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Only a Paper Moon
스윙 재즈는 재즈 역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성공했던 시기였다. 시대적으로는 1930년대 중반부터 1940년대 중반까지 가장 대중적으로 인기 있었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시기였으며 단순히 예술음악이나 소수 애호가 음악이 아니라, 미국 대중문화의 중심이었다. 빅밴드가 라디오, 레코드, 영화, 댄스홀을 통해 전국적으로 퍼져갔고, 심지어 시골 마을에서도 라디오를 켜면 스윙 밴드 음악이 흘러나왔다. 또한 빅밴드에는 반드시 보컬리스트가 있어 노래를 듣기도 했지만 청중과 함께 따라 부르는 구심점이 되기도 했으며, 당시 청년층은 재즈 빅밴드 음악에 맞춰 스윙댄스를 추는 것이 가장 큰 여가 활동이었을 정도로 재즈에 직결된 댄스 덕분에 인기가 폭발했다. 즉, 오늘날 콘서트장에서 관객이 노래를 떼창 하듯, 스윙 시대 젊은이들도 노래와 춤을 함께 즐겼던 것이다.
빙 크로스비, 프랭크 시나트라, 빌리 홀리데이, 엘라 피츠제랄드 같은 스타 보컬이 이 시기 큰 부와 명예를 얻었으며 글렌 밀러, 베니 굿맨, 아티 쇼, 토미 도르시 같은 백인 밴드 리더들은 전국적인 슈퍼스타였다. 듀크 엘링턴, 카운트 베이시, 칙 웹 등 흑인 리더들도 큰 인기와 함께 음악적으로는 더 혁신적이었고, 이 빅밴드의 리더들은 음반 판매와 방송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 빅밴드의 리더들은 거의 "작은 기업의 CEO" 같은 위치로 밴드의 운영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일단 음악적 카리스마가 반드시 필요했다. 연주 능력이 떨어지면 밴드 멤버들에게 신뢰를 얻기 어려워 음악적 리드가 불가능해진다. 베니 굿맨(클라리넷), 아티 쇼(클라리넷), 듀크 엘링턴(피아노), 카운트 베이시(피아노) 등은 모두 자기 악기에서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또한 자신의 악기를 다루는 능력뿐만 아니라 작곡과 편곡에서도 능력을 보여야 빅밴드의 음악을 만들 수 있으며 항상 청중에게 새로운 음악을 제시해야 할 수 있어야 했다. 매번 같은 레퍼토리에 같은 연주라면 대중들은 금방 식상해했으므로 늘 새로운 곡과 다른 방식으로 편곡해서 무대에 올라야 했다.
그런데 이렇게 리더가 음악만 잘한다고 일거리가 그냥 주워지지는 않는다. 연주할 수 있는 클럽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 정기적인 공연을 유치해야 하고 음반 제작 및 라디오 방송 등 비즈니스의 능력도 발휘해야 한다. 간혹 지방 투어라도 하려면 15명 안팎의 멤버들 교통, 숙박, 음식, 급여까지 리더가 관리를 담당해야 했다.
그리고 연주자들은 너무 자유분방했다. 각자의 독특한 성향은 물론 술·마약 문제도 많았으니 리더가 인내심과 통솔력을 발휘하지 못하면 금방 밴드가 와해되었다. 잦은 멤버 교체 속에서도 대체가 가능한 다른 연주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어야 밴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멤버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이해하면서 여러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인성도 좋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Benny Goodman과 Duke Ellington, Count Basie는 스윙 시대에 가장 인기 있는 빅밴드의 리더였으며 핵심이었지만 성격과 평가, 대중적 인기, 연주 스타일 등에서는 조금씩 달랐다. Count Basie는 간결하고 스윙감 넘치는 리듬 섹션을 중심으로 화려한 대편성 편곡보다는 그루브와 즉흥 연주에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악보에 철저히 의존하는 다른 악단과 달리, Basie 악단은 짧은 리프나 코드로만 지원하고 충분한 공간을 주어 Lester Young, Illinois Jacquet, Buck Clayton, Dickie Wells 등 솔로 연주자가 살아나는 환경”을 조성했다.
One O'Clock Jump, Jumpin' at the Woodside, Blue and Sentimental 등은 Basie가 작곡한 곡으로 현재까지 널리 연주되고 있는 대표곡이며, Swing 시대를 거쳐 Hard Bop 시대에도 후배 연주자들과 훌륭한 연주를 많이 남겼다. 이는 그의 연주 역량이 그만큼 뛰어났다는 확실한 증명이었고 그리고 아무리 Hard Bop 시대라고 하지만 빅밴드의 Swing음악 수요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어서 Basie는 왕성한 활동을 오랫동안 유지했었다.
또한 미국의 재즈 연주자들은 국내 활동과 함께 점차 해외 활동도 증가하게 되었는데, 미국 정부 후원 “재즈 외교(Jazz Ambassadors)” 프로그램과 프랑스 앙티브 재즈 페스티벌(1958), 스위스 몽트뢰(1967 시작), 네덜란드 노스시 재즈(1976 시작) 등 유럽의 재즈 페스티벌의 성장, 각국의 클럽 및 방송국 초청과 독립적인 유럽 기획사·레코드사들의 초청 등이 있었으며 Basie의 경우 Clef/Verve와 Pablo 레코드사의 Norman Granz(노만 그란츠)의 기획으로 해외에서도 많은 환영을 받았다.
Zoot Sims는 어린 나이부터 Benny Goodman, Artie Shaw, Stan Kenton, Buddy Rich 등의 여러 빅밴드에서 활동하였으며 Lester Young의 영향을 받아 부드럽고 스윙감 넘치는 연주가 특징이다. 주로 테너를 연주했지만 알토와 소프라노도 간혹 연주하는 다재다능한 연주자이고 Basie와는 깊은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재즈계에서 자주 마주치던 존경과 호감의 관계였다.
Norman Granz는 Basie를 Pablo에 영입하면서 소규모 세션 음반들을 많이 기획했는데, Basie의 절제된 피아노”와 Zoot의 부드러운 테너가 궁합이 좋을 거라고 판단해 둘을 매칭시켜 음반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한다.
Basie & Zoot의 It’s Only a Paper Moon은 Basie의 상쾌한 피아노로 시작한다. John Heard(존 허드)의 베이스와 Louie Bellson(루이 벨슨)의 드럼이 미디엄 템포의 스윙 그루브를 안정적으로 만들어 내는데, 특히 Bellson의 하이했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것이 재즈지’라고 즐겁게 느껴진다. 특유의 공간을 살리는 건반 터치와 자유로운 Basie의 피아노 솔로는 빅밴드의 Basie와 같으면서도 다른 느낌이다. 이어받은 Zoot의 솔로는 마치 노래하듯 리드미컬하게 스윙과 쿨 재즈의 중간 어딘가에 위치한 편안한 톤으로 Basie의 미니멀 피아노와 절묘하게 어울리게 테너를 연주하고 있다.
곡 전체적인 이미지는 제목과 같이 “종이 달”처럼 가볍고 위트 있는 감각을 유지하고 있으며, Basie와 Zoot의 해석이 매우 여유롭고 인간적이라 듣는 사람이 미소 짓게 되는 트랙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기품과 따뜻함까지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