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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May 12. 2024

미워도 경적은 (짧게) 한 번만

<운전대로부터의 사색>

운전을 하다 보면 빌런을 만난다.

당최 이해할 수 없는 행태를 벌이는 사람들. 방향 지시등을 켜지 않고 급히 끼어드는 건 기본, 비상등을 켜고 도로 한가운데 정차를 하거나 심지어는 진출로를 놓쳐 후진하는 차까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는 큰 소리로 욕을 한다. 경적을 누르고 손을 떼지 않는다. 욕과 경적 소리가 겹쳐 분노는 더 치밀어 오른다.


그러다 깨달았다.

내가 뱉은 욕은 나에게 그대로 꽂히고, 경적 소리는 내 분노의 정도만 올려놓는다는 것을.


나이를 먹어가며 점점 깨닫는 건, 어차피 내 분노는 상대방의 차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과 그들이 나를 표적으로 삼고 그러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도로 위에서, 나는 내 주위 차들을 선택할 수 없다. 각자의 목적지를 가다가 우연히 마주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운전 방해를 받았을 때 나는 그것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곤 했다. 저 차가 나를 무시했다는 마음은 정말 흥미로운 분노의 일종인데, 저 차가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건 다름 아닌 내 것이다. 상대방 차는 나를 모른다. 앞서 말했듯, 저 차 또한 나를 선택하지 않았다. 오고 가는 길에, 살다 보면 어디에서든 똘아이를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도로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렇게 삶을 닮아 있다.



깨달음을 얻고 난 후, 나는 아무리 화나거나 상대 차가 미워도 경적은 한 번만 짧게 울린다.

욕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전달되지 않을 것이므로. 상대방에겐 들리지 않을 것이므로. 그것을 듣는 건 바로 나 자신이므로. 그러자 운전하는 데 분노할 일이 확연히 많이 줄어들었다. 


재밌는 건, 경적을 길게 울렸을 때 상대방은 자신의 미안함 보다는 기분 나쁨으로 응수하곤 했는데, 짧게 한 번 경적을 울리면 상대 차는 미안하다며 비상등으로 표현하는 일을 더 많이 경험했다.


다시, 아무리 미워도.

경적은 짧게 한 번만.


그리하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삶의 다른 면을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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