 사라졌어.
"It was semantic satiation of the self.."

‘나’를 계속 발음하는 동안,
나라는 말이 점점 공허해져서
결국 나는 그 웃음의 빈틈 속으로 빠져들었지.


장면은 계속 흘렀지만,
나는 웃음의 표면에서 재생을 멈췄다.
그 웃음은 말의 끝이었고,
그 끝에서 나는 사라졌다.


I tried to stay by speaking, but I vanished between my own words.



#Unspoken Frame:
에곤 실레의 〈자화상> — 뒤틀린 손.
붙잡으려는 의지와 놓아버리려는 욕망이 동시에 걸린 형태.
그 웃음도 마찬가지였다.
남겨두려는 얼굴과, 사라지려는 얼굴이 동시에 걸려 있었다.


#정신의학적 주석
이 장면에서 H는 자기 의미의 포화(semantic satiation of the self)와 시간적 파편화(temporal fragmentation)를 동시에 겪고 있다.

-자기 의미의 포화(semantic satiation of the self): ‘나’라는 말을 반복할수록, 그 의미가 점점 희석되고 공허해지는 상태. 말은 남지만, 존재감은 사라진다.

-시간적 파편화(temporal fragmentation):현재·과거·미래의 자아가 한 장면 안에서 동시에 존재해, 시간의 흐름이 조각나고 감정이 통합되지 못하는 상태.


언어는 연결을 시도하지만,
그 반복이 오히려 자아의 실질을 소거하며,
깨진 시간 속에서 세 개의 자아가 서로 다른 위치에 머무른다.
이는 감정의 회피가 아니라,
존재가 분절된 상태에서 발생하는 자기 소거의 한 형태다.


그리고 나는, 그 웃음의 시간 속에서 오래 머물렀지만 언젠가 돌아올 거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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