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자기 계발의 정석>
힐링이라는 의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네요!"
아름다운 여행지의 풍경을 담은 사진을 보면 이와 같은 말이 떠오른다.
'안구정화'가 되면서, 동시에 '마음정화'까지 되는 느낌. 그러하므로 마음이 차분해지며 무언가 치료받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내, 그곳에 있지 못하는 나를 발견한다. 누구는 이 아름다운 곳에 가 있고, 또 다른 누군가인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당장의 현실에 급급한 나와, 하고 싶은 걸 하고 사는 사람들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순간의 치료감은 저 멀리 달아나고, 이내 더 우울한 마음이 급습한다.
'그래, 나도 어서 힐링하러 떠나야지. 아니, 어디를 가지 못한다면 나를 위해 무어라도 해야겠어'
그리하여, 어딘가로 훌쩍 떠나거나 아니면 마음속 깊이 쟁여 놓았던 무언가를 무의식으로부터 꺼내어 구매한다. 평소라면 지갑 사정을 봐가며 해야 할 것들이지만, 어쩐지 이러한 때의 결정은 매우 빠르다.
이쯤 되면, '힐링'은 '의무'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의무감은 왜 생겨나는 것이고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힐링'보다 시급한
내 마음의 '상처' 찾기
많은 사람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힐링'에 앞서 규명해야 할 무언가. 그게 무얼까? 바로 '병명'이다.
즉, 나는 어떤 아픔이 있기에, 어떤 상처를 받았기에 치료가 필요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힐링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왜'가 아니라 '어떻게'라는 습관에 사로잡혀 있다.
'빨리빨리'의 역효과다. 이 문화는 우리를 급성장하게 했지만, 무언가를 이룬 그 찰나에 우리네 '자아'를 돌보는 것을 잊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힐링'은 '어떻게'다. 어떻게 하면 이 아픈 마음을 빨리 다독일 수 있을까, 어디로 가면, 무엇을 하면 내 기분이 바로 좋아질까.
그러나 더 중요한 건 '나는 왜 아픈가', '무엇으로 인한 상처인가'라는 '왜'를 물어야 한다.
방향을 모르고 뛰면, 정작 열심히는 뛰는데 결승선 반대로 뛰어가는 일이 발생한다.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도 모른 채, 그저 훌쩍 여행을 떠나면 힐링이 되는 걸까?
아프지도 않은데
힐링부터 찾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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