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르담 글쓰기의 정석>
글쓰기 앞에 무너지는 이유는 대개 세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 쓰는 법을 몰라서.
둘. 시간이 없어서.
셋. 글감이 없어서.
돌이켜 보니, 내 글쓰기의 시작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첫째와 둘째는 자연스럽게 해소가 되었는데, 그건 번아웃으로 글쓰기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해외 주재 시절 심각한 번아웃이 왔었는데, 나는 숨을 쉬고 싶었고 그 숨이 코가 아닌 영혼의 것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영혼으로 숨을 쉰다는 말이 무척이나 추상적일 수 있는데, 이 추상적인 의문에 아주 명확한 답을 준 것이 바로 글쓰기였다. 나는 글쓰기로 숨을 쉬었던 것이고, 숨을 쉬어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른다거나 시간이 없다는 변명은 궁색할 뿐이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비웃든 말든 나는 썼다. 시간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썼다.
그렇게 나의 글쓰기는 시작되었고, 봇물 터지듯 나오는 것들이 나조차도 놀랄 정도였다.
그러니, 글쓰기는 그냥 시작하면 된다.
쓰는 법을 몰라도 된다. 불안하면 불안에 대해 쓰고, 걱정되면 걱정에 대해 쓰면 된다. 시간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 짧은 동영상 보는 시간이나, 인터넷에서 최저가를 찾는 시간 조금만 줄이면 된다.
그런데 나 또한 잠시 글쓰기가 멈출뻔한 적이 있다.
바로 글감이 없어서였다. 글의 소재. 무엇을 써야 할까. 봇물처럼 나오던 것들이 말라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두 번째 해외 발령을 받아 출국길에 올랐을 때, 내 정체성을 흔들렸고 글감이 쏟아져 나오던 수문이 닫혀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새로운 곳에서의 과도한 업무, 잘할 수 있을까란 두려움. 쓰는 법이나, 글을 쓸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엇을 써야 할까.
어떻게 계속 쓸 수 있을까.
불안함과 두려움을 잠시 뒤로 하고, 나는 다시 나에게로 침잠했다.
그래, 지금까지 해왔던... 책으로도 쓰고 수없이 많이 강의로도 전했던, 그 방법.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스스로 돌이켜 실천해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글감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방법
글쓰기를 시작하고 가장 크게 바뀐 나의 정체성은 바로, '생산자'라는 타이틀이다.
이에 비추어봤을 때, '글'자체도 그렇지만 '글감' 또한 생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늘 '책쓰기'를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하라고 말한다. 책쓰기를 하면 글감이 '소모'되기 때문이다. 책 한 권 내고 글쓰기를 멈추는 사람을 너무나 많이 봐왔다. 그러나, 글쓰기를 하면 글감이 '생산'된다. 쌓인 글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해 시너지를 내고, 다음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준다.
그렇게 깨달은, 글감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지금도 끊임없이 쓰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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