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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르담 Oct 18. 2016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의 가을과 낭만에 대하여

낯선 이름, 가을 그리고 낭만의 상관관계

계절은 만국의 공통어다.


추위와 더위를 아울러, 어느 한 계절을 특정할 때 우리는 그곳의 분위기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계절은 기온과 습도를 넘어 그 이상을 표현하는 우리 인식에 아로새겨진 그림과 같다. 네덜란드라면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암스테르담 외에 '위트레흐트'라면 낯선 느낌이 강하지만 그곳에서 느낀 '가을'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면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엔 그 분위기가 떠오를 것이다. 색이 바뀐 나무 잎사귀가 그렇고, 알싸한 듯 상쾌한 가을바람과 공기가 그럴 것이다. 햇살이 떠오르면 한 없이 청명한 하늘과 저 멀리, 높이 보이는 구름의 유유한 움직임이 떠오르면서. 위트레흐트의 가을도 마찬가지. 이름은 한 없이 낯설어도, 이곳의 가을은 한국의 그것과 다를 것이 없다. 친근하다. 그리고 상쾌하다.


색을 바꾸어 가는 나무들은 언제 어디서나 친숙하다
낙엽 또한 친숙한


위트레흐트는 네덜란드에게 중요한 도시다.


크기로 볼 때 네덜란드에서 4번째로 큰 이 도시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대학교를 품고 있다. 네덜란드 지리적으로 봐도 그 중심에 위치해 있어 동서남북의 요충지 역할을 해내고 있고, 문화 행사의 빈도도 암스테르담의 바로 뒤를 잇는다. 그 옛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의 물꼬를 튼 것도 1579년 위트레흐트 동맹에 기반한다. 이 점이 네덜란드에겐 가장 중요한 의미로 남아 있을 것이다.


번화한 거리 사이로 저 멀리 중심부에 위치한 성당이 보인다
위트레흐트 성당 초입
독특한 구조의 운하. 다른 네덜란드 도시와는 다른 모습


베니스에 가장 가까운, 그러나 베니스와 비교 불가인 이 곳.


물이 있고, 그 위에 집이나 다리라도 있을라치면 '어디 어디의 베니스'란 말이 나붙곤 한다. 이 말은 네덜란드에게 좀 억울한 말이다. 118개의 섬을 400개의 다리로 이은 물 위의 도시가 베니스라면, 바다를 메워 땅 자체를 만들고 홍수를 막기 위해 곳곳에 물길을 낸 운하의 향연이 바로 네덜란드다. 더더군다나 위트레흐트의 운하는 다른 네덜란드와 좀 다른 특색이 있다. 집으로 치면 지하에 위치한 곳들이 운하와 맞닿아 있고, 이곳이 분위기 좋은 카페나 식당으로 연결이 되어 있어 좀 더 '베니스스러운 곳'이라 평이 나있다. 팔이 안으로 굽어서 그런가, 베니스와 비슷하다고 하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된다. 좀 더 자세히 보면 물과 집이 어우러진 것을 그저 '베니스스럽다'라고 칭하는 것이 못내 맘에 들지 않는다. 네덜란드스럽고 독특하게 위트레흐트스러운 것을 그저 '베니스'에 빗대어 국한시키는 느낌이다.

베니스와는 다른 분위기. 아니, 그저 네덜란드, 위트레흐트 스러운 그것.
운하 아래쪽으로 이어진 식당과 카페.


Canal Bike 타고 운하 한 바퀴


아이들에게 무언가 다른 경험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힘들 것을 알았지만 Canal Bike를 선택했다. 각오는 단단했지만 역시나 만만치가 않았다. 1시간 30분이 넘도록 페달을 저어야 했다. 뒤따라 오던 배들은 오던 방향을 틀어 포기하고 다시 출발선으로 향했다. 오기가 생겼다. 아이들도 한 발 한 발 거들었다. 나 혼자 온몸이 땀범벅이었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힘이 났다. 와이프도 있는 힘을 다해 도왔다. 첫째 녀석과 둘째 녀석은 번갈아 가며 어깨를 주물렀다. 물론, 시원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녀석들의 모습에 웃음이 났고, 그 웃음의 힘이 다리로 전해졌다. 정말 땅을 디디고 싶다는 느낌이 한 열 번 정도 들 때쯤. 저기 출발선이 보였다. 우리 가족은 해냈다며 서로를 얼싸안았다. 가족 모두 극기 훈련을 경험하며 도착 지점에서 가족애를 단단히 하려 한다면, 꼭 이 Canal Bike를 추천한다. 단, 힘들어서 서로 싸울 수 있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위트레스트 중심부를 한 바퀴 도는 코스는 보기보다 만만치 않다!
곳곳의 다리 아래를 지나고 또 지나.
운하와 맞 닿은 지하 통로. 그리고 작고 작은 선착장.
고사리 손의 마사지로 다리에 힘을!


낭만이 만연한 도시. 가을에 더욱더 빛나는 위트레흐트.


파리의 연인이나 프라하의 연인은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위트레흐트도 낭만이라면 뒤지지 않는다. 다만, '위트레흐트의 연인'이라 하면 어감이 썩 와 닿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더치 특유의 발음으로 표현하면 중간에 가래 끓는 소리도 들어가야 한다. 어감은 그렇더라도, 어느 가을 위트레흐트를 방문하면 그런 편견은 곧 사라질 것이다. 상하층이 나뉜 특유의 운하 길. 그리고 운하 아래, 물과 맞닿은 곳에 펼쳐진 카페와 식당의 삐뚤빼뚤한 테이블과 의자. 운하 아래 햇살을 즐기며 자유롭게 앉거나 누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보트 위에 누워 책을 읽으며 유유히 떠다니는 사람들. BGM을 만들려고 작정한 듯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는 거리 악사들의 간드러진 연주까지.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여 만들어지지만, 영화 속 한 장면을 동경하는 현실에 사는 우리네들에겐 그 기타 선율 하나하나가 감미로울 뿐이다. 잠시 잠깐, 어느 영화 속 한 장면에 위치한 주인공처럼.

'위트레흐트의 연인'이라도 된 것 마냥.


그렇게 가을은 언제나처럼 또다시 왔고, 위트레흐트는 가을을 흠뻑 받아들였으며, 우리는 가을을 맞이한 위트레흐트를 즐겁게 스쳐 지나갔다.



햇살 아래 잠시 아이스크림으로 위로를.
아름다운 선율의 기타 연주가 이곳을 영화의 한 장면으로 만든다.
달콤한 것과 낭만이라는 어울림.
위트레흐트 성당
낭만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여도 손색이 없는. 아니 오히려 낭만 그 자체인 이 곳. 위트레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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