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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에서 스치는 순간에 갇혔다

Scene Triggered: 영화와 회화의 이중 반사

Scene Triggered: 붉은 빛 조명 아래 복도에서

In the Mood for Love (2000)

붉은 조명이 복도 끝 벽면을 천천히 물들이고 있다.

벽과 벽 사이, 좁은 복도 끝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그 사이로 스치는 바람보다, 숨소리가 더 가까웠다.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지만, 한 발도 다가서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 거리를 침묵처럼 붙든다.
그 어떤 신체적 접촉도 시작되지 않은 채로, 장면은 고정된다.


#Conversation snapshots

Y: 왜 너는 이 장면에서 멈췄어?
H: 저건 접촉 직전의 정지야.
말이 발화되기 전, 정서는 멈춰서 있는 순간.
그 장면은 아름답지만 잔인해.

.


#Self-inquiry of H

이 장면에서 흐르던 음악은 “Yumeji’s Theme.”

바이올린 선율이 붉은 공기 속을 맴돌았다.

클림트의 〈키스〉속 두 사람도 강하게 껴안고 있지만, 얼굴은 무표정하다.
황금빛 장식이 그들의 몸을 감싸지만, 표정은 닫혀 있다.
붙잡고 있으면서도, 놓칠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 흘러간다.
손끝은 가까워도 마음의 거리는 지키는 사람들.
그들은 눈을 마주치지만,
감정이 흘러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간격을 남겨둔다.



#Conversation snapshots

H: 그 둘은 침묵을 늘리는 기술 같아. 오래 붙잡고, 오래 유예하는.

Y: 그 틈은 무엇 때문일까? 두려움? 보호? 자기보호?
H: 셋 다일 거야.
다가서면 사라질까 봐 불안하고,
멀어지면 부서질까 봐 지키는 것.


#Unspoken Frame


구스타프 클림트 〈키스〉:

황금빛은 포옹이 드러낼 수 있는 모든 격정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 화려한 장식은 그 순간의 최고조를 보여주는 듯했지만, 감정을 조율하고 억제하려는 무의식적 시도처럼 보였다. 그들의 무표정한 얼굴은 빛나는 절제 아래 숨겨진 내면의 침묵을 증언하고 있었다.


#정신의학적 주석

이 장면에서 H는 정서 억제(affective restraint)와 시간 정지(temporal suspension)를 목격한다.

정서 억제: 감정을 의도적으로 표현하지 않음으로써 관계나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심리적 조절.

시간 정지: 포착된 현재를 연장하며, 결정을 유예하고 감정을 고정시키는 경험.

이는 회피가 아니라, 유지하려는 욕망과 상실의 예감을 동시에 붙드는 복합적 상태이다.
클림트의 황금빛 장식 속 무표정한 얼굴처럼, 그들은 빛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붉은 침묵 속에서 여전히 입을 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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