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부동한 PF사태로 상당히 시끄러운 상황이다.
먼저 PF는 'Project Financing'이란 뜻이다. 일반적인 대출은 상환 가능성과 이자 지급 능력을 바탕으로 하지만, PF는 향후 지어질 건물(담보물)과 분양/ 임대를 통한 현금흐름(상환능력)을 조건으로 한다.
최근 시공순위 16위에 드는 T건설이 이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어 경영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다.
사람이 허리가 불편하면 거동을 제대로 못하듯, '중견'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건설사의 위기는 비단 한 회사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계속되는 고금리 기조와 원자재 가격 인상으로 건설 경기가 침체되고 있는 상황으로 2023년에만 528개의 중소 건설사들이 이미 문을 닫기도 했다.
T건설의 위기는 빚으로 부동산 개발을 무리하게 추진한 데에서 기인한다.
내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건물을 세우고, 분양을 주어 빌린 돈 이상으로 버는 것이 이 업계의 투자 기법이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건물이나 집이 안 팔리면 빌린 돈의 이자를 못 내게 된다. T건설의 경우는 이미 이 회사의 영업이익(977억 원)보다 이자비용(1,271억 원)이 더 크다. PF대출 잔액은 무려 32조가 넘는다. 부채가 자기 자본의 5배라... 상상이 되는지 모르겠다. T건설은 돈을 빌려준 채권단을 설득하여 워크아웃(재무구조 개선작업을 위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 활동)에 들어갔다.
위에서 언급했듯 부동산 PF는 빚으로 굴러가는 구조다.
부동산 개발은 크게 '시행사', '건설사', '금융사'로 구분된다. 시행사는 부동산 개발사업의 전반적인 업무를 총괄한다. 사업계획부터 인허가 취득, 시공사 선정, 분양 및 입주까지. 건설사는 건물공사를 수행하며, 금융사는 자본과 자산을 운용한다. 타 선진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구조이지만, 문제는 자기 자본을 거의 안 들이고 빚으로 대부분을 굴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국은 자기 자본과 투자금이 토지비용의 대부분을 커버해야 하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 하여, 지금과 같이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거나 공사가 지연/ 중단되는 경우 이자의 부담은 한국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성공하면 대박 실패하면 쪽박.
부동산 불패의 정서를 가진 우리나라는 이처럼 시행사의 장벽이 낮기 때문에 우후죽순으로 시행사가 생긴 것이고, 그만큼 대출이 많기에 시한폭탄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위기를 노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당연히 처음이 아니다. 이미 1997년 IMF때엔 그동안의 급성장에 얻은 많은 걸 토해냈고, 절치부심하여 그 위기를 넘겼지만 2008년 금융위기엔 안일해진 리스크 관리로 또다시 21개의 건설사가 부도를 맞았다. 이어 우리는 2003년과 2004년, 지금의 위기를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
잠시 2008년의 사태로 돌아가볼까.
건설사는 왜 망했을까? 시행사의 지급 보증을 선 건설사. 무너진 부동산 경기. 값을 수 없는 원금과 이자. 그 돈을 빌려 준 저축은행. 저축은행에 돈을 맡긴 사람들. 결국, 서민의 주머니에서 모아 모아 비축한 돈이 사라지는 구조로 이 빚잔치는 언제나 막을 내리곤 한다. 이것이 2011년 일어난 저축은행사태이며, 이는 무분별한 PF 대출로 인한 것이었다.
아빠가 생각할 때, 안타까운 건 두 가지 지점이다.
첫째, IMF와 금융위기를 겪고도 왜 이런 위기가 또 일어 난 걸까?
둘째, 왜 사고는 기업이 치고 그 손실과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의 것이 되는 걸까?
이것이 자본주의다.
자본주의는 돈을 찍어내며 굴러간다. 대출에 이자를 엎고, 이자로 얻은 수익을 다시 대출로 뿌리고. 이러한 구조를 활용할 것인가, 악용할 것인가. 그 둘을 정의하는 건 결과다. 피해본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활용'이 될 것이고, 누구라도 피해를 봤다면 '악용'임에 틀림없다. T건설사는 표면적으론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사업을 하고 있지만, 속내를 보면 리턴은 혼자 먹고 리스크는 남한테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사업이 잘 될 때는 이야기가 다르겠다만. T건설사 살리겠다고 세금을 투입하면 손해는 국민의 몫, 무너지게 놔둔다면 연쇄 부도로 이어져 경기경색이 되어 이 또한 국민의 몫. 대체 국민은 무엇을 잘못한 걸까?
이러한 사태 속에서 걱정만을 품고 있는 것보단, 이로 인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우선 생소했던 PF대출이란 것에 우리는 알게 되었고, 사업이 잘 안 될 때 어떻게 우리 일반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오는지를 학습했다.
너희도 성인이 되어 집을 사야 할 땐 대출을 받아야 할 것이다.
말했듯, 자본주의는 대출과 이자가 반복되어야 지탱이 되는 구조다. 그러니 이 구조를 어떻게 잘 활용해야 할지를 미리 염두에 두는 게 좋다. T건설사처럼 무리하게 대출을 끌어다 쓸 것인가. 아니면 대출은 '빚'이라 규정하고 무조건 내 돈으로만 집을 사거나 사업을 할 것인가. 아마도 답은 그 어느 지점일 것이다.
무리하지는 않되, '빚'을 혐오하지 말고 잘 활용하는 방법으로.
모든 것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
이 둘을 잘 구분하여 사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금융 지혜다.
빚을 우습게 보지 말되, 빚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거둬라.
아빠도 이걸 깨닫고 결혼하기 전에 이미 내 집 마련을 했다. 가난과 빚이라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너희들과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책임감을 갖고 두려움은 거둔 결과다. 두려움을 거두는 가장 좋은 방법은 대상에 대해 잘 아는 것이다.
그러니 공부해라.
국영수만이 세상의 모든 공부는 아니다.
돈에, 대출에, 이자에, 자본주의에 눈 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