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중년과 에세이>
내 피부가 망가진 건 순전히 군대생활 탓이다.
나름 하얗고 뽀얀(?) 피부가 그나마 내세울만한 외모 요건 중 하나였는데, 빨래 비누로도 지워지지 않는 위장 크림이 피부색과 결을 바꿔버린 것이다. 수많은 행군과 훈련, 뜨거운 태양과 씻지도 못하고 산속에서 매복하던 순간들. 피부가 좋아질 리가. 제대 후, 나는 피부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혹시 외국인의 피가 섞인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어릴 적 내 머리카락 색은 갈색이었다.
햇빛에 비취면 더 그랬다. 물론, 중고등학생이 되며 이 색은 검은색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처음 흰머리가 생긴 건 역시나 직장에서였다. 그것도 첫 주재생활을 했던 네덜란드에서. 주재원의 삶은 말 그대로 혹독하다. 조금의 권한과, 무한의 책임을 진다. 내 맘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으며, 된다고 한들 그 결과가 내가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느냔 또 다른 이야기다. 그렇게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한 흰머리는 이제, 두 번째 주재를 하는 지금 더 많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 출장을 가면, '왜 이렇게 흰머리가 많아졌어요?'라는 말이 첫인사가 될 정도로.
망가진 피부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돈을 들여 피부를 갈아엎으려는 시도는 생각지도 않는다. 어차피 노화할 건데... 그러나 상대적으로 흰머리는 다루기 쉽다. 스스로 염색할 수 있지도 않은가. 그러나 나는 흰머리를 감추지 않기로 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이렇게 흰머리가 많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고생하는 거 티 내는 거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쩐지 나이에 걸맞게 바뀌는 색이 싫지 않아서다. 아침의 태양은 눈부시고, 오후의 태양은 강렬하며, 저녁의 노을은 아름답고 부드럽지 않은가. 굳이 빗대어 말하자면, 흰머리는 저녁노을을 닮았다. 태양의 힘이 덜하지만 그러함으로 만들어내는 색과 분위기는 마음의 안도를 가져다준다.
흰머리는 나에게 그렇다.
자연스럽게 물들어 가는 과정. 흰머리를 보며 나는 깨닫는다. 더 이상 어리지 않으며, 밤에 이를 인생의 촉박함을. 유한하기에 더 의미 있게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나는 흰머리를 거부하지 않는다.
거부해야 할 건, 흰머리를 거부하는 마음이 아닐까.
어쩌면 흰머리는 나에게 주어지는 훈장일지도 모른다.
열심히 그리고 잘 살아왔다고.
나이 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생사고락을 온전히 받아들이라고 말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