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영어 단어 중에 'Perception'이란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인식, 지각, 생각, 이해, 시각에 해당한다. 한 마디로 한 존재가 세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총체를 말한다. 이 말은 라틴어 'Percipere'에서 유래되었다. 'Per'란 '완전히', '통해서'라는 접두어와 'Capere(잡다, 취하다)'란 단어가 더해져 뜻을 이룬다.
'글쓰기'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에게 작동하는 'Perception'은 참으로 흥미롭다.
글쓰기에 대한 'Perception'은 무언가 특별한 사람에게 해당한다는 것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작가'라는 단어까지 붙으면 'Perception'의 거리는 더 멀어진다.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거나, 인생 리스트에 글쓰기는 단연코 없다는 식이다. 나도 그랬다. 글쓰기가 웬 말인가. 써본 적도, 배워본 적도 없고, 일기를 꾸준히 쓴 것도 아니다. '글쓰기'와 '작가'란 말은 노벨상을 받는 작가들에게나 어울리는 말이 아닌가. 감히 나란 사람이 어떻게 글이란 걸 쓸 수 있을까. 얼토당토 하지 않다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맞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나는 묵묵히, 꾸준히 쓰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Perception'이 바뀐 것이다.
글은 무엇으로 쓰는가. 내 인식이 나와 글쓰기는 상관없다고 이미 단정 지었을 때,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고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거나 천부적인 재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즉, 글쓰기는 고상한 지식과 타고난 능력으로 써야 한다는 강박과 편견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글은 또한, '손'으로 쓰는 것처럼 보인다.
꾸준함을 강조하기 위해, 누군가는 '엉덩이'로 쓰는 것이라 말하기도 한다.
글쓰기에 대한 인식을 뒤바꾸어, 계속하여 쓰고 있는 지금을 돌아보면 '무엇으로 글을 쓰는가'에 대답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글은 손, 엉덩이, 지식, 재능으로 쓰는 것이 맞다.
다만, 이게 다가 아니란 걸 나는 알았고 그래서 지금도 계속 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원동력은 바로, '감정'이다.
글은 제대로 각 잡고 이성적으로 써야 한다는 강한 'Perception'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모든 깨달음은 이성이 아닌 감정에서 오고,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슬픔'과 같은 우리에게 그리 유쾌하지 않은 감정은 훌륭한 글감이 되고 결국 쓰게 만드는 에너지가 된다.
고로, 글쓰기 앞에 주저하고 있거나.
뭔가 글쓰기에 대한 거대한 'Perception'을 가지고 있다면, 나는 각자의 감정에 충실해보라고 종용한다. 감정을 잘 들여다보면, 쓰지 않고는 배기지 못할 요소가 분명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나를 위해 무언가를 기록하고 표현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하다는 사실 또한.
글을 쓰는 데 필요한 건, 사실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