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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난 세계가 삼켜버린 눈빛

푸른 잔디 위에 드리운 종말의 손끝

Scene Triggered: Melancholia (2011), directed by Lars von Trier


Lars von Trier did not simply depict sex and violence with brutality.

He absorbed the melancholic interior of a human being into the vastness of cosmic apocalypse.


커스틴 던스트는 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잔디 위에 누워 있었다.

아름다운 정원 위로 그토록 고대하던 종말이 다가오고 있었다.

하늘은 푸른빛이 아니라, 거대한 행성이 서서히 다가오는 검푸른 압력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녀는 도망치지 않았다.

손끝은 정지되어 있었고, 선명한 초록색 잎사귀를 반사하는 무표정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파멸을 올려다보았다.

행성은 조용하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녀를 삼키러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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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sation snapshots

Y: 왜 그 장면에서 너는 화면을 정지했지?

H: 저건 끝이 아니라, 끝을 기다리는 사람의 표정이야.

거대한 침묵 앞에서, 나는 작아지는 동시에 잠식되었어.

끝과 함께 눕는 얼굴이지.


#Self-inquiry of H

그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고야의 〈사투르누스〉를 보았다.

자식을 잡아먹는 거대한 그림자. 눈은 광기와 집착으로 번쩍였고, 입안에는 존재가 찢겨 들어가고 있었다.

고야의 사투르누스도, 커스틴 던스트가 응시한 행성도 결국 같은 구조를 품고 있었다

하나는 신의 분노, 다른 하나는 우주적 파멸이었지만,

둘 모두 존재 자체를 삼켜버리는 포식만이 남은 세계였다.

진료실에서도 나는 이런 경험을 목격한다.

“나는 더 이상 나로 남을 수 없다”는 고백들.

그것은 단순한 우울도, 관계의 끝도 아니었다.

존재 자체가 의미를 잃고, 자아가 우주 속에서 산산이 흩어지는 듯한 감각이었다.


#Conversation snapshots

Y: 그건 공포였어? 아니면 해방이었어?

H: 둘 다일 거야. 공포는 거대했고, 해방은 그 공포 안에서 잠시 반짝였어.

나는 사라지지만, 동시에 무게에서 풀려나는 모순된 자유.



#Unspoken Frame

Goya's painting: Saturn Devouring His Son


프란시스코 고야 <사투르누스>

거대한 신이 자신의 아들을 붙잡고, 팔과 몸을 찢어 삼켜 넣는다.

눈은 열려 있고, 몸은 거꾸로 매달려 있다.

그것은 단순히 파괴가 아니라, 포식만이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인 세계였다.

커스틴 던스트가 올려다본 행성 역시 같았다.

사랑도 관계도 모두 지나간 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삼켜질 수밖에 없는 나”라는 인식이었다.

그녀의 눈빛은 삼켜질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자의 평온이었다.




#정신의학적 주석

이 장면에서 H는 existential engulfment (존재의 삼켜짐)과 cosmic detachment (우주적 거리두기)를 경험한다.

Existential engulfment: 자아와 존재가 더 이상 구분되지 않고, 거대한 힘(우주, 타자, 신)에 의해 완전히 흡수되는 감각.

Cosmic detachment: 개인적 관계와 서사를 넘어, 존재 전체를 하나의 먼 조각으로 바라보는 거리두기. 감정은 희미해지고, 대신 우주적 차원의 무력감과 고립감이 스며든다.

이는 단순한 우울이나 분노가 아니라, 존재론적 종말의 체험이다.

말도 굳고, 몸도 굳어지고, 오직 집어 삼켜지는 순간만이 남는다.



그리고 나는, 그 잔디 위에서 이미 끝난 세계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마침내 나를 삼킬 평온에 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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