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내부자]

당신의 생기 있는 삶을 위한 작은 제언

by 운옥

어렸을 때 나는 세상이 그렇게 시시할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하는 합창 대회도, 종교 단체에서 가는 수련회도, 그렇게 시시할 수가 없었다.

‘이거 해보자, 저거 해보자’

주의 사람들이 으쌰으쌰 할 때도 속으로는 ‘그걸 해서 뭐 해?’,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거야?’라며 모든 것이 우스웠다.

나에게 있어 더 최악인 것은 어렸음에도 눈치가 너무 빨랐다는 것이다.

행사에서 누군가가 무슨 말을 하면 그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이어질지 너무 예상이 잘 됐다.

이야기가 예상대로 흘러가는 경우에는 ‘역시, 뻔해’라는 생각에, 내 ‘시시해~’는 한층 더 강화되었다.

이렇게 나는 행사에 ‘내부자’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자’로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관찰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 끝이 아니다.

더더욱 최악인 것이 남아있다.

그것은 형식적으로는 내부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외부자로서 참여한 결과물이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모든 행사가 재미가 없었고, 그러다 보니 특별히 기억에 남는 추억도 없었다.

내게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보니, 때로는 내가 행사에 참여했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그 시간만이 내 삶에서 삭제되는 경우도 생겨났다.


이렇게까지 되다 보니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는 빛나는 순간들이 나에게는 무채색으로 되어버린다든지, 그 순간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을 깨닫자 내 삶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내 시간도 빛나게 만들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할까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손에 꼽을 정도로 경우가 매우 적기는 하지만 내가 그 순간에 열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때만큼은 하나하나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았다.

그때를 기억하면 ‘불태웠다’, ‘힘들었다’, ‘후련했다’, ‘재밌었다’ 등 다양한 감정들이 그득그득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이다.

난 이제 어느 조직에 함께 하기로 결정하면 무조건 내부자가 되려고 한다.

단, 주의할 점은 내가 내부자가 된다는 것은 조직의 핵심 인물이 되어 활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에게 내부자가 된다는 것은 그 조직의 목표를 공유하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아주 작은 일이라도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이 나라는 사람이 함께 했었다는 것을 기억해 주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자, 그러면 예를 들어 합창대회에 참여한다고 해보자.

나는 지휘자나 반주자, 솔로 같은 눈에 띄는 역할도, 조직원들을 관리하는 임원의 역할도 아니지만, 소프라노 파트의 한 일원으로서 충실히 임하는 것이다.

연습을 하자고 하면 열심히 참여하고, 음을 익힌다.

지휘자의 말에, 임원의 요청에 열심히 응한다.

그러면 난 합창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보낸 시간을 갖가지 색으로 칠할 수 있게 된다.

음을 익히기 위해 무한 반복하는 연습 시간의 힘듦,

각 파트가 어우러져 원하는 화음을 달성할 때의 흥분,

대회날 무대 위로 올라가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의 떨림,

그리고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냈을 때의 환희


이러한 것들은 외부자로서는 결코 온전히 누릴 수 없는 것이다.

혹시 공감이 안 된다면 비 오는 날 아래 풍경을 떠올려보자.

비 오는 날 창을 통해 비 속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을 보는 것과, 밖으로 나가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사람들과 한바탕 노는 것.


혹시 지금 세상이 시시하고 내가 뭘 하고 있나 재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같은 것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내부자가 돼보는 것을 추천한다.

어떤 조직이든 상관없다.

시시하고 바보 같은 조직이면, 내가 시시하고 바보가 되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한 번 바보가 되어 보자.

그러면 바보가 만들어 내는 생생한 색채들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재미없는 순간을 보내고 있지 않은가,

어차피 이 시간은 무의미하게 흘러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한 번 바보가 되어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리 아까운 시간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실험 설계자가 되어 바보가 되는 것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직접 실험체가 되어 보자.

원하는 결과를 얻든, 그렇지 못하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로 나의 시간이 그렇게 저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가능성이라도 잡아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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