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을 다해 시간에 대항하라!"
톨스토이가 말했어.
이만큼 시간에 대해 강렬한 명언이 또 있을까. 시간은 속절없단다. 그러니 우리는 열렬하게 대항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시간은 우리를 그저 짓밟고 지나갈 수도 있거든.
우리가 시간에 속절없이 당하는 경우는 대개, 시간이 날 때 무엇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을 때인 것 같아.
바쁜 게 지나면, 좀 더 안정이 되면 해야지 하는 것들은 결코 실행되지 않는다는 걸 살아오면서 많이 깨달았어.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책하고 꾸짖으면서 일어나는 자신과의 갈등은 삶의 중심을 흩트릴 정도란다. 그러니 우리는 시간 날 때가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무언가를 하고, 시간에 대항하는 삶을 살아가야 해.
시간을 내어서라도 해야 하는 것들
여기, 아빠의 삶을 돌아볼 때 뼈저리게 느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해.
아빠도 이것들을 항상, 모든 것을 할 순 없단다. 하지만, 잊지 않으려 노력해. 그러다 보면 결국 시간을 내어서 시간에 대항하는 자신을 발견하거든. 이길 수 없는 상대지만, 그저 가만히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으니.
첫째, 독서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들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들과,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상상력은 시간을 초월해. 소크라테스도 "남의 책을 많이 읽어라. 남이 고생하여 얻은 지식을 아주 쉽게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고, 그것으로 자기 발전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거든.
그러니 독서는 시간에 대항하는 아주 좋은 방법이란다.
다행히, 책과 친한 너희라 조금은 안심이 되는구나. 하지만, 자만해서는 안돼. 커갈수록, 나이가 들수록. 어른이 되면서 책과는 멀어지는 삶을 살게 되니까. 남는 시간에 책을 읽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단다. 절대 그런 시간은 오지 않아. 통렬하게 '시간을 내어서' 책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져야 해. 남는 시간에, 책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은 절대 없다. 통학, 통근하는 시간이든 잠자리에 들기 바로 전이든. 나른한 주말 오후든 간에 우리가 먼저 책으로 다가가야 해. 시간이 나서가 아니라, 시간을 내어서 독서를 한다면 우리는 많은 선물을 책으로부터 받게 될 거야.
둘째, 운동
주말이면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발산하는 너희들.
잘 먹고, 잘 자고. 잘 뛰는 너희들을 보면 (같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아빠가 힘들긴 하지만...) 정말 뿌듯하단다. 땀범벅이 된 너희들이 얼마나 보기 좋은지. 하지만 운동도 독서와 마찬가지로, 너희가 커갈수록 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가 기대 이상으로 줄어들 거야.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고. 말 그대로 시간을 내어야 한단다.
그리고 또 하나.
어른들의 운동은 생존을 위한 거야. 어렸을 땐 어른들의 운동이 시간, 마음, 금전의 여유에서 온 것처럼 보였지만 하루가 다르게 달리는 체력과 운동하지 않으면 이대로 생을 마감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 때문이란 걸 아빠도 깨닫게 되었어. 땀을 흘리고, 걷고, 움직이고, 사지를 펴주어야 해. 아빠도 수십 년 간 운동할 시간이 없다고 변명을 해온 게 사실이야. 하지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퇴근길을 걸어오거나, 출장지에서도 조깅을 하는 등 시간을 만들어 운동을 하고 있어. 그것을 통해 스트레스가 감소되고, 많은 영감이 떠오르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생각지 못한 선물이기도 하고.
셋째, 사색(思索)
요즘은 사색할 시간이 없는 시대야.
'팝콘브레인(Popcorn Brain)'이라는 말이 이러한 시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단다. 팝콘브레인은 첨단 디지털 기기에 익숙해 뇌가 현실에 무감각 또는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말해. 즉각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디지털기기, 콘텐츠에 몰두하게 되면서 생각 중추를 담당하는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을 심리학자들이 MRI 영상 분석을 통해 증명해 냈거든.
이렇게 되면, 자아를 잃을 수 있단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바람이 이리로 불면 이리로 저리로 불면 저리로 중심 없이 날아다니는 삶을 살게 돼.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아빠는 이 섬뜩한(?) 명언을 좋아해.
마치, 어느 미래에 팝콘브레인이 나타날 거라고 예견한, 미리 준비한 경고 같아. 너튜브를 보면 그와 관계된 콘텐츠들이 끊임없이 연결돼. 어떤 땐 좀 무서워. 생각의 폭이 좁아지는 줄도 모르고 몰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깜짝깜짝 놀라곤 해.
시간을 내어서 '생각'을 해야 한단다.
아주 잠시라도. 하루에 5분이라도. 디지털 기기는 잠시 내려놓고. 눈을 감거나, 먼 곳을 보거나. 불안한 마음으로 SNS 댓글을, 이메일을 확인하지 말고. 내가 있는 곳. '지금'에 집중하고,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느껴야 해. 살아 있음을, 나 여기 있음을. 그럴 때 우리는 과거와 미래를 가진 지금 이 순간의 온전한 존재가 될 수 있어. 인문학에서 고전을 많이 접해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사색이 담겨 있기 때문이란다. 철저히 아날로그 시대였던 그때, 사람들은 내면에 집중을 많이 했었으니까. 우리보다 더 깊이, 더 많이.
마지막으로 '생산' 또는 '생산을 위한 소비'
시간을 어떻게든 내어서 해야 하는 것 중엔 '생산'도 있어.
우리는 대개, 태어나자마자 자연스럽게 '소비'를 하게 돼. 무언가를 먹고, 무언가를 보고. 또 무언가를 배우고. 그러한 모든 것들은 누군가 생산해 놓은 '생산물'이란다. 하지만 언젠가부턴 생산을 해내야 해. 소비만 하며 살게 되면 '내 삶'이란 자부심이 옅어져. 살다가 방향을 잃을 수도 있지. 무언가를 생산해 내는 사람들은 '자기 효능감'을 키워갈 수 있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거든.
그래서 아빠는 글을 쓴단다.
수십 년 동안 소비적으로 살다가, 무언가를 생산해 내고 싶어서. 그래서 나의 경험과 배움, 깨달음이 녹아져 있는 그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글쓰기가 누구에게나 정답은 아닐 거야. 그러니 나는 무엇을 생산해 낼까,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해. 그것이 정해졌다면 시간을 내어서 실천해야 하고. 소비를 하더라도 생산을 위한 소비를 하는 것이 좋아. 독서, 음악/ 영화 감상 등이 좋은 예겠지. 소비를 통해 생산을 위한 영감을 얻을 수 있으니.
이 외에도 시간을 내어서 해야 하는 것들이 참으로 많아.
사랑을 표현하는 것, 감사한 마음을 전하는 것 등. 시간이 모자랄 수도 있어. 시간을 완벽하게 보내는 사람은 없을 거거든. 하지만 최대한 시간에 '대항'할 수는 있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축복일 수 있을 거야.
시간을 내어서 살자.
시간 나는 만큼 살지 말고.
시간을 내어 살수록 부자가 될 가능성은 더 커진단다!
이것만큼은 아빠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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