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서설, 문병란
부부라는 육중한 무게를 시작할 때는 모른다. 결혼은 살면서 무거워지는 거니까.
빙산의 일각만 보는 것이 연애다. 그 밑에 거대한 얼음덩이가 숨어 있는 줄 모를 때, 결혼하는 것이다.
인연은 가벼울 수는 없을까.
금방 날아가는 나비처럼. 아침에 지는 나팔꽃처럼. 가벼운 인연.
시인 김수영은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물결은 규정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는 나를 규정했다.
"초장에 촐싹 파장에 피식" 아버지는 나의 본질을 꿰뚫었다.
나는 마법처럼 그렇게 살았다. 마치 저주를 거는 마녀. 물레에 찔려 잠을 잘 것이라고 했던.
그런 마법에 언니도 걸렸다. "앞니가 넓적한 것이 니는 나중에 남의 집 맏며느리 되겠다."
입초사 떨던 동네 여자는 우리 엄마한테 혼났다고 한다.
언니는 '들어오는 선자리마다' 장남만 나왔다고 했다.
형부도 맏이였지만, 시아버지가 장남이 아니어서 제사는 큰집서 지낸다는 말에 결혼했다나.
초장에 촐싹 하는 난데. 내가 난데. 결혼만큼은 파장까지 참 길게도 끌고 온 남편과의 인연이다.
나는 저주에 걸린 것인가. 아닌 것인가. 아니면 저주가 풀린 것인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도 아닌 나의 저주는, 저주조차 초장에 촐싹 하고 파장에 피식한 건가?
부부의 인연은 그야말로 마법도 규정도 통하지 않는 강력한 무엇이 있나 보다.