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으로 갈라진 남과 여
하다 하다 이제는 휴대폰의 팬덤 전쟁이, '남자와 여자'의 갈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자는 한국산 휴대폰을 쓰는 사람을 비하하고, 남자는 미국산 휴대폰 쓰는 사람을 두고 허영과 사치로 가득하다고 말한다. 이를 빗대어 한국산 휴대폰을 쓰는 여자는 꼭 잡아야 한다는 말까지 생겼다.
우리 사회는 극도로 갈라지고 있다.
그것도 이분법에 따라서. 야당과 여당. 남자와 여자. 노인과 젊은이. 남과 북으로 갈린 트라우마 때문일까. 아니면, 전통적으로 집단생활에 억눌려왔던 집단으로부터의 염증에서 오는 해방을 위한 발버둥일까.
문제는, 갈라진 틈새가 더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고 이러한 갈등은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 큰 상처를 야기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성(性)'의 등장은 또 다른 갈등을 낳는다.
성 소수자를 혐오하거나, 성소수자 또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강압적인 모습을 보이며 서로를 향한 손가락질이 멈추질 않는 것이다.
여자도 군대를 가야 한다.
그럼 남자가 애를 낳던가.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꼴찌인데?
동성애는 자손 번식에 도움이 안 된다.
여성 전용 주차장이 왜 필요하지? 이게 남녀평등인가?
성폭력 피해자 대부분은 여성인데?
이러한 논쟁은 절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사실이다. 점점 더 삭막해지는 시대에, 너보다는 내가 더 힘들기 때문이다.
'성(性)' 역할에도 영향을 미치는
'손실 회피 편향'
사람은 이득을 보는 것보다, 손실을 더 두려워한다.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와 대니얼 카너먼은 '손실 회피(Loss Aversion)'이라는 개념을 정립하고 증명해 냈다. 얻은 것의 가치보다 잃어버린 것의 가치를 더 크게 평가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만 원을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1만 원을 얻었을 때 느끼는 행복감보다 크다는 것으로, 이 차이는 2배 이상이 난다는 걸 규명했다.
손실 회피는 사람으로 무언가를 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가 된다.
그러니까, 손해를 보지 않으려 더욱더 적극적으로 변한다는 말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타인보다는 자신을 더 지키려는 이기심이 발동된다.
여성 인권의 변화와 급진적인 여성 운동은 그동안의 억압을 손실로 규정한다.
그러하기에 더욱더 그 세기는 강해지는 모양새다. 이로 인해 남성 또한 손실에 대한 염려를 한다. 군 가산점 폐지는 여성단체의 강력한 항의로 이루어졌고, 남성은 갖고 있던 걸 잃게 되었다. 서로의 손실을 내 세우다 보면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화해의 접점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더 손해고, 내가 더 아프다는 말은 서로에게 들리지 않는 외침이다. 그만큼 스스로를 아프게만 할 뿐이다.
여성을 위한 정책이.
남성을 위한 정책이.
성소수자를 위한 정책이.
사회적으로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눈엣 가시가 된다. 이로 인해 계속되는 갈등을, 우리는 정말로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구별'과 '차별'을 '구분'하는 지혜
그 어느 때보다 '평등', '형평', '공정'과 '공평'이 강조되는 시대다.
각각 비슷한 말 같지만 그 의미는 상대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다를 수 있다.
잠깐, 각각의 사전적 뜻은 아래와 같다.
평등: 권리나 의무, 신분 따위가 차별이 없이 고르고 한결같음
형평: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이 맞음
공정: 공평하고 올바름
공평: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고름
평소에 많이 들어본 말이지만, 그 의미가 같은듯하면서도 다르고, 다른듯하면서도 같아 좀 혼란스럽지 않은가.
그래도 굳이 그 관계들을 살펴보자면 아래 '공평'에서부터 위 '평등'으로 그 의미가 수렴되는 것이라 생각된다. '공평'은 뭔가 산술적인 느낌이 강하고, 각각의 상황을 고려하기보단 그저 똑같이 무엇을 나눈다는 느낌이다. 그에 반해 '공정'은 누군가의 판단이 개입된 윤리 또는 사상이 녹아 있는 것 같고, '출발선에서의 평등'과 같은 사회적 개념으로도 쓰이고. '형평'은 이러한 개념을 좀 더 보편적이고 일반화하여 더 넓게 사용되는 개념이면서, '상황에 맞도록 규칙을 유연하게 적용하는 것'. 영국의 관습법에서 정형화된 사건이 아닌 경우에, 왕에게 자비와 양심을 호소할 때 쓰이는 개념이기도 하다. '평등'은 아래 세 가지를 포괄하는 개념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수직적으로 보지 말고, 유사성으로 본다면 '평등'과 '공평'을 묶고, '형평'과 '공정'을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개념을 잘 나타낸 그림은 다음과 같다.
왼쪽은 '평등'과 '공평'의 개념. 우측은 '형평'과 '공정'의 것이고. 무조건 나누어 줄 것이냐, 상황을 고려하여 나누어 줄 것이냐의 차이. 하지만 이러한 판단은 쉽지 않다. 왼쪽은 가장 키가 작은 사람이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오른쪽은 키가 가장 큰 사람이 불만을 가질 수 있으니까.
누군가의 '불만'이 제기되는 순간, '정의'란 절대적 개념은 상대적 개념이 되면서 그 가치를 잃고는 연기와 같이 사라진다.
이를 '성(性)'의 갈등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성(性)' 평등만큼 어려운 말은 또 있을까. 고르고 한결같음을 적용하기엔, 남자와 여자 그리고 또 다른 성은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공평과 공정을 머리 싸매고 구현한다 한들, 누군가는 분명 손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할 테니까.
이러한 문제는 서로를 '구별'과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에 온다고 나는 본다.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 또 다른 성은, 생물학적 특성을 거부하거나 초월한다. 이러한 차이를 구별하는 것 자체를 차별이라고 생각하면 평등은 출발 선에 설 수가 없다. 남자가 아이를 낳을 수 없고, 신체적인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구별하는 것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성 소수자를 배려한 구별도 차별에서 벗어나 고려되어야 한다.
굳이 이러한 사회 갈등의 원흉을 들라면, 나는 '자본주의'를 들고 싶다.
돈이면 다 되는 세상. 돈의 가치가 다른 무엇의 가치를 압도하는 세상. 그러다 보니 생존 방식이 달라지고, 성 역할이 바뀌게 되면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혼란한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남녀 갈등이 더 커지고, 출산율이 세계 꼴찌가 되는 이유를 파고파고 파다 보면 결국 우리가 마주하는 건 '자본주의'의 모순이다. 겉으로는 잘 살아가는 것 같지만, 온갖 문제를 다 떠안아야 한다.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미국이나 유럽이 이미 이러한 과정과 결과를 증명하고 있음을 우리는 진지하게 주시해야 한다.
손실을 보고 있다는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구별'과 '차별'을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히야 할 때다. 다름을 틀림으로 규정하지 말고, 다르기에 서로 보완하고 도울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상대에게 배려할 수 있는 것이 나의 손해가 아니며, 궁극적으로 모두를 위한 것이란 믿음과 확신을 다 같이 고민해야 한다. 어느 한 '성'에 대한 특혜를 주는 정책이 시행되려면, 두루두루 의견을 듣고 서로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생존하기 위해서, 다 함께 잘 살기 위해서는 대화를 통해 '성(性)'역할을 분담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상(理想)적이라 이를 이상(異常)하게 여기는 사람이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네 인류의 본질적이고 공통적인 지향점은 '이상(理想)'에서 찾아왔음을 유념해야 한다.
'성(性)'들의 전쟁은, 결국 우리가 생존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아웅다웅임을 잊지 않으면서.
[종합 정보]
[신간 안내] '무질서한 삶의 추세를 바꾸는, 생산자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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