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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유의 하루 Dec 04. 2023

1인 1침대는 안전하다

부부 사이 적당한 거리는 서로 더욱 건강하게 한다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그가 건너왔다


"ㅎㅎ킁... 흑. 흐으윽. 흑흑."


"코가 막혔어요?"


새벽 적막을 깨우는 소리에 남편이 일어났다. 건조한 공기 속 그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흐윽. 흑. 흑.. 허어어엉... 어으어응. 꿈을.. 꾸었어요. 아주.. 억울한 꿈을요."


현실로 돌아오려 얼굴을 좌우로 털어버리기를 반복했다.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생생했던 배경과 억울한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진정되기까지 몇 분 더 걸렸다. 콧물 훌쩍이는 소리가 멈추지 않자 남편은 '무슨 이런 일이 있느냐'며 귀엽다는 듯 웃으며 내 침대로 건너왔다. 그의 온기가 더해지자 안정을 되찾았고, 그는 다시 본인 침대로 건너갔다.



1인 1침대로 갑시다


우리는 올해로 9년 차 부부다. 신혼 때는 남편이 결혼 전에 쓰던 더블 침대를 가져와 썼다. 불편함을 계산하기보다 붙어 있음을 선호했던 시절이었다(남편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물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그런데 누군가와 좁은 공간에서 하루 8시간씩 꼬박 붙어 살을 맞대기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나 혼자 더블 침대를 쓰던 남편은 달라진 수면 환경에 피곤함을 배로 느꼈을 테다. 각자 기질에 따른 수면 방식도 하나둘씩 드러나며 맞추어갈 때쯤이었다. 갑작스럽게 암 치병을 시작하며 수면 생활은 집중하고 개선해야 할 최우선순위로 바뀌었다. 밤사이 체온이 떨어지지 않도록 온열 매트 위에서 자기로 했다. 무게도 무겁고, 1인용 매트인 관계로 함께 잘 수 없었다. 침대 오른쪽 바닥에 매트와 요를 깔아 잠자리를 만들었다. 다시 더블 침대는 오롯이 남편의 공간이 되었다. 우리는 한 방에서 다른 층 공기를 마시며 잠이 들었다.


이사를 준비하며 더블 침대를 정리하기로 했다. 혼자 쓰기엔 공간을 너무 많이 쓰는 탓이었다. 이사가 거대한 프로젝트라면, 침대 구매는 미니 프로젝트 같았다. 다시 한 공간으로 모이는 안을 두고 퀸, 킹 매트리스를 살펴보았다. 더블 매트리스는 우리 부부에게 역부족임을 배웠기 때문이다. 킹 다음에 라지킹이 있음을 새롭게 발견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로지 매트리스 너비만 문제일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시 붙어 잘 수 있을지, 되돌아가고 싶긴 한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라지킹 매트리스 유경험자는 매트리스를 감싸는 매트를 구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실패하면 기회비용이 상당했기에 신중을 기하기로 했다. 매트리스 부피와 무게에 더해 정서적 부담까지 지고 싶지 않았다.


"때와 상황에 따라 붙이기도 떼기도 가능한 형태면 어떨까요?"


직접 침대 프레임을 짜는 편이 쉬워 보였다. 재질도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었다. 편백으로 만든 정사각형 프레임 두 개를 이어 붙여 직사각형 침대를 만들었다. 슈퍼싱글 크기였다. 첫 번째 침대 옆으로 두 번째 침대를 이어 붙여 완성했다. 아직 실험 단계이니만큼 토퍼를 올려 한동안 생활해 보기로 했다. 각자 본인이 원하는 두께 이불을 덮고 누웠다. 토퍼는 매트리스보다 얇은 두께여서인지 편백 냄새가 은은하게 올라왔다. 1인 1침대 1이불이지만 함께였고 붙어 있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은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안방을 가득 채운 편백 냄새를 다정하게 공유하며 우리는 손을 잡았고 잠이 들기 직전 편안한 자세로 고쳐 잠들곤 했다.



밤이 되면 아쿠아맨이 되는 그대를 위하여


신혼 초부터 그의 침대는 촉촉함이 남달랐다. 남편은 땀을 흘리는 편이고, 나는 정반대다. 여름철이면 장롱에서 구멍 송송 뚫린 쿨매트를 꺼내 남편 침대 자리 쪽에만 반으로 포개어 올렸다. 답답함이 확실히 줄어들었다는데 땀을 흘리는 양은 그대로였다. 몇 해가 지나도록 봐도 신기해 그에게 '아쿠아맨'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습기와 냄새뿐만 아니라 각질 문제도 있었다. 가을 겨울철엔 싸락눈이 휘날리는 듯 이불 속 각질 전쟁이 반복되었다. 테이프 청소기는 늘 침대 곁에 맴돌았다. 아침저녁으로 '돌돌돌' 청소기를 돌려도 그때뿐이었다. 한 침대 한 이불에서 서로의 각질을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침대와 침구까지 분리하니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장 먼저 위생이 강화되었다. 나는 하얀 가루에서 독립했고, 그는 원하는 주기로 이불 빨래를 할 수 있어 만족도도 함께 상승했다. 개인 맞춤형 수면온도 설정도 가능해졌다. 더위를 많이 타는 그는 미리 쿨매트를 꺼내 반으로 접지 않고 온전히 펼쳐 쓸 수 있고,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온열매트를 원하는 온도와 시간을 맞출 수 있게 되었다.



1인 1침대는 부부 사이에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1인 1침대를 고민할 무렵, 침대 사이 거리만큼 부부 사이가 소원해질지도 모른다며 망설였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야말로 완벽한 기우였다. 위생, 온도 외에 수면 시간도 자유로워졌다. 특히 이른 아침은 누구나 예민해지기 쉬운 시간이다. 그러나 누가 먼저 일어나더라도 심적 부담이 적다. 소리만 제외하면 크게 조심할 것이 없다. 신체적 접속이 없으므로 상대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방에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수면 시간과 깊이까지 존중해 줄 수 있다니 부부 사이가 얼마나 로맨틱한가!


1인 1침대도 벌써 3년 차다. 최근에는 중앙 벽면 전기 코드를 이용하려고 침대 사이를 띄기로 변경했다. 물리적으로 분리되었지만, 둘 사이는 손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깝다. 1인 1침대는 1인 1침실과는 다르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공기를 마시고 냄새를 맡으며 숨소리에 귀 기울인다. 편백 내음은 약해졌지만, 상대를 향한 존중과 챙김은 강해졌다. 콧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을 땐 건너오기도 하며 말이다.


저녁 산책 중에 남편에게 1인 1침대 만족도를 재차 확인했다.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며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래요?' 라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1인 1침실을 말하는 것인지 물은 뒤, 건넛방에서는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텐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답변을 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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