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것들

by 달보드레

우리는 대개 무르고 연약한, 두부 같은 부분을 감추고 산다. 꺼내놓기 아까울 만큼 가장 곱고 말랑한 부분을 용기 내어 꺼내놓으면, 그것은 어느새 약점이 되고 그로 인해 받을 상처가 두렵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의 말랑함은 점점 안으로, 안으로 숨는다. 반면 단단한 굳은살로 온 마음을 치장한다. 밖은 딱복, 속은 물복인 셈이다. 딱딱한 복숭아든, 물 복숭아든 실은 모두 복숭아인 것을.

괜찮은 척, 야무진 척, 똑 부러지는 척, 어른인 척.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엔 모든 ‘척’들을 내려놓고 싶어지기도 한다. 어딘가 구멍이 나면 난 대로, 나사 하나가 빠지면 빠진 대로, 나의 흐물거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싶다. 어린 시절처럼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바보같이 헤실헤실 웃기도 하고, 힘을 잔뜩 준 걸음걸이에 힘을 빼고 오징어처럼 흐느적흐느적 거리고도 싶어진다.

깨지기 쉬운 유리가면으로 치장한 나도 사르르 무장해제되는 순간이 있다. 바로 아기와 강아지를 보는 순간. 그들은 왜 그리도 사랑스럽고 무해한지. 표정 없는 얼굴로 길을 걷다가도 엄마 품에 안겨 배냇짓하는 아기를 보거나, 오동통 귀여운 궁둥이를 흔들며 쫄래쫄래 걷는 강아지를 본 순간, 입꼬리가 멈출 줄 모르고 올라간다. 표정 없던 무채색의 얼굴에는 어느덧 환한 조명이 켜진다. 이렇게나 귀여운 아기와 강아지가 함께 있다면, 그 순간엔 그야말로 도파민이 폭발한다. 아기와 강아지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는 말이 온몸으로 이해되는 순간이다.

또 하나를 꼽자면, 나는 자연 속에 있을 때 무해해진다. 이를테면 해질녘의 핑크빛 하늘, 해피아워인 오후 네 시 경의 오렌지빛 햇살이 비치는 건물 외벽, 이 밤 따라 유난히 환하고 예쁜 보름달, 카페 창밖을 가만히 보다 보면 바람에 살랑 흔들리는 푸른 잎사귀. 변함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지만, 그 모습은 매일 변화무쌍하다. 다채로운 자연을 보고 있자면 왜인지 눈을 뗄 수 없다. 어딘가 얼빠진 사람처럼, 고개가 아픈 줄도 모르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건 나의 오래된 습관이다. 완전히 자연만이 존재하는 곳으로 매번 떠나기엔 팍팍한 현실이기에,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도심 속 숨은 자연을 발견하려 노력 중이다.

평상시 긴장도가 늘 높은 사람이기에, 나의 심각함을 풀어주고, 진지함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들이 참 귀하다. 나를 무장해제시키는 것들을 한 달에 한 가지씩 더 찾아봐야지. 그렇게 균형을 맞춰가다, 단단한 나도, 물렁한 나도 모두 나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