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페르소나 글쓰기>
'글쓰기'는 자의든 타의든 어떠한 '압박'과 '강박'을 동반한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나의 첫 글은 '일기'라는 학교 숙제였다. 당연스럽게 '타의'였던 일기 쓰기는 하기 싫은 숙제로 머물러 미루고 또 미루는 게으름이 되었다. 방학을 보내고 개학 날이 다가왔을 때, 거의 한 달 치를 하루에 닥쳐 쓴 적도 있다. 가장 곤욕스러운 건 날씨였다. 지난 어느 하루들의 날씨를 지어내는 게, 일기 내용 채우기보다 더 어려웠다. 그때는 인터넷도, 날씨 앱도 없던 때였으니.
그때부터였을까.
글쓰기는 하기 싫은 무언가로 자리매김했다. 귀찮은 것, 내가 원하지 않은 것. 아마도 나와 같은 기억과 글쓰기에 대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글쓰기만큼 불편한 선택은 없기 때문이다.
자의적 글쓰기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살다 보니, 글쓰기가 운명처럼 다가오게 되었는데 이건 물론 타의적 숙제가 아니지만 어쩐지 자의적이라 할지라도 '압박'과 '강박'이 싹 사라진 것은 아닌 느낌이다. 쓰자니 쉽지 않고, 쓰지 않자니 뒤끝이 개운하지 않은 이 느낌은 자의의 역설이다.
그중 가장 큰 강박은, '매일 써야 한다'라는 압박이다.
누가 지시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우리는 완벽하지 못할 거면서, 자꾸만 완벽을 추구하려는 못된 습성을 가지고 있다.
글쓰기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으니, 왠지 하루도 거르지 말고 써야 한다는 못된 습성이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지금은 그러한 강박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글쓰기는 매일 쓰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더 많다.
왜 쓰는가.
무엇을 쓰는가.
이걸 모른다면, 글쓰기는 지속되지 않는다.
아니,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우리는 늘 '어떻게'에 혈안이 되어 있다. 글쓰기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검색해 본 것이 아마도 '글 잘 쓰는 법' 또는 '어디에 써야 할까'등일 것이다. 이것은 본질이 아니다.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하는 가는 나중 문제다.
왜 쓰는가가 더 시급한 질문이다.
생산자가 되기 위하여, 자아를 탐구하기 위하여, 영향력을 쌓아가기 위하여.
무엇을 쓰는가.
나에 대해. 일상에 대해. 특별한 소재에 집착하기보단, 평범함을 특별하게 보기. 세상의 질문에 정답을 이야기하기보단, 나만의 질문과 답을 찾아 나서기.
강박은 내려놓자.
압박은 풀어 주자.
중요한 건, 매일 쓰고 많이 쓰는 게 아니라 '왜'와 '무엇'이다.
쓰는 이유를 알고, 나에 대해 쓰다 보면. 쓰고 싶지 않아도 쓰게 될 것이며, 멈추고 싶어도 그러하지 않고 계속되는 글쓰기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은.
매일 숨 쉬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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