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개천에서 이무기?
Remember 에서 bangboo라는 닉네임을 통해 라운지에 기고했던 글을 퇴고를 거쳐 칼럼으로 업로드합니다. 동일인(아또)이 작성한 글입니다.
고등학생 때는 정말 공부 안 했습니다... 모두들 원하는 "꿈"과 같은 대학교를 위해 달려 나가는 시기였지만, 필자는 삶에 대한 고민을 끊임없이 생각했습니다. 위법적인 일탈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다른 이가 가르쳐주는 방향으로의 공부는 원치 않아. 수업은 듣지 않고 나날이 "나의 꿈, 나의 가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저공비행 청소년이었습니다.
고등학교에서 대입으로 이어지는 "수시" 전형의 표본 점수가 되는 내신(학교 내 시험)은 교과서나 학습지만 읽고 시험 치는 게 전부였습니다. 열심히 가르치시는 선생님께 예의라 생각해서 그렇게만 시험 쳤고, 어딜 가고자 하는 야망은 없었습니다. 그냥 좋아하는 걸 찾아 흘러 살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제가 그토록 바라고 사랑하던 "스포츠"를 향한 과를 진학하였으나 지속되는 코로나 19로 휴학하고, 다시 저공비행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저공비행 청소년이던 제가 꿈을 찾고자 하던 경험과, 방향성에 대한 생각은 또 하나의 칼럼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대학교를 통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지나, 코로나 19를 겪고
사회는 구직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청년들을 손가락질하고 있습니다. 자라면서 들은 것 들은 혹은 고등학생 때 들은 것 들은, 대학에 가면 마치 이무기가 보주를 입에 무는 과정을 아무런 설명 없이 당연한 과정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개천에서 이무기가 용이 나듯 보주를 물고 하늘로 승천하여, 취업 후 승승장구하는 이야기는 우리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구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업이란 승천을 이무기가 개천에서 아무런 헤엄치지 않고. 대학이란 강에 뛰어들면 모든 이무기가 용이 되는 것처럼 표현하게 되면 근본적으로 어폐가 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이무기, 즉 원래 이무기로 태어난 사람이 용이 되지 못한다고 해서 사회, 칼럼, 신문, 혹은 가족, 친척조차 손가락질을 하게 만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울에는 올챙이가 살고, 개천에는 미꾸라지가 살고, 강물에는 베스가 살고, 바다에는 고래도 살고 별거 다 살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사회 기조가 대학을 가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말해주고, 대학에서 방황하는 청년들에게는 “학점이라도 지켜라 “라는 결국 고등학생 때와 같은 "공부"라는 윤회를 주어주고서는 졸업하고 나선 "자격증 공부"라는 윤회를 주어줍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공부라는 윤회를 통해서 지식을 얻고, 경험을 얻습니다. 시대는 시시각각 변화하기 때문에 음식 하나를 주문하기 위해서도 키오스크 조작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찌하여 보면 우리는 살아가기 위해 삶의 대부분을 새로움을 배우는 윤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지에서 벗어난 윤회에 대하여 우울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문장이 필자에게 가장 크게 와닿습니다. 우리는 그저 덕을 쌓고 즐겁게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가면 됩니다. 평생의 배움에 윤회라고 대입해서 우울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우울한 사회, 원인이 뭘까 궁금했습니다. 사회를 성장하는 원동력이 그쳤고, 취업시장은 정체는 것에 대해 꾸준히 감상하고 생각해 왔습니다. 더 길게 고찰하고, 관찰할 수 있지만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꿈"에 대한 경로를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경유지를 강요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라고 조심스래 추측해 봅니다. 자신이 취업하지 못한다고 해서, 원초적인 꿈을 모른다고 해서 좌절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스스로의 꿈이 무엇인지, 가치가 무엇인지 궁금하시다면, 두려워 마시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써보고, 그려보세요.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의 그레고르처럼 자신이 곤충의 모습일 거라고 두려워하지 마세요. 두려워하는 것은 시각적인 감각의 모습일 뿐, 자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거울이 비추는 것은 스스로가 상상하는 모습일 수도 있으며. 원초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꿈꾸는 생물로 태어났는지 비춰줄 수도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고 나아가는 원동력을 가지시고 사회 전체가 서로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바람으로 2025년도의 여름 초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