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개인적으론 빚을 지기 싫어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엇일 빌리기도 싫고, 빌리더라도 바로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자본주의 사회는 빚으로 돈을 만들어내는 구조이지만, 나는 이 마저도 마음 불편해한다. 내 것이 아닌 것으로 큰 부를 이루는 것에 대한 저항은 없지만, 그렇다고 큰 빚을 안고 전전긍긍 살고 싶진 않기 때문이다. 결국, 부채감이 싫은 것이다.
부채감은 무언가 영 개운치가 않다. 끈적끈적한 무언가... 인 듯하기도 하고, 상쾌한 하루의 정도를 덜구는 주범이기도 하다. 빚과 사채 업자에 쫓기는 어느 영화의 등장인물의 삶을 따라가고 싶지 않은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는 즐거운(?) 부채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쓰지 않으면 마음이 영 개운치가 않은데, 그렇다고 또 그게 그리 싫지 만은 않다. 글쓰기를 결심하고 나서는 꾸준히 글을 쓰고 있는데, 자의적으로 쓴 적도 물론 많지만 어느 사이사이에 멈추지 않고 글을 쓰게 만든 건 분명 '부채감' 때문이었다.
인생 자체가 부채(負債)이기 때문일까.
우리는 '생명'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에게로부터 빌려왔다. 이것을 갚아야 하는데 그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고, 어쩌면 그래서 '삶'이라는 축복과 형벌을 동시에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 불편한 마음은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인생이 무료하면, 큰 대출을 받아 자동차나 집을 사라는 말까지 있다. 부채, 그러니까 불편한 마음이 있어야 열심히 살게 된다는 걸 우습지 않은 우스갯소리로 표현한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부채감을 나는 즐긴다.
부채감의 면면을 보면, 그것은 '나'에 대한 '부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외면하지 않는 건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불편하다고 회피하거나, 무겁다고 도망가면 안 된다. 그러함으로 잃어버린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나 잘되자고 살고 있는데, 그 끝에 정작 내가 없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대개의 삶의 허무함은 이것으로부터 온다.
글쓰기는 부채감으로 쓰는 것이다.
나에 대한 부채. 스스로에 대한 미안함 마음. 동정과 동경, 돌봄과 방치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무수한 글감들을 잘 주워 담아 나를 완성시켜야 한다.
부채도 '자산'이란 말이 있다.
이건, 부채로 더 큰 무언가를 벌어내는 사람의 이야기다.
'부채'가 '빚'이 아닌 '자산'이 되기 위해선, 우리는 불편한 마음을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
글쓰기는.
그러니까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이 세상 가장 큰 각자의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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