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urse of Love : 알랭 드 보통
The Course of Love
"그리고 왕자님과 공주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책의 끝은 항상 이런식이다.
드라마도 크게 다르진 않다. 우여곡절을 겪은 남녀 주인공은 결혼과 함께 해피엔딩을 맞이한다.
그래서일까. 결혼 제도와 함께 어느틈엔가 연애의 행복한 결말은 결혼이라는 공식이 성립해버렸다. 사실은, 결혼이, 연애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데도 말이다!
이 책은 이러한 부조리에 대해서 꼼꼼하게 지적해주는 신박한 책이라서, 일단 강추!
알랭 드 보통은 낭만으로 가득 찼던 연애가 결혼이라는 현실을 맞이하면서 겪게 되는 오해와 혼란에 대해 남녀의 성별에 따른 구분이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 별개의 인격체로 자라난 '두 사람'의 심리에 대해 세세하게 조명한다.
소설 자체는 심플한 플롯으로 구성되어 쉬이 읽히지만, 주인공들이 겪는 소소한 일상들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며 감정의 밑 마음까지 들추어내는 작가의 관찰이 추가되는 독특한 구성으로 짜여져 있다.
책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다음은 개인적인 목차 요약)
1부 - 낭만주의 : 사랑에 빠지는 순간과 낭만적 연애 시대.
2부 - 그 후로 오래오래 : 결혼의 시작, 오해와 혼란의 시작.
3부 - 아이들 : 출산과 함께 '남녀'가 아닌 '부모'로.
4부 - 외도 : 지극한 현실이 낳은 익숙함, 의무, 그리고 지루함.
5부 - 낭만주의를 넘어서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
20대엔 사랑의 들뜬 열정에 대해, 때로는 설레고 때로는 서로 주의를 주면서 썰을 풀었다면,
30대엔 낭만과 현실의 차이에 대해, 그리고 우리가 굳.이 밝히지 않았던 낭만의 이면에 대해 많은 썰들을 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다른 말로 풀어보자면, 밤마다 술자리에서 풀던 썰들을 고급지게 표현해서 무릎을 탁 치게 만든 표현들을 찾아본다면 이런 구절들을 눈여겨 볼 만하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왔따.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낭만주의로 접어들면서 언제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어떤 프로포즈를 받았는지 그 사랑의 드라마틱한 '시작'에 초점이 맞추어져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어쩌면, 정말로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간과한 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보여줄 수 있는, 말할거리를 만드는 데 많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보통씨는 결혼을 조금 거칠지만 이렇게 정의해버린다.
[결혼 :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그렇게 시작된 결혼 생활은 낭만 끝 현실의 수렁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것도 아닌 문제들'이 더이상 아무것도 아닌 문제들이 아니라, 결혼이라는 일상 속에서 굉장히 중대한 지위를 가지고 '두 사람'의 평화를 방해하기 일수이기 때문이다. 특히 감정적으로 토라지는 문제에 대한 보통씨의 설명은 탁월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하다.
토라짐의 핵심에는 강렬한 분노와 분노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려는 똑같이 강렬한 욕구가 혼재해 있다. 토라진 사람은 상대방의 이해를 강하게 원하면서도 그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설명을 해야 할 필요 자체가 모욕의 핵심이다. ...토라진 사람은 우리가 그들이 입 밖에 내지 않은 상처를 당연히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리를 존중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내가 아침으로 먹는 것은 반숙 계란인데 상대가 완숙 계란을 차려 놓으면서 대단한 할 일을 했다는 듯 생색을 낸다면 이 중대한 문제 속에서 우리는 토라짐을 하루에도 열두번은 경험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어쩌면 이 토라짐의 감정 자체가 어린 아이 달래는 듯한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봐야지만 해결이 가능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상의 많은 문제들이 반숙이냐 완숙이냐의 수준으로 극심한 차이들을 만들어 낼 수밖에!
지극한 현실에 뿌리를 내린 결혼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바로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아이들의 출산과 함께 이 현실은 낭만을 불러들일 여지를 아예 없애놓고야 만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지위를 가졌든지 간에 아이들을 양육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는 혹독한 시련을 견딜 수 있어야만 한다는 것도. 그래서 어느날엔가 가정을 위해 나는 힘들게 사회 생활을 하며 돈을 벌어오지 않았느냐는 말은 정말로 의미 없는 외침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한다.
우리는 인류의 영광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고, 회사를 설립하고, 경이로울 정도로 얇은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 있을 뿐 아니라, 생후 몇 달 된 아기에게 요구르트를 떠먹이고, 사라진 양말을 찾고, 변기를 청소하고, 떼쓰는 아이를 달래는 능력에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통씨는, 잠깐의 외도로 이 결혼 생활이 주는 익숙함, 지루함을 깨달은 라비(남자 주인공)를 통해 이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수많은 노력으로 일궈낸 것인지, 그리고 결혼 십여년 차에서야 비로소 결혼할 준비가 되었음을 깨닫는 성찰로 한줄기 희망을 보여준다.
라비가 결혼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것은,
타인에게 완전히 이해되기를 단념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미쳤음을 자각하기 때문이다.
커스틴(아내)이 까다로운게 아님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기보다 베풀 준비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서로 잘 맞지 않는다고 가슴 깊이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씨는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파트너는
우연히 기적처럼
모든 취향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롭고 흔쾌하게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책을 덮으면서, 통쾌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꽁꽁 감춰왔던 낭만주의의 허상을 파헤친 데 대한 통쾌함, 그리고 아무도 공식적으로 알려주지 않던 실상에 대해 엿보는 짜릿함.
그와 동시에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도 뒤따랐다. 한 해 한 해 나이가 들수록 주변 사람들의 취향이 '확고'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 그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새삼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인류의 영원한 적은 결국, 내딛지 않는 발과 앞선 걱정, 그로 인한 두려움이 아닐까.
새해에는 꼭,
취향의 차이를 놓고 협의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고 싶은 연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