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어떤 날은 살아가고, 또 어떤 날은 살아낸다. 살아간다는 건 어쩐지 내가 원하는 방향을 걷는 느낌이다. ‘가다’라는 움직임의 말 자체가 깊게 배어있어서다.
반면, 살아낸다는 것은 어쩐지 짠한 느낌이다.
‘내다’가 동사에 연결돼 어미가 되면, ‘앞말이 뜻하는 동작을 스스로의 힘으로 능히 끝내어 이룸’이란 뜻이 된다. 짠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이룸’ 안에서 인내와 버티기의 짠내가 진하게 풍겨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이 잘 풀릴 때는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고, 그렇지 않을 땐 살아낸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어느 것이 더 나은 삶인지를 나는 알지 못하고, 알더라도 그 둘 중 하나만을 고르고 싶진 않다.
마냥 잘 나가는 것도, 마냥 힘겨운 것도 끝이 있기 마련이고, 그 끝에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라 또 다른 무언가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계속 일어날 거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둘 중 어느 때 글이 더 잘 써지냐고 묻는다면 나는 지체 없이 ‘살아낼 때’라고 답할 것이다. 살아가는 게 아니라 살아내야 할 때 마음은 더 요동하기 때문이다. 요동한 마음은 많은 걸 꺼내놓는다. 나도 몰랐던 것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데, 그것들로 인해 나는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며 때로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한다.
아마도 직장인에게는 살아가기보단 살아내야 할 때가 더 많을 것이다.
고만고만한 월급을 두고 사투를 벌이는 삶은 말 그대로 출퇴양난(출근은 하기 싫고 퇴사는 못하겠고……)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이 곱게 보일 리가 없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더 많은 곳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전쟁과 같다.
간혹 직장인인데 어떻게 그렇게 글을 꾸준히 써내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오히려 직장인이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다고 말한다.
직장인이라서 꺼내놓을 게 참 많은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며 요동한 마음의 결과다. 이쯤 되면, 지면을 채우는 행위가 글을 쓰는 것인지 마음속의 것을 꺼내놓는 것인지 나도 헷갈린다.
그러다 어느 날, 가사 마디마디가 기어코 내 마음을 후벼 파는 듯한 노래를 들었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해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
멀리 보고 소리를 질러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 뮤지컬 〈서편제〉 OST, ‘살다 보면’
그 노래를 들었을 때 내 마음은 롤러코스터 레일 위에서 360도를 막 돌고 있을 때였다.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던 그때. 직장에서 일이 잘 풀리지 않고, 정체성의 혼란까지 왔던 그때. 그 노래 가사와 멜로디가 내 마음에 와닿은 것이다. 신기하게도 나에게 그 가사는 곧바로 ‘글’과 연결이 됐다.
그저 쓰다 보면 쓰여진다.
그 말 무슨 뜻인진 몰라도
기분이 좋아지는 주문 같아.
너도 써봐 눈을 감고 중얼거려.
그저 쓰다 보면 쓰여진다.
글을 쓰며 소리를 질러봐.
아픈 내 마음 멀리 날아가네.
그저 살다 보면 쓰여진다.
그저 쓰다 보면 살아진다.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라는 말이, 내게는 ‘그저 쓰다 보면 살아진다’란 말로 들려 들려온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울컥했다. 그리고 울컥한 그 마음은 내게 어서 글을 쓰라고 재촉했다. 울컥한 마음을 부여잡자 글이 쏟아져 나왔다. 글의 질이나 수준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마음을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그리고 글을 쓰면 써낼수록 마음이 정화됐다는 것이다.
눈을 감고 중얼거리고, 마음 저 깊은 곳으로 소리를 지르고. 내가 할 수 있는 발악을 글쓰기의 힘을 빌려 해냈다. 나는 살아가거나 살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둘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게 너무나도 힘들었는데, 글쓰기는 또 다른 형태의 삶을 내게 선물해준 것이다. 살아가야 하나, 살아내야 하나 고민이 클 때 나는 글쓰기의 힘을 빌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나라는 생각이 들 때, 누구라도 글쓰기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멋지게 살아가고, 살아내고, 살아지기 위해서 말이다. 또 하나, 살아지는 존재는 사라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