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에 붙은 눈

작고 사소한 것에 눈이 가

by 채송화

얕고 넓으냐, 좁고 깊으냐.


언니는 나한테 남자 보는 눈이 낮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장이 인기 있었다. 부잣집 아들이고 공부도 잘하고 잘생기고 그런 애였다. 하지만 걔는 지금까지 싫다. 걔가 내 물통에 휘발유를 부었기 때문이다. 소풍 간다고 아버지가 사다 준 예쁜 물통이었다. 걔도 의도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고 그런 건 아니다. 내가 물을 다 먹고 없다고 하자, 자기네 집 물통이 큰 게 있다며 부었던 건데, 그건 물이 아니고 휘발유였다. 걔네 아버지가 시의원인지 도의원인지 국회의원인지 하여간 그랬다. 자가용을 몰고 소풍에 따라왔다. 선생들과 술도 먹고 그랬다. 그때 트렁크에 있던 여분의 휘발유통을 착각했었나 보다. 지금도 진실은 모른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하지만 나는 의도적이라고 의심하지 않고 살았다. 그렇다 해도 밉다. 싫은 건 싫은 거다.


그 반장을 여자 아이들이라면 다 좋아했다. 나만 빼고. 나는 다른 마음에 드는 애가 있었다.

그 애는 인기도 없고, 관심도 못 받는 애였다. 뭐랄까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침 뱉는 애'스타일이다.

공부도 못하고, 책도 잘 못 읽고, 옷도 추레하게 입고 다녔다. 얼굴이 하얬는데 머리까지 연한 갈색이었다.

스웨덴 아이처럼 생겼다고 생각했었다. 내가 왜 걔를 맘에 들어했는지 따져 보니, 그 애의 이미지가 이미, <에덴의 동쪽> 제임스 딘 같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참. 제 눈에 안경도 유분수지. 어딜 봐서 그렇다는 걸까 싶다. 그런데 나는 묘하게도 엉뚱한 데서 닮은 꼴을 잘 찾아낸다.

이게 칸트가 말하는 '인게니움(Ingenium)'인가? 싶기도 한 것이다. 전혀 다른 극과 극에서 같은 것을 찾아낸다는 이론. 천재 이론 이라고도 한다. 내가 누군가를 보고, 어 이영애 닮았다. 송혜교 닮았다. 그러면 처음에는 '에에~~' 하다가도 자세히 보니 쫌 그러네. 그런 경우가 많다. 그렇다 해도 나는 모든 걸 너무나 과대평가한다고들 한다. 심지어 중학교 때 가수 이용 닮은 애를 좋아한 적도 있었다. 이용은 좋아하지 않으면서 이용 닮은, 그것도 여자애를 좋아했다니. 왜 좋아했냐면, 이용의 '파마한 머리스타일'이 닮아서였다. 안경도 썼고. 아직 여자인지 남자인지 모를 톰보이 같은 애였다. 걔랑 한마디 말도 나눠 본 적도 없다. 내 친구의 초등학교 동창일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좋아하는 뭔가가, 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은... 그랬다.


중학교 2학년때는 <듀란듀란>이 좋았다. 모두들 존 테일러, 사이먼 르봉, 닉 로즈 그런 순서로 좋아했다. 그런데 나만 유독 드러머 로져 테일러가 좋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제일 인기 없던 앤디 테일러는 나도 안 좋아했다는 것. 그러다 이종환인지 김기덕인지 공개 방송을 보러 갔다. 일찍 갔다. 갔더니 무대 장치 설치를 하고 있었다. 어떤 남자가 엠프를 설치하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가 마음에 드는 것이다.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멋있고 핸섬하고 근사한 그런 남자한테 눈길이 안 갔다.

요즘은 '병약 섹시'라고 부른다나? 그러다 보니 이상형은 국문학 전공자에 글 쓰는 남자로 좁혀졌다.

그런 남자를 만났다. 남편이 되었다. 평생 '병약'하기만 하다. 지금 된통 욕보는 중이다.


좁은 시야가 취향이 된 덕분인지, 스피노자 철학에서 나를 사로잡은 것도 '비주류' 개념이었다.

모두 Deus sive Natura데우스 시베 나투라. Conatus코나투스등 주류 개념에 관심 둘 때, 나는 주석에서 잠깐 언급된 impetus에 꽂혔다. 말하고자 하는 충동. 나는 발설충동이라고 부른다. 말하고자 하는 충동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다. 나는 impetus를 코나투스의 한 실현 방법이라고 해석했다. 발설충동은 나한테 와서 더 이상 주석에 잠깐 소개되는 비주류가 아니었다. 남편이 그랬듯이, 나한테 가장 큰 철학이 되었다.

맞다. 김춘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꽃이 되었듯이. 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