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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Jun 18. 2023

엔트로피 법칙에서 발견한 생산자의 법칙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무기력한 날들의 반복이었다. 


직장인으로서의 하루를 마치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피로감은 육체를 넘어 영혼까지 잠식해가고 있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무기력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야 한다고 본능적인 생존 기제가 소리쳤다. 그러나 겨우 몸을 움직여하는 거라고는 짧은 영상을 보는 일이었다. 잠깐 보는 건 몸을 일으키는 데 도움이 될 줄 알았건만, 한두 시간이 무섭게 지나갔다. 그러다 잠들고는 다음날 직장에서 허덕이고,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를 다그치며 스마트폰과 함께 잠들기를 반복했다. 


무기력은 무기력을 낳는다. 

그것도 복리로. 계속 넘어지다 보면 그저 주저앉고 싶어 진다. 마냥 주저앉아 있으면 일어나는 법을 잊는다. 심지어 왜 일어나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르게 된다. 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고리는 누가 끊어줄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에게 묻고 또 물었다. 


‘나 왜 이렇게 소비적으로 살고 있지?’ 


이러한 질문은 꽤 의미가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건넨 적이 별로 없었다. 질문이 없다는 건 무언가를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궁금해하지 않으면 내게 일어 난 일이나 문제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그저 세상이 내어놓는 기준과 답에 가까워지려 허덕일 뿐이다. 그 답은 내 것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니, 답을 찾으려 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생산해 낼 수 있을까?’ 


효과가 바로 나타났다. 

질문과 함께 ‘나’라는 자아가 반응한 것이다. 질문에 대한 나만의 답을 글로 적어 내려갔다. 더 많은 질문을 던져보자는 욕망과 더 나은 답을 찾아보자는 오기가 나를 쓰게 만들었다. 나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봇물 터지듯 마음으로부터 세차게 흘러나왔다. 글을 쓰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답은 질문하는 자의 것이라는 것을. 


무기력은 게으름을 동반한다.

무기력은 게으름을 동반한다. 

나를 돌아보는 그 쉬운 질문 하나 던지지 못할 정도로 나는 게을렀다. 게으름에도 종류가 있는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선순환의 게으름’과 ‘악순환의 게으름’. 


전자는 휴식이나 창의성이 필요할 때 유효하다. 

그만큼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야만 느낄 수 있다. 치열한 일상에서 속도를 잠시 줄였을 때 떠오르는 영감은 삶에 큰 변곡점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더 열심히 그리고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문제는 후자다. 

게으름이 악순환되면 무기력과 게으름 또한 복리로 늘어난다. 육체적 게으름은 정신적 게으름으로 확산되고, 정신적 게으름은 다시 몸을 망가뜨린다. 망가진 몸은 모든 의욕을 없애버리고, 의욕이 없어진 존재는 나 자신에게 관심조차 가지려 들지 않는다. 

그저 좀비처럼 하루하루를 살아낼 뿐이다. 잠들기 전에 들여다보는 스마트폰 속 짤막한 콘텐츠에 심취하여 스스로가 좀 비인지 사람인지도 묻지 않은 채 하루를 마감한다. 


나는 한때 게으름을 슬럼프로 착각하기도 했었다. 

그것은 게으름에 대한 합리화를 하기 위한 의도된 착각이었다. ‘이 정도면 열심히 사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오늘 일을 내일로 미뤘다. 


세상에서 가장 소모적인 단어는 ‘나중’이다. 

반면, 가장 생산적인 단어는 ‘지금’이다. 


‘나중’은 주저하게 만들고, ‘지금’은 실행하게 만든다. 


지금 해야 할 것을 내일로 미룸으로써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합리화가 말 그대로 합리적이 되려면 내 기분이 좋아야 한다. 행복함을 느끼거나 “그래 괜찮아.”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스스로를 경멸하고 증오하는 날들이 더 많았다.‘악순환의 게으름’이 무서운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악순환에 빠져드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며,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삶은 언제나 잿빛 안에 머 무르기 때문이다. 


무기력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해내는 생산자의 삶으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무기력과 게으름에서 벗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내가 계획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있고,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해 내며 살고 있다. 


더 중요한 건 ‘생산자’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무기력과 게으름이 몰려와도 더 이상 악순환에 빠 지지 않게 되었다. 

오히려 그것들을 선순환을 위한 에너지로 활용할 여유도 갖게 되었다. 덩치 큰 상대가 내게 달려올 때, 달려오는 그 속도와 무게를 활용하여 상대를 엎어뜨리거나 제압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색무취의 평범한 인간. 알람 소리에 눈을 떠 도살장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출근했던 직장 인.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무엇을 잘하는 지도 몰랐던 가 련한 존재는 그렇게 스스로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냈고, ‘생산자’라는 새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다. 


본업에서 오는 인정과 글쓰기를 통해 생산된 내 콘텐츠들은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누어보라며 내 등을 떠밀었 다. 

예전이라면 감히 생각조차 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 주제에? 내가 뭐라고. 직장에선 일로 헐떡거리고, 집에 돌아와 아무것도 하지 못하던 게으른 존재가 일과 글쓰기 그리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해낼 수 있을까? 


그렇다. 

지금은 모두 다 해내고 있다. 아니 그 이상을 해내고 있다. 기업 체, 관공서, 대학교, 방송에서 강연과 글 기고 그리고 협업 등의 섭외가 들어온다. 작가 외에 강연가라는 페르소나를 쓰게 되었다. 글쓰기 기반의 커뮤니티를 운영하며 다양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월급 외 경 제적 파이프 라인을 구축·확장해가고 있다. 이 외에도 가족의 구성원으로서 남편과 아빠라는 역할도 제대로 해내고 있다. 또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를 본업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통해 알아가며, 역량을 원하는 대로 발휘하고 있다. 직장인, 작가, 강연가 등은 내일을 꿈꾸지 못하던 날에 내가 바라고 원하던 것들이었다. 나의 바람을 이뤄낸 누군가의 SNS를 염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렸을 때 느끼던 질투와 부러움이었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바라던 것들은 이제 나의 것이 되었고, 그것을 해내고 있는 사람 역시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변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나는 어떻게 생산자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모든 비밀과 비법을 이 책에 풀어놓을 것이다. 열역학 제2법칙에서 찾아낸 게으름의 이유와 OGSM이라는 신박한 목표 셋팅법, 나를 방해하던 것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 해내는 힘을 기르기 위한 다섯 가지 요소. 내가 직접 깨닫고, 조금씩 변화시켜 온 내 관점에 대해 모두 이야기할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당신은 분명하고도 확실한 삶의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생산하는 맛을 알게 되고 그것에 빠져들 것이다. 


단, 나는 여러분의 변화가 급진적이지 않기를 바란다. 

변화는 점진적이어야 한다. 내 관점의 변화와 깨달음도 그랬다. 급진적 변화는 무너지기 쉽다. 반면, 점진적 변화는 당장은 지루해 보일지 몰라도 끝내는 철옹성과 같은 위엄을 지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초심을 잊지 않고 나와 함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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